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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드라마도 모르는 ‘진짜 신라’ 이야기 … 14면체 주사위 ‘목제주령구’ 실제로 존재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현대인은 국사(國史)를 두 가지 통로로 접한다. 학교 수업을 통해, 그리고 TV나 드라마를 통해. 물론 사극(史劇)은 교육성보다 오락성이 우선이다.

하지만 사극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어느 정도의 역사 지식이 있어야 하는 법!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선덕여왕’은 그동안 사극에 잘 등장하지 않던 신라시대를 다루고 있어, 국사에 해박하다는 사람들조차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누리꾼들이 알고 싶어 하는 ‘선덕여왕’ 속 궁금증을 정리했다.

‘선덕여왕’ 2회에서 유리잔이 등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삼국시대에 유리잔이라니, 말이 되나?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신라시대 유물인 유리잔(오른쪽)과 드라마에 등장한 와인글라스처럼 생긴 유리잔.

신라에는 삼국통일 이전부터 유리잔이 존재했다. 경주 지역의 4∼5세기 왕릉급 돌무지덜넛무덤에서는 이미 30개 정도의 유리 용기가 발굴된 바 있다. 그러므로 드라마에 유리잔이 나오는 장면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역사학자들은 신라시대에 사용됐을 이 유리잔들이 신라가 직접 제조한 것이 아니라 멀리 서방에서 만들어져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다만 드라마 속 유리잔이 하나같이 와인글라스처럼 보이는 건 좀 아쉽다.

드라마 1회에서 문노(정호빈 분)가 불상 앞에서 제사 지내는 장면이 나왔다. 이 불상은 어디에 있는 건가?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드라마 1회에 방영된 이 장면은 경주 남산에 있는 상선암 마애대좌불에서 촬영됐다.

경주 남산에 있는 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인 상선암 마애대좌불(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경주 남산은 수많은 불상과 문화재가 산재해 ‘살아 있는 노천박물관’으로 불린다. 상선암 마애대좌불은 거대한 자연 암반에 약 6m 높이로 양각한 마애불로,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다.

하지만 이 불상의 조각 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된다. 그러니 드라마가 다루는 시대보다 적어도 100년 후에 등장해야 맞다.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김춘추 역으로 곧 등장할 유승호 군.

드라마에는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될 김춘추가 용수의 아들로 나온다. 하지만 국사 교과서에는 ‘용춘의 아들’이라고 적혀 있다. 대체 김춘추는 누구의 아들인가?

‘선덕여왕’에는 곧 ‘국민 남동생’ 유승호 군이 천명공주와 용수의 아들 김춘추로 등장할 예정이다. 이는 드라마가 용수와 용춘을 형제로 보는 ‘화랑세기’의 기록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선 용수와 용춘을 동일 인물로 간주한다.

사서마다 기록이 달라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혼란이 생기는 것은 사실. 훗날 선덕여왕이 될 덕만과 천명공주의 관계도 확실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천명이 장녀라고 나오지만, ‘삼국사기’에는 덕만이 장녀라고 기록돼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이 친자매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6월15일 방영된 7회에서는 배우 이문식 씨가 옥수수를 들고 있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옥수수를 즐겨 먹었나?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신라시대 사람들이 옥수수를 먹어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선덕여왕은 600∼650년에 존재한 인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옥수수가 들어온 것은 조선 후기인 1700년대다.

참고로 고추는 조선 중기인 임진왜란 무렵, 고구마와 감자는 조선 후기가 돼서야 우리 땅에 전해졌다. 그러므로 선덕여왕이나 미실은 옥수수는 물론이고, 고춧가루로 버무린 배추김치도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시대 고분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귀고리가 발굴되곤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남자 배우들은 귀고리를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의장용 귀고리 금제태환이식(왼쪽)과 진평왕(조민기 분). ‘선덕여왕’의 남자배우들은 귀고리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으로 출연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남성이 귀고리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적어도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남성이 귓불을 뚫어 귀고리를 착용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로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기록돼 있다.

사내의 귀고리 착용을 금하는 조치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이념에 따라 조선 선조(1552∼1608) 때 처음 시행됐다. 하지만 ‘신라시대 남성들이 일상생활에서도 귀고리를 착용했을까’ 하는 점은 아직 미제로 남아 있다.

‘선비와 피어싱’의 저자인 조희진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신라시대 귀고리는 일상생활에서 착용했다고 보기엔 너무 화려하고 불편한 형태”라며 “의장용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마다 귀고리 착용을 고증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2년 전 큰 인기를 모았던 MBC 드라마 ‘주몽’에서 소서노의 아버지 연타발은 늘 한쪽 귀에 귀고리를 착용했다.

6회에서 진평왕이 신하들과 14면체 주사위를 굴리며 노는 장면이 나왔다.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인가?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진평왕의 궁녀가 14면체 주사위를 굴리는 장면(왼쪽)과 1975년 경주 임해전지에서 발견된 목제주령구의 복제품.

14면체 주사위는 1975년 경주 임해전지(안압지)에서 발견된 목제주령구(木製酒令具)다. ‘주령구’라는 이름은 ‘술로 하여금 벌칙 명령을 내리게 한다’는 뜻으로, 14면 각각에는 ‘한번에 술 석 잔 마시기’ ‘소리 내지 않고 춤추기’와 같은 벌칙이 적혀 있다.

삼각형 8개, 사각형 6개로 구성된 목제주령구는 철저히 수학적인 원리를 이용해 각각의 면이 나올 확률을 거의 동일하게 맞춰 놓은 발명품이다. 사실 출토된 목제주령구는 통일신라시대의 물건이므로 드라마 속 배경과 정확하게 일치하진 않는다.

하지만 독특한 신라의 문화재를 소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만하다.

드라마에 등장한 서라벌의 도시 전경을 보고 감탄했다. 빽빽이 들어선 기와집이 정말 화려하고 멋졌다.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드라마 속 서라벌 전경은 ‘신라왕경도’(오른쪽)를 기초로 제작됐다.

1970년대부터 신라 왕경(王京)의 본모습을 찾으려는 학계의 노력이 본격화했다. 왕경이란 왕이 거처하는 왕궁을 중심으로 그 나라 수도의 근간을 이루는 공간. 학계의 이런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결과물이 ‘신라왕경도’라는 그림이다.

드라마 속 서라벌 전경은 ‘신라왕경도’를 근거로 CG 처리해 만들었다고 한다. 고증에 신경 쓴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눈썰미 좋은 시청자는 옥의 티를 눈치 챘을 것이다. 화면 오른쪽을 자세히 보면 황룡사 9층 목탑이 보인다. 사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 탑은 선덕여왕 12년(643) 혹은 15년(646)쯤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덕만은 아직 왕위에 오르지 못했으니 황룡사 9층 목탑의 등장은 너무 이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이름이 왠지 귀에 익다. 특히 선덕여왕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석가모니의 어머니 이름과 같다.

선덕여왕은 옥수수를 먹어봤을까?

마야부인(윤유선 분).

신라 왕실은 불교의 진종설(眞種說)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 즉, 신라 왕족을 석가모니 가문과 동일시한 것이다.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진덕여왕의 ‘진’은 ‘석가모니의 진짜 종족’이라는 뜻이다. 진평왕은 왕위에 오른 뒤 아예 가족들의 이름을 석가모니 가족 이름과 같게 지었다.

진평왕의 이름은 석가모니 아버지인 백정왕(정반왕), 왕비는 석가모니 어머니의 이름인 마야부인이라고 했다. 진평왕의 동생들은 석가모니 동생의 이름과 같은 백반과 국반이다.

선덕여왕의 이름인 덕만과 선덕여왕 사촌 진덕여왕의 이름인 승만도 석가모니의 불도를 깊이 믿은 공주와 왕비 이름에서 따왔다. 이름을 통해 세운 이러한 ‘권위’는 선덕여왕이 여자임에도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배기환(서울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도움말 : 안지원 서울대 박사(한국불교사), 조희진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선비와 피어싱’ 저자), 국립경주박물관(gyeongju.museum.go.kr), 신라역사과학관(www.sasm.or.kr)
※참고서적 : ‘선비와 피어싱’(동아시아), ‘역사 속의 한국불교’(역사비평사), ‘경주’(돌베개)




주간동아 2009.08.04 697호 (p72~74)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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