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0

2009.06.16

어려워도 끌리는 詩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입력2009-06-11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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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워도 끌리는 詩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어머니

    볼에 문질러보네. 안감이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무늬였음을
    오늘은 그 적멸이 내 볼에 어리네.

    위의 시는 김경주 시인의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라는 작품이다. 이 시가 실린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를 두고 권혁웅 시인은 “한국어로 쓰인 중요한 시집 중 한 권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2003년에 데뷔, 아직 신인에 불과한 한 젊은 시인의 시집을 두고 이 정도의 상찬은 솔직히 거북스럽다. 하지만 막상 그의 시를 대하면 ‘기형도의 재래(再來)’라는 말이 호들갑이 아니라는 데 한 표를 던지게 된다.

    ‘어머니는…’을 제외한 그의 시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먼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집에 쏟아지는 기성 시인들의 극찬과 달리 세간의 평가는 실로 다양하다. 한 공중파 방송의 독서 관련 프로그램에서 이 책이 초대작으로 올라오자 철학자 탁석산은 평가를 거부했고, 배우 오지혜와 음악인 이자람은 ‘어렵지만 매력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탁석산의 반응이야 특유의 시니시즘으로 인정해주더라도, 감수성이 남다른 대중 예술인이면서 평소 적지 않은 책을 읽는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나머지 두 사람의 반응에서도 ‘어렵다’는 전제는 빠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시집으로선 밀리언셀러에 해당하는, 1만3000부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했다. ‘홀로서기’ ‘접시꽃 당신’처럼 극적인 감수성에 호소하는 시가 아니면서 이 정도의 반응을 얻기란 매우 드문 일이다. 독자들은 ‘어렵다’는 인식에도 그의 시를 읽고, 시집을 구매했다는 의미다. 더구나 ‘시’는 인터넷에서 검색어만 치면 금세 읽을 수 있는 ‘공공재’라는 왜곡된 인식이 퍼진 현실에서 이 정도의 반응은 실로 격렬한 호응인 셈이다.

    ‘시가 어렵다’는 평은 대중적 인기와 묘한 대칭을 이룬다. ‘시가 쉽다’는 평은 시인의 눈이나 시어가 대중적 감수성과 쉽게 소통한다는 뜻일 것이고, ‘어렵다’는 말은 시인이 세상을 보는 창이나 그가 풀어내는 언어가 편집적이거나 고립적이라는 의미일 터. 우리는 대개 이 지점에서 시인의 시가 ‘어렵다’ ‘쉽다’의 차이를 고민하게 된다.



    시인은 세상을 보고 자신의 눈으로 해석한다. 시인의 창이 투명하면 대중은 쉽게 이해하고 교감한다. 서정시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보는 창이 스테인드글라스로 입혀졌거나, 혹은 닫혀 있거나, 돋보기나 졸보기가 달린 작은 격자창이라면 시인이 내다보는 세상은 굴절되거나 변색돼 일반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큰 거리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당대에 이해받지 못한 시인은 천상병처럼 미쳐 보이거나 혹은 미쳐 있기도 하고, 드물게는 만해나 육사처럼 진실과 싸우며 외롭게 쓰러져가기도 한다. 때문에 당대의 대중은 후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시가, 혹은 예술작품이 ‘대중에게 쉽게 이해돼야 하는가’는 미학의 영원한 숙제다. 그런데 필자와 만난 시인 김경주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일반적으로 어렵다는 평을 받고 있음에도 “‘어머니는…’처럼 말랑말랑한 시를 쓴 것은 독자를 의식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서슴없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어려워도 끌리는 詩

    <B>박경철</B><BR> 의사

    예술가가 감상자를 의식하는 태도는 일종의 ‘정면성’이고, 그것은 이집트 예술이나 고대 벽화, 혹은 바로크나 로코코의 매너리즘 양식에서나 발견되던 진부한 행위다. 종종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시인은 서슴없이 “그렇다”라고 했다. 필자는 그때서야 그의 시가 어렵게 느껴진 이유를, 또 그럼에도 이 시집이 강한 호응을 받은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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