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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교수의 5분 한국사

무능력·무책임한 정치인들아, ‘순우곤의 治’를 아는가

방탕에 빠진 왕 깨우쳐 나라 바로잡기 … 국회가 발목 잡는 우리 현실과 대조

  •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무능력·무책임한 정치인들아, ‘순우곤의 治’를 아는가

무능력·무책임한 정치인들아, ‘순우곤의 治’를 아는가

전국(戰國)시대 강태공과 관중의 정신을 계승해 부국강병의 패도(覇道) 문화를 발전시킨 제나라 수도 린쯔(臨淄). 이제는 한 귀퉁이만 남은 제나라의 성이지만 당시 수많은 학자가 몰려들어 학문의 절정기를 이뤘다.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80)이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을 겪은 후 편찬한 ‘사기(史記)’(원명 太史公書)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열전(列傳)에서 다루고 있는데, 비단 중국 고대사 연구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문학적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열전 중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가 사기열전 마무리 부분인 제66권에 해학과 풍자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골계열전(滑稽列傳)’을 둔 사실이다. 그는 모두에서 “세속에 흐르지도 않고 권세와 이욕(利慾)을 다투지도 않고 위 아래로 막혀 머무름이 없이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으니, 그것은 도(道)의 작용과 같다”라고 서술 동기를 밝혔다. 그러면 그의 ‘골계열전’ 중 대표적 인물인 순우곤(淳于)을 만나보자.

순우곤은 제(齊, 田氏, 기원전 386∼221)나라에 데릴사위로 들어간 사람이다. 키는 일곱 자(약 160cm)도 못 되어 작달막했으나 익살이 풍부하고 다변이라 어떤 사람과 맞서서 지껄여도 막히는 일이 없었다. 말 잘하는 것으로 뽑혀 여러 나라에 심부름을 다녔는데 아무리 어려운 일도 말로 해결해버릴 만큼 탁발했다.

해학과 기지로 방탕한 왕 뉘우치게

당시 제나라의 위왕(威王·재위 기원전 356∼319)은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생각이 없고 오직 궁궐 안에서 주야로 술과 노래와 춤과 호색으로 진탕하듯 노는 데만 빠져 날이 갈수록 국가 질서가 무너지고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게다가 이웃 나라가 자주 쳐들어와 국가의 운명이 자못 위태로웠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도 좌우의 근신들은 한 사람도 위왕에게 간(諫)하려 하지 않았다. 순우곤이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왕의 마음을 돌려 나랏일을 바로잡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하루는 위왕 앞에서 비유로써 말을 꺼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새 한 마리가 있는데, 이 새가 궁궐에 날아 들어와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면 대왕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위왕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워낙 엉뚱한 말을 잘하는 순우곤이라 필연코 무슨 곡절이 있으려니 생각해보니, 바로 왕 자신을 비꼬아 하는 말임이 틀림없고, 또 그렇게 깨닫고 보니 지난 3년 동안 방탕에 빠졌던 자신이 뉘우쳐지기도 했다.

“그런 새가 있다면 날지 않으면 몰라도 한번 나래를 치면 하늘 높이 솟을 것이요, 울지 않으면 그만이어도 운다면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 테지…”라고 대답한 위왕은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실제 날기도 하고 울기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방탕한 생활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국사에 전념해 위엄을 안팎으로 떨쳤다.

위왕 8년(기원전 349)에 초나라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제나라에 쳐들어왔다. 위왕은 급히 순우곤을 불러 황금 100근과 마차 10대를 선물로 가지고 조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청해오도록 분부했다. 왕의 분부를 받은 순우곤은 간다 못 간다 말 한마디 없이 하늘을 우러러 고개를 젖히고 “하하핫” 한바탕 크게 웃었다. 얼마나 심하게 웃었던지 갓끈이 끊어졌다. 왕은 그가 웃어대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그대가 웃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물었다.

“예, 다름이 아니옵고 신이 오늘 아침 대궐로 들어오다 길가에서 어떤 농부가 돼지 발 한 개와 술 한 잔을 밭두렁에 놓고 ‘제발 풍년이 들어 온갖 곡식이 집 안에 가득 차게 하소서’라며 비는 것을 보았사온바, 적은 제물로 큰 욕심을 부리는 것을 생각하고 웃었습니다” 하고는 또 웃어댔다. 왕은 그제야 깨닫고 다시 황금 1000근과 흰 구슬 10쌍, 마차 100대를 줘 예물로 갖고 가게 했다. 그 후 순우곤이 조왕을 찾아가 정병 10만과 전차 1000대를 얻어 돌아오자, 초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싸울 생각도 않고 밤중에 병사를 철수해 퇴각하고 말았다.

시급한 국정 현안 표류 정치 무관심 걱정

위왕은 기쁨에 넘쳐 순우곤의 공로를 치하하느라고 후궁(後宮)에 연회를 베풀어놓고 순우곤에게 친히 술잔을 따라 권하면서 “그대는 술을 잘한다는데 얼마나 하면 취하는가”라고 물어보았다. 그가 “신은 한 되를 마셔도 취하고 한 말을 마셔도 취하옵니다(臣飮一斗亦醉一石亦醉)”라고 답했다.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는 계속됐다.

“한 되에 취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말을 마신다는 말인가?”

“대왕 앞에서 잡는 술잔은 전후좌우에 중신(重臣)과 시위(侍衛)가 늘어서 있어 마음이 황송하고 두려워 겨우 한 되 술에 취해버리옵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옛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마시는 술은 대여섯 되쯤 마시면 취하옵니다.

무능력·무책임한 정치인들아, ‘순우곤의 治’를 아는가

7월1일 미디어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문방위 회의실 앞을 막고 있다.

또 마을에서 연회라도 있어 남녀가 섞여 앉아 이런저런 장난을 해가며 손목 잡는 것쯤은 허물로 여기지 않고 서로 눈짓을 해도 괜찮은 자리에서는 여덟 되쯤 마시면 취하옵고, 친한 남녀가 밤중에 한자리에서 어울려 신발 신은 다리가 서로 얽히고 술잔이 상 위에 뒹굴며 한바탕 즐긴 다음 여주인이 딴 손님을 보내고 저 혼자만 옷깃을 잡아 머물게 하면 이윽고 방안에 은은한 향내가 돌고 여인의 옷깃이 살짝 헤쳐집니다.

신은 이러한 때를 가장 즐겨 하옵는바 그런 밤에는 한 말쯤 마시면 흠뻑 취하옵니다. 그러므로 술이란 심해지면 어지러워지고, 아무리 즐거운 일도 극에 달하면 슬퍼지는 것이옵니다. 술뿐 아니오라 모든 세상일이 그런 줄로 아옵니다,”

이처럼 순우곤은 왕의 질문에 주색에 방탕함이 옳지 않다는 것을 거듭 풍간(諷諫·완곡한 표현으로 잘못을 고치도록 말함)했고, 그 후 위왕은 일절 연회를 베풀지 않고 정사에만 몰두해 제나라가 흥륭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결코 순우곤이 살던 전국시대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도 모자라 사이버테러로 우리를 압박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남북관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국회와 정당의 기능 상실로 참다운 정치는 실종되고 역겨운 정략만 난무해 비정규직법 개정안, 미디어법안, 레바논 주둔 동명부대 파병연장 동의안 등의 시급한 국정 현안이 여야 간의 불협화음으로 표류하고 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일부 정치인에 의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발목을 잡혀도 되는 걸까. 그들 대부분이 명문대를 나오고 고시를 패스한 엘리트임이 분명할진대 그들은 억지를 부리면서 승핍(承乏)을 자초하며 대인(大人)을 포기하고 소인(小人)이 득세하는 누의득지(蟻得志)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러다 정치적 무관심(political apathy)이 정치무용론(political uselessness)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게다가 청와대가 서열 파괴까지 하며 내놓은 회심의 작품이라는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치른 지 하루 만에 전격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고가 아파트 구입 과정의 의혹, 위장 전입, 채권자와의 부적절한 동반 골프여행, 그리고 부인의 명품쇼핑 등은 검찰총장으로서는 분명 걸맞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 인재는 다 어디로 숨어버리고 승핍의 세월이 계속되는 걸까.



주간동아 2009.07.28 696호 (p76~77)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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