주간동아 709

2009.11.03

성범죄의 끈질긴 해악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10-28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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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전 겨울입니다. 일주일 일정으로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을 오르다 사흘 만에 내려왔습니다. 역겨워서 이 산에 더 있고 싶질 않았습니다. 그 험한 산에 같이 오르던 스님이 잠자던 제 몸을 만졌는데, 견딜 수 없는 수치감에 울분이 터졌습니다. 난생처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쏟아내던 기억이 납니다.

    저항의 수단이 욕설밖에 없었던 저는 그 뒤로 검도를 배우며 부모님께 “언젠가 그자를 찾아내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고 마땅한 처벌을 받게 하겠다”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솔직히 그 사람을 다시 볼 용기는 지금도 없습니다. 그때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는 한 대학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논문을 쓰게 되면 나와 함께 밤을 지새워야 한다” “네 남자친구가 나로 바뀔 수도 있다” “내게 기회를 준다면 너한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을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하는 교수에게 욕지기가 치밀었습니다.

    “정치를 하고 싶지만 여자들과 불미스러운 관계가 많아 그럴 수 없다”며 애석해하는 그를 보자 주먹이 불끈 쥐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용기가 나질 않아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이를 갈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교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조교 할 생각을 접는 ‘소심한 복수’를 했을 뿐입니다.

    아동 성범죄를 취재하면서 성범죄가 미치는 해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봤습니다. 제 경우에 비춰보면, 몹쓸 경험 탓에 사람을 덜 믿게 된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징그럽게 굴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무섭게 쏘아봅니다. 성적인 불쾌감을 준 것도 아닌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성범죄의 끈질긴 해악
    상대가 남자이면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그러다 보니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럴진대 어린 시절 성추행이나 강간을 당한 아이들은 모르긴 해도 저보다 더 사람을 믿지 못할 겁니다. 특히나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생각하며 살아갈 텐데…. 모쪼록 그 아이들이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는 일 없이 자라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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