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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저작권이 ‘3040세대’를 잡네

청소년에 집중된 법안 홍보로 ‘운 나쁜’ 청·장년층 위반 급증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저작권이 ‘3040세대’를 잡네

저작권이 ‘3040세대’를 잡네

7월23일 새 저작권법이 시행되면 온라인에 불법 저작물을 전송해 이득을 챙기는 헤비 업로더에 대한 제재가 강화된다.

평범한 직장인 조평범 씨. 깜빡 늦잠을 잔 탓에 허겁지겁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여느 때처럼 신문을 훑어보던 그는 마음에 드는 시(詩) 한 편을 발견하자 잽싸게 자신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시를 블로그 대문에 포스팅해 놓은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블로그랑 제대로 어울리는데…. 아주 딱이야.”

흡족한 마음으로 하루 일을 시작한 조씨는 곧 출시될 제품의 광고 문구를 짜느라 머리를 싸매야 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고민하는 그의 귓가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소절이 꽂혔다.

“어, 이거 광고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걸. 이 소절을 써먹으면 괜찮겠어.”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느냐”며 반색하는 사장의 모습에 조씨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신제품 출시 준비로 바빠서 한동안 어울리지 못하던 동료들과도 모처럼 의기투합했다. 퇴근 후 모여서 UCC를 찍기로 한 것. 얼마 전 학원 강사들이 올렸다는 아이돌그룹의 댄스 UCC를 본 것이 계기였다. 조씨는 인기 아이돌그룹 ‘소녀시대’의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촬영이 끝나고 동료들과 뒤풀이를 하면서 오늘은 뭐든 하는 일마다 잘 풀린다는 생각에 연신 술을 들이켰다.



“오늘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야.”

드라마 한 장면 캡처해 올려도 불법

이렇게 운수 좋은 날을 보내고 있는 조씨. 하지만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결말처럼 마지막 순간에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있었던 것. 블로그에 시구를 게재하는 일, 노래 가사를 도용하는 일,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일이 모두 현행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

4월1일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이 7월23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은 웹하드나 P2P 등 온라인에 많은 양의 불법저작물을 전송해 이득을 챙기는 헤비 업로더에 대한 제재 강화, 불법저작물을 대량으로 유포하는 인터넷 게시판을 3회 경고 후 6개월까지 정지시킬 수 있는 ‘인터넷 삼진아웃제’가 핵심이다.

저작권 보호는 이처럼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30, 40대는 조씨처럼 관련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30, 40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양상은 저작권위원회 저작권교육연수원이 3월부터 실시한 ‘저작권교육 조건부 기소유예제’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는 저작권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저작권을 경미하게 침해한 사람의 기소를 유예해주는 제도. 이 제도를 통해 3월1일부터 석 달간 저작권 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모두 1905명이며 그중 30, 40대가 40%를 차지한다.

저작권 교육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저작권법에 대한 당국의 홍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블로그에 올린 글에 배경음악을 넣었다가 법무법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정모(39) 씨는 “언론매체들이 저작권법에 대해 언급할 때 무심히 지나친 내 잘못도 있지만, 당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저작권법 위반 유형과 피해 사례를 알려줬더라면 저작권법을 위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캡처해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가 고소당한 양모(45) 씨 또한 “드라마를 통째로도 아니고 딱 한 장면 캡처해 올렸을 뿐인데, 그것이 불법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열악한 홍보 및 교육 여건도 한몫

정부가 저작권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다양한 홍보 프로그램을 마련해놓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저작권위원회는 △온라인 퀴즈대회 개최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 △청소년 대상 홍보물 배포 등을 계획하거나 시행하고 있다. 저작권 교육을 담당하는 저작권위원회 저작권교육연수원에서는 △저작권 체험학급 △저작권 교육 드라마 제작 △교육 교재 개발 △저작권 아카데미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그럼에도 저작권법을 제대로 몰랐다는 30, 40대의 볼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저작권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대부분 청소년층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정책과 정윤재 사무관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장년층이 주요 홍보 대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계층이 대부분 청소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홍보가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홍보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열악한 저작권 홍보 및 교육 여건도 한몫한다. 저작권 관련 교육과 연수를 총괄하는 저작권교육연수원의 정규 직원은 5명에 불과하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지만 전국에 걸쳐 저작권 교육과 전문인력 연수를 진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원. 효과적인 저작권 교육을 위해 교육 대상에 맞춘 다양한 콘텐츠도 제작해야 하지만, 연구 인력이 없어 외부 업체에 용역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7월23일 저작권위원회와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가 통합되면 직원은 늘어날 테지만, 그 인원을 당장 30, 40대를 대상으로 한 저작권 교육과 홍보 업무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저작권위원회 저작권교육연수원 채명기 원장은 “시민단체나 지방자치단체 강좌, 중소업체 대상 무료 교육,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등 30, 40대를 위한 다양한 홍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지만 실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원장이 직접 출판물 제작과 검수까지 하는 실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저작권 교육과 홍보의 사각지대에 놓인 3040세대. 이들은 ‘운수 좋은 날’의 반전을 겪은 제2, 제3의 조씨가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당하고, 합의금을 물고, 교육을 받으면서 이렇게 읊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쩐지 운수가 좋은 것 같더라니….”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종현(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주간동아 2009.07.28 696호 (p56~57)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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