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2017.03.29

경제 | 취업대란, 청년은 살고 싶다

“이럴 거면 시급 말고 초급 주세요”

지난해 이랜드파크 적발 후에도 계속되는 ‘임금 꺾기’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3-28 16: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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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제가 일했던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네요.”
    지난해 말까지 한 대형 외식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최모(23·여) 씨의 말이다. 최씨가 일하던 업체는 ‘매장 오픈 준비’라며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15분 일찍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출근 10분 전부터 실제 업무를 시작했지만 이에 해당하는 추가급여를 받은 적이 없다. 이른바 ‘임금 꺾기’다. 기업이 1시간이나 30분 단위의 급여체계를 채택해 근로자가 이보다 적게 일하면 해당 시간에 대한 급여를 주지 않는 것.



    ‘임금 꺾기’ 없는 업체 찾기가 더 어려워”

    기업이 이 같은 편법으로 아르바이트생에게 제대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사례가 연이어 적발되고 있다. 지난해 말 외식업계에 이어 이번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확인돼 고용노동부(고용부)가 조사에 나섰다. 시민단체는 편법 임금체불이 아예 관행으로 자리 잡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임금 꺾기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말 이랜드파크의 임금체불 사건이 적발된 이후부터다. 지난해 12월 고용부의 조사 결과 이랜드파크의 외식사업 프랜차이즈 매장이 임금 꺾기를 통해 지난 1년간 아르바이트생 4만4360명에게 급여 83억72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고용부는 1월 25일 임금체불 신고시스템을 통합·보강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초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연대알바노조(알바노조)는 3월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롯데시네마가 ‘시급 꺾기’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급여 일부를 미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롯데시네마에서 일한 아르바이트생이 직접 시급 꺾기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일부 대형 프랜차이즈는 아르바이트생의 경우 대부분 15분이나 30분 단위로 근무시간을 계산한다. 예를 들어 30분 단위로 급여를 책정하면 5시간 29분만 일을 시키고 퇴근하게 해 마지막 29분에 대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2월부터 아르바이트 급여를 분급으로 계산해 지급하고 있다. 알바노조에서 발표한 내용은 조치 전에 생긴 문제로 보인다. 이번 달 안으로 미지급 급여에 관한 조사를 마친 뒤 전부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용부가 2월 한 달 동안 국내 3대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48곳을 근로감독한 결과 91.7%인 44곳에서 7361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임금 꺾기 등으로 급여 3억6400만 원을 받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이와 같은 임금 꺾기가 아르바이트시장 전체에 만연해 있다고 말한다. 대학 생활 내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온 신모(27) 씨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급여에 대해 설명하면서 15분이나 30분이 근무가 인정되는 최소 단위이며, 이를 못 채우고 퇴근하면 급여 인정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이 때문에 15분을 채우지 못하는 추가근무의 경우 아예 근무라 생각지 않아 문제 제기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이랜드파크 사건으로 관행처럼 여겨지던 일이 실은 편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4년간 제대로 돈도 못 받고 일한 것이 답답하다. 이렇게 편법으로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을 거면 정부 차원에서 임금체계를 시급에서 분급이나 초급으로 고쳤으면 싶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것이 자랑”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아르바이트생을 일찍 퇴근시키는 ‘시간 꺾기’도 성행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5조에 따르면 주 15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는 일당에 해당하는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업장에서는 주휴수당 지급을 피하려고 아르바이트생을 임의로 일찍 퇴근시킨다. 물론 사업장의 귀책으로 노동자가 일찍 퇴근하면 휴업수당(시급의 70%)을 줘야 하지만 이 역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지난해 1년여 동안 개인 카페에서 일한 조모(25·여) 씨는 “특히 작은 매장일수록 시간 꺾기가 심하다. 세부 수당은 근로기준법을 알지 못하면 아르바이트생이 직접 챙기기 어렵다. 그래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피해자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대기업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는 학생은 많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전문 사이트 알바몬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상반기 아르바이트 자리의 경쟁률은 평균 3.95 대 1. 비교적 안정된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는 경쟁률이 10 대 1을 상회했다(멀티플렉스 17.6 대 1).

    이가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그나마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에서는 편법으로 법을 피해 가려는 성의라도 보이지만 작은 규모나 5인 미만 사업장은 상황이 더 나쁘다. 대형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면 4대 보험, 주휴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마땅히 지켜야 할 내용이 자랑처럼 올라가 있다. 이것만 봐도 아르바이트생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랜드파크 사건 이후 업종별로 집중적으로 근로감독을 하고 있다. 멀티플렉스나 외식업계 외에도 임금체불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근로감독관 인력이 부족해 전 사업장에서 근로감독을 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임금체불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법안 개정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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