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7

2009.10.20

너와 나 … 뼈와 살 … 임과 년 ‘완소’ 한 글자 우리말들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10-16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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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나 … 뼈와 살 … 임과 년 ‘완소’ 한 글자 우리말들

    <B>1</B> 사랑하면 임이요, 싫으면 년, 놈이다. <B>2</B> 집 개 길 풀

    자급자족 삶이란 게 어떤 점에서는 단순하다. 그렇다면 거기에 따른 언어는 어떨까? 어느 순간 ‘한 글자로 된 우리말’이 내게 그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보거나 듣거나 만들거나 먹는 것이 대부분 한 글자로 된 우리말이라는 사실. 몸, 밥, 집, 옷, 물…. 이들을 몇 가지 내용에 따라 나눠보면 더 흥미롭다. 먼저 소중한 몸부터 찬찬히 뜯어보자. 몸은 뼈와 살, 피로 돼 있다. 이 몸을 유지하자면 숨을 쉬어야 하고 물을 마시며 밥을 먹어야 한다. 이 모두가 한 글자 우리말이다.

    일상에서 흔하게 보거나 먹는 것들 표현

    한 글자는 단순히 간단하다는 걸 넘는다. 단 하나라는 뜻은 곧 절대라는 의미도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몸이나 물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게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런 우리말은 좀더 많다. 낮, 밤, 잠도 한 글자 우리말이면서 절대적인 것이다. 특히 우리 몸의 여러 부분이 한 글자 우리말이다. 눈, 코, 이, 귀, 입이 한 글자다. 그 외 손, 발, 목, 배….

    어쩌면 말이 탄생하고 발달해온 토대가 바로 몸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몸의 명칭에는 한 글자가 많다. 이렇게 말의 뿌리를 더듬어봐도 몸은 삶의 근본이다. 우리는 한 글자로 된 우리말을 일상에서 자주 쓴다. 대표적인 게 밥. “밥 먹자. 밥 때다” 등. 밥이란 말을 자주 쓰다 보니 다시 밥을 둘러싼 다른 말도 한 글자인 게 많다. 날마다 두 끼나 세 끼를 먹고 가끔 참도 먹는다.

    밥을 하자면 쌀이 있어야 하고, 이 쌀을 만드는 과정도 대부분 한 글자다. 씨를 땅에 뿌려 모를 키운다. 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흙과 물이 있는 논에 심는다. 이때 흘리는 땀도 한 글자다. 이제 모는 벼가 되고 무르익어 방아를 찧으면 쌀이 된다. 이 과정을 지켜주는 터전인 땅도 논도 밭도 다 우리말이면서 한 글자다. 과일나무를 봐도 한 글자 과일은 친숙하다.



    과일에는 종류가 많지만 우리네 땅에서 흔하게 나는 과일로 감, 밤, 배, 잣을 들 수 있다. 이런 과일 재배는 다른 농사에 견주어 그리 어렵지 않다. 병충해에 강하고 우리 땅에서 오래도록 생명을 이어왔으니 사람들이 그만큼 자주 먹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말 한 글자의 경제성을 생각해보자. 자주 쓰는 말이 간단하면 그만큼 경제적이다. 의사소통이 쉽고 빠르고 편하면서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주 쓰는 말일수록 간단하다니 이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이는 우리 몸과도 맞는다는 말이 된다. 말의 경제성을 잘 살린 ‘몸의 지혜’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한 글자 우리말을 즐겨 쓰면 아이들과도 말이 잘 통한다. 짐승도 한 글자로 된 놈들이 더 각별하다. 사람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개. 그 다음 닭, 소, 말. 이런 짐승은 사람이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사람과 가까워진 것이다.

    야생동물도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이 한 글자 우리말이다. 새, 꿩, 매, 곰. 범. 사람에게 소중한 것으로 밥 말고 집과 옷도 있다. 집에서 잠을 자고, 애를 키운다. 집 밖으로는 울이나 담이 있다. 옷도 삼이나 솜 또는 털로 한 올 한 올 실을 만들어 짓는다. 이렇게 우리네 삶에 소중한 것은 한 글자요 우리말이다. 그런데 한 글자 우리말이 사람에게 다 소중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뱀, 벌, 쥐, 옴, 이. 사람에게 위험하거나 건강에 해가 되는 것인데 이들을 한 글자로 말함으로써 상황에 맞춰 빠르고 쉽게 대처할 수 있다.

    너와 나 … 뼈와 살 … 임과 년 ‘완소’ 한 글자 우리말들

    <B>3</B> 들 벼 논 둑 콩 흙 땅 길 <B>4</B> 벌 집 꿀 <B>5</B> 밤 배 감 <B>6</B> 눈 코 귀 털 소

    말 한마디에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이렇게 한 글자 우리말은 삶의 기본이다. 여기에 충실하다면 말도 글도 얼도 한결 중심이 선다고 할까. 뜻이 쉽게 흔들리지 않고 삶은 넉넉해 틈을 쉬 즐기게 된다. 철 따라 일을 해서 밥과 집, 그리고 옷을 마련하면 남는 건 팔아 돈을 보태거나 덤으로 나눈다. 돈이 적어도 빚만 없으면 멋과 끼가 안에서 절로 살아난다. 거짓은 복잡하게 두 글자지만 참은 단순하니 한 글자다. 설렘을 주는 사람은 임이요 싫은 사람은 년, 놈이다.

    아래처럼 한 글자로 된 우리말을 나 나름대로 몇 갈래로 나눠보니 제법 많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나’를 들고 싶다. 이는 절대이면서 소중하다. 내가 있어야 너도 있고 세상도 뜻을 갖는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다. 내가 모여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건 우리말만 그런 게 아니다. 영어에서도 분명하다. 알파벳 한 자만으로 글자가 되는 게 있으니 바로 ‘I(나)’다.

    그만큼 ‘나’는 소중하다는 걸 언어를 통해서도 깨닫게 된다. 말 한 마디 글 한 줄에도 늘 생명이 살아 숨 쉰다는 말씀. 새삼 고맙다. 한 글자 우리말을 즐겨 사용한 우리 조상과 이 말이 오늘날까지 잘 이어져오게끔 한글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또한 이렇게 한글을 컴퓨터로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준 ‘한글과 컴퓨터’ 관계자들도 고맙다. 아래는 나 나름대로 몇 갈래로 나눈 한 글자 우리말이다.

    몸 : 뼈 살 피 숨 입 코 눈 귀 이 혀 침 목 배 똥 손 발 털

    농사 : 씨 싹 밥 쌀 논 벼 모 땅 밭 콩 밀 팥 조 깨 박 갓 김 풀 쑥 일

    음식 : 밥 국 김 뜸 빵 떡 참 묵 젖 알 술 꿀 맛

    집과 옷 : 샘 집 칸 잠 못 담 울 움 실 옷 솜 베 올

    도구 : 쇠 칼 낫 삽 솥 침 활 빗 자 줄 끈 되 신 붓 먹

    자연 : 철 때 날 해 빛 볕 달 별 비 눈 물 불 흙 땅 돌 낮 밤 봄 꽃 잎

    동물 : 개 닭 소 말 새 매 꿩 곰 범 삵

    과일 : 감 밤 배 잣
    사람이 꺼리는 생물 : 쥐 뱀 벌 이 옻

    존재 : 나 너 임 님 놈 년 애 딸

    놀이 : 춤 끼 징 북 윷
    철학 : 삶 앎 참 철 얼 말 글 힘 덤 틈 품 삯 돈 빚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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