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2009.07.14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목숨 꽃’이 피었습니다

  • 입력2009-07-08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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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목숨 꽃’이 피었습니다

    <B>1</B> 토마토 꽃.

    요즘 밭에는 고추며 호박 꽃이 한창이다. 텃밭의 보랏빛 가지 꽃도 좋고, 복스럽게 피어나는 당근 꽃에도 자꾸 눈길이 간다. 또 양파 꽃은 꽃줄기 끝에서 우주가 폭발하듯 피어난다.

    사람들이 야생화에는 관심을 많이 가져 관련 책도 다양하게 나오지만 곡식이나 채소 꽃은 뜻밖에 잘 모른다. 마치 등잔 밑이 어둡듯이. 농작물 꽃은 야생화와 달리 쓰임새가 여러 가지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고 꽃이 지고 난 뒤에도 그 재미가 쏠쏠하다. 씨앗이 영글어가는 모습도 좋고, 열매 등을 먹을 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지 않은가.

    농사꾼도 보기 힘든 농작물 꽃 활짝

    농작물 꽃은 이렇게 사람을 먹여 살리니 이를 ‘목숨 꽃’이라 부르고 싶다.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디 있으랴. 봄에 일찍이 나비처럼 생긴 꽃을 피우던 완두콩이 요즘 한창 밥상에 오른다. 감자 꽃 역시 하얀 감자는 하얗게 피고, 자주 감자는 자줏빛으로 피더니 이제 캘 때가 됐다. 작은 텃밭만 있으면, 아니 화분에 화초를 키우는 취미만 있으면 목숨 꽃이 주는 무궁무진한 맛도 함께 즐겨볼 수 있을 것이다.

    목숨 꽃은 6월이나 7월에 피는 게 많다. 요즘 토마토, 오이꽃이 한창이고 곧이어 옥수수나 도라지 꽃도 피어날 것이다. 이렇듯 쉽게 볼 수 있는 꽃도 좋지만 흔하지 않아 공을 들인 꽃은 더 볼만하다. 뿌리나 잎을 먹는 채소는 사실 농사꾼도 꽃 보기가 쉽지 않다. 꽃대가 올라오기 전에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노력으로 누구나 목숨 꽃을 즐길 수 있다. 조선배추나 토종 상추는 겨울을 나기에 한두 포기만 그냥 내버려두면 꽃을 피운다. 여기에 견줘 무나 당근은 좀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는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이면 대부분 얼어 죽는다. 얼기 전에 뽑아 땅에 묻거나 저온저장을 한다.

    그렇게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을 틔운다. 이 무를 화분이나 땅에 묻으면 뿌리가 뻗고 잎이 자란다. 그러다 꽃대를 위로 밀어올리고 5월 초부터 꽃을 피운다. 흰빛 바탕에 연한 보랏빛이 부드럽게 감도는 꽃. 이 무꽃은 오래도록 핀다. 먼저 핀 꽃은 꼬투리가 통통하게 익어가면서 꽃가지를 따라 계속 핀다. 우리 집 앞에 심은 무는 6월 중순까지 피었으니 얼추 50일 피었다.

    꽃이 지고 난 무는 꼬투리가 익어가는 모습도 좋다. 풀빛이던 꼬투리가 서서히 노란빛으로 물들다가 갈색으로 바뀐다. 그 속에 든 씨앗은 흙빛을 안고 영글어간다. 이 씨앗을 받아 다시 키우면 어린 새싹 채소를 먹을 수 있다. 종묘상에서 소독 처리한 씨앗과 견줄 수 없이 빛깔부터 사랑스럽다.

    무꽃이 지니 이제 그 곁에 당근 꽃이 활짝 핀다. 이 꽃은 꽃도 예쁘지만 볼수록 느끼는 게 많다. 당근 꽃을 보기는 무꽃보다 조금 쉽다. 추위에 강하기 때문이다. 영하 15도에도 얼어 죽지 않는 당근이 가끔 있다. 내 경험으로 보면 대략 10포기당 1포기가 살아남는 것 같다.

    그러니까 당근 꽃을 보려면 가을에 당근을 다 캐지 않고 일부를 내버려둔 다음 봄에 땅을 갈아엎지 않아야 한다. 실내 화분에서 키운 당근이라면 수분이 마르지 않을 정도만 유지해서 겨울을 나면 된다. 이도 아니면 가을 저장 당근 가운데 봄에 싹이 돋아나는 걸 무처럼 땅에 옮겨 심으면 간단하다. 여름이 시작되면 꽃대를 위로 죽 밀어올린다. 온 힘을 다해 짱짱하게 일어선다. 위로 튼튼하게 올라갈수록 씨앗을 널리 퍼뜨리게 진화한 까닭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목숨 꽃’이 피었습니다

    <B>2</B> 캐머마일 꽃. 야생화에 가까워 잘 자란다. <B>3</B> 캐머마일 차 한 잔. 편안하고 따뜻하며 기분이 좋아진다. <bR> <B>4</B> 무꽃과 꼬투리.<B>5</B> 빅뱅을 떠올리게 하는 양파 꽃.<B>6</B> 터질 듯한 도라지 꽃.

    당근 꽃은 하얗다. 모양은 탐스럽고 복스럽다. 산형꽃차례라 꽃대 끝에서 많은 꽃가지가 우산살 모양으로 나와 끝마다 꽃이 빼곡히 핀다. 하얀 접시 모양으로 피다가 점차 우산을 펼친 모습으로 바뀐다. 꽃가루는 향기가 좋아 온갖 벌레가 몰려든다. 이렇게 피어나는 당근 꽃을 볼 때면 남근의 발기와 사정, 정액이 겹쳐 떠오른다.

    당근 꽃은 지는 모습도 아름답고 지고 나서도 그렇다. 하얗던 색깔이 풀빛으로 바뀌다가 점차 오그라들면서 씨앗을 퍼뜨릴 준비를 한다. 어느 순간은 꽃 뒤에서 보면 마치 사람 주먹 모양으로 ‘여기 당근 씨앗이 나간다. 길을 비켜라’고 외치는 듯하다. 점점 더 익으면 갈색으로 바뀌어 바람이나 짐승 털에 묻어 흩어진다. 이 씨앗을 사람이 계속 살려가면 당근은 곧이어 야생으로 돌아간다.

    ‘팔방미인’ 캐머마일 꽃의 헌신

    목숨 꽃 가운데 1년 내내 쓰임새가 많은 걸 하나 들자면 국화과의 허브 식물인 캐머마일이다. 5월부터 하얀 꽃이 피면서 7월까지 이어진다. 꽃 자체는 그리 눈길을 끌지 않지만 잎과 꽃의 향기가 좋다. 잎은 독특한 향이 있어 샐러드 재료로 봄 내내 먹을 수 있다. 그러다가 꽃이 피는데 이 꽃은 차로 마시면 좋다. 꽃에서는 사과 향이 난다. 꽃을 말렸다가 두고두고 차로 마실 수도 있다. 바람 좋고 맑은 날 꽃송이만 모아 그늘에 말린다.

    허브 차는 다양한 효능이 있는데 캐머마일 차도 그렇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건 기본. 몸을 따뜻하게 해주며 통증을 완화하고 발한 작용을 해 감기에도 좋단다. 말린 꽃잎을 베개에 넣기도 한다. 캐머마일은 키우기도 좋다. 추위에 강해서 겨울을 나니, 한 번 심어두면 잡초와의 경쟁에서도 이길 정도다.

    해마다 봐도 질리지 않는 목숨 꽃. 아니,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꽃이어서 그런지 볼수록 정감이 가고 예쁜 구석을 자꾸 발견하게 된다. 우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목숨 꽃도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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