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0

2009.06.16

靑 국정기획수석 “내 애마는 모닝”

박재완 수석 11개월째 경차 이용 … 호텔 도어맨, 관청 경비원에 홀대당하기도

  • 정현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9-06-11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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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靑 국정기획수석 “내 애마는 모닝”

    지난해 7월15일부터 은색 모닝을 타기 시작했다는 박재완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녹색성장의 주무 수석비서관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박재완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의 한 지인은 최근 박 수석과 저녁식사를 한 뒤 독특한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식사를 마친 박 수석이 앙증맞은 경차 ‘모닝’에 올라타고 날렵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본 것. 박 수석의 운전기사가 모닝의 뒷문을 열어줄 때 그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시는 수석비서관이 중대형차도 아닌 경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놀랍고도, 참 좋아 보였다”는 것이다.

    박 수석이 모닝을 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15일부터. 청와대가 에너지 절감을 솔선수범한다는 차원에서 차관급인 수석비서관들의 관용차량을 999cc급 경차 모닝 1대와 1400cc급 베르나 하이브리드(전기와 휘발유로 구동) 9대로 바꿨기 때문. 기존의 관용차량은 2500cc 이상급 그랜저TG와 체어맨 등 대형 승용차였다.

    당시 관용차량 교체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박 수석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에서도 가장 작은 차를 타는 그는 “녹색성장의 주무 수석비서관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 우리는 전체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자원 빈국에 살고 있다는 현실을 자주 잊는다. 혼자 출퇴근하는 운전자들만이라도 되도록 경차를 이용한다면 에너지를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한국의 경차 비율은 8.3%. 지난해 고유가와 경제위기가 겹치면서 경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일본의 32.9%(660cc 이하)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경차를 이용하면 에너지 절감은 물론, 주차가 쉽고 도로 파손도 줄일 수 있다. 또한 교통사고율이 낮아질 뿐 아니라 관공서의 승용차 홀짝제도 적용받지 않아 이롭다.

    초기에 ‘전시행정의 일환 아니겠느냐’며 진의를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었지만, 박 수석은 흔들림 없이 11개월째 모닝을 타고 다니면서 에너지 절약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토·일요일에는 직접 모닝을 운전하고 다닌다.



    박 수석의 모닝 타기는 여러 에피소드도 낳았다. 운전기사에 따르면 박 수석이 시내 호텔로 사람을 만나러 가면 도어맨들이 무시하기 일쑤이고, 과천 정부청사에 도착해 장·차관이 차를 타고 내리는 쪽으로 들어가면 수위가 다른 데로 가라고 지시한다.

    박 수석의 솔선수범과 달리 중앙부처 장·차관들은 대부분 2500cc 이상의 대형 승용차를 탄다. 4월 말 행정안전부가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에게 제출한 ‘중앙행정기관 전용 승용차 현황’에 따르면 중앙부처의 관용차는 대형 승용차 일색이다. 229대 가운데 체어맨(뉴체어맨)이 117대로 가장 많았고 에쿠스 50대, 그랜저 46대 등이 뒤를 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 여러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녹색성장기본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6월에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을 발표할 예정. 7월 G8 기후변화 확대정상회의, 9월 뉴욕 유엔총회 기후변화 정상회의,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도 예정돼 있다. 또 올해 안에 CO₂ 감축 목표량도 발표해야 한다.

    에코시안 지속가능경영연구소 양인목 소장은 “박재완 수석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칠 수 있는 고위 공직자들이 먼저 모범을 보인다면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일이 더 빨라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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