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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죽음과 내통한 ‘에로스’의 5가지 색깔

다섯 감독의 ‘오감도’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죽음과 내통한 ‘에로스’의 5가지 색깔

죽음과 내통한 ‘에로스’의 5가지 색깔

5명의 감독이 참여한 ‘오감도’는 엄정화 김효진 황정민 장혁 김수로 등 주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았다.

‘오감도’라 하면 먼저 이상의 시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오감도’는 전위적이고 혁명적인 이미지를 환기한다. 영화 ‘오감도’는 이상 시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까마귀 오(烏), 볼 감(瞰)자였던 원래의 제목은 다섯 가지 감각을 뜻하는 오감(五感)으로 의미를 바꿔 입는다. 다섯 감각이라…. 영화 홍보문구에서 보았듯이 ‘오감도’는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색·성·향·미·촉에 대한 영화로 짐작됐다.

관객들은 기대했다. ‘오감도’가 감각에서 비롯돼 영혼에 자상(刺傷)을 남기는 에로스에 대한 보고서이자 철학일 것이라고. 그 기대의 일면에는 ‘에로스’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 당대를 대표할 만한 다양한 배우들의 출연, 그리고 에로스라는 말에 내포된 관능적 포즈에 대한 관음증도 숨어 있다. 에로스와 관음증이야 실로 오래 묵은 관계이니 말이다.

‘오감도’는 변혁 허진호 유영식 민규동 오기환 감독의 작품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영화다. 다섯 명의 감독이 다섯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다양한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 일종의 앤솔로지처럼 다섯 명의 감독이 지닌 영화적 감각과 감수성의 차이를 선명하게 비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섯 영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변혁의 작품이다. 압구정동의 화려한 거리 조명 앞에서 만나는 두 남녀로 시작되는 에피소드는 바로 변혁의 것임을 눈치채기 어렵지 않다. ‘호모 비디오쿠스’로 도시의 질감을 포착해낸 감독의 감식안이 영화 곳곳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기차에서 우연히 남녀가 만난다. 매력적인 여자를 만난 남자는 그녀와의 로맨스를 꿈꾼다. 영화는 내내 우연한 만남을 로맨스로 발전시키고 싶은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매력적인 여자를 애인으로 만들고 싶은 남자의 욕망을 목소리가 노출하는 셈이다. 매끈한 다리에 지적인 태도까지 갖춘 여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남자는 여러 방법을 고안한다. 마침내 남자는 여자의 작업실 겸 숙소에 들어가는 데 성공하고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재기 넘치는 솜씨는 마지막에서 발휘된다. 하룻밤을 지낸 다음 날 아침, 내레이션은 갑자기 남자에서 여자 쪽으로 옮겨온다. 수다스럽던 남자의 목소리는 잠자는 모습 사이로 사라지고, 이제 여자가 초조해한다. ‘내가 너무 서둘렀던 것은 아닐까’ ‘남자에게 헤픈 여자로 비친 것은 아닐까.’

생각은 남자에서 여자 쪽으로 옮겨간다. 남자는 여자와 섹스하기 전까지 집중한다. 여자는 남자와 섹스하고 난 뒤부터 집중한다. 변혁은 섹스를 경계로 둔 남녀 간의 복잡한 심리를 내레이션의 전환이라는 산뜻한 방법으로 구체화한 셈이다.

눈에 띄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오기환의 ‘순간을 믿어요’를 들 수 있다. 커플 체인징이라는 이색적 소재를 다룬 이 작품은 색다른 에로스의 풍경을 선사한다. 그 색다른 풍경은 우리가 ‘오감’ 혹은 ‘에로스’의 담론에서 제외했던 10대 청소년의 에로스다. 교복을 입고 있지만 사랑과 섹스, 애정에 대한 그들의 고민은 어른과 다를 바 없다. 몸은 성숙했지만 정신은 아이인 청소년이 아니라, 어느새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된 요즘 젊은이들의 에로스를 체감케 하는 것이다.

섹스, 섹슈얼리티와 에로스는 다르다. 에로스는 정반대의 욕망인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와 내통한다. 에로스는 살아 있음으로 인해 느끼는 충동, 그 모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떠난, 죽은 자의 도래를 통해 감각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사랑을 말하는 허진호나 죽은 남편의 애인을 용서함으로써 진정한 에로스를 이해하게 되는 아내를 그린 민규동의 작품은 에로스의 여러 질감을 구체화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오감도’는 에로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관객들은 이성으로 해석해야 할 개념적 오감의 세상이 아니라 피와 살로 이뤄진 ‘오감’의 세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9.07.28 696호 (p84~84)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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