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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제주해협 열어놓고 PSI 참여한다고?

WMD 수송 가능한 남북해운합의서 유지 … 북한 상선 400여 척 무사통과 ‘심각한 맹점’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제주해협 열어놓고 PSI 참여한다고?

제주해협 열어놓고 PSI 참여한다고?

남북해운합의서가 발효된 직후인 2005년 8월17일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북한 상선 ‘황금산호’. 2008년 제주해협을 통과한 북한 상선은 399척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5월25일)이 있은 다음 날 정부는 ‘확산방지구상’으로 번역되는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참여를 발표했다. 이에 PSI 참여 지지자들은 정부 결정을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PSI 참여 선언에는 심각한 맹점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북해운합의서를 그대로 적용하겠다고 한 부분이 그것이다.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발표한 정부 원문을 옮겨본다.

“정부는 대량파괴무기 및 미사일 확산이 세계 평화와 안보에 미치는 심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2009년 5월26일자로 ‘확산방지구상(PSI)’ 원칙을 승인하기로 했다. 단, 남북한 간에 합의된 ‘남북해운합의서’는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두 문장으로 이뤄진 이 발표문에서 주목할 점은 ‘남북해운합의서는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라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의 ‘영해 및 접속수역법’은 제주해협을 대한민국의 영해로 규정한다. 그런데 남북해운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는 북한 상선이 북한 항구를 떠나기 사흘 전에 선박 이름과 적재화물, 운항 목적 등을 통일부에 알리기만 하면 우리 영해인 제주해협을 ‘거의 무조건’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2005년 8월 이후 한 번도 검색 안 해

따라서 북한 남포항에서 WMD(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부속품을 실은 북한 상선이 통일부에 신고하고 출항하면, 사흘 후 이 배는 제주해협을 통과해 대포동 2호를 발사한 무수단리에서 가까운 청진항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제주해협을 통과한 북한 상선은 399척. 하루 한 척 이상의 상선이 제주해협을 통과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남북해운합의서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서 제2조 8항은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북한 상선이 위법행위를 한 혐의가 있을 경우 정선(停船)과 검색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놓았다. 그러나 이 합의서가 발효된 2005년 8월 이후 우리 측은 한 번도 우리 영해를 지나가는 북한 상선을 정선, 검색한 적 없다. 하루에 한 척 이상의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통과하는데도, WMD의 위협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우리는 단 한 번도 북한 선박을 검색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북한이 대포동 2호를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간접 종범(從犯)’인지도 모른다.

남북해운합의서는 2000년 6월15일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남북공동선언을 토대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5월28일 한국의 정세현 통일부 장관과 북한의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맺은 것이다. 그러나 발효는 1년여 뒤인 2005년 8월15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 의해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가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무사 통항을 골자로 한 남북해운합의서의 체결과 발효를 추진하자 국방부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에 대해 정동영 전 장관은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남북해운합의서를 발효시킬 때의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남북 장관급회담 합의를 앞두고 부처 간 회의가 열렸을 때 북측의 제주해협 통과 문제에 관해 참석자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안보적 관행으로 통과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국방당국의 입장이 완강하다는 이유 등이 거론됐다. 이러한 반대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쿠바 국적의 선박도, 이라크 국적의 선박도 제주해협을 통과할 수 있는데 유독 북한 국적의 선박만 안 된다는 논리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실무 당국자 수준에서는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나는 해군 출신인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다행스럽게도 윤 장관은 제주해협은 제3국 선박에도 무해통항권이 인정되는 지역인 만큼, 북측 상선에 대해서도 동등한 권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제주해협 열어놓고 PSI 참여한다고?

‘제2의 해군’격인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무사 통과할 수 있게 남북해운합의서를 관철한 정세현 윤광웅 정동영 전 장관(왼쪽부터).

당시 정동영 통일장관이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무사 통항을 주장했고, 윤광웅 국방장관이 국방부 내부의 반대를 누르고 동의하면서 이 합의서를 발효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당시 윤 국방장관이 거론한 제3국 선박의 제주해협 무해(無害)통항권이다. 무해통항이란 제3국 선박이 ‘통과’만을 목적으로 특정 국가의 영해를 ‘지나가는 것’을 뜻한다. 제3국 선박이 어떠한 위해(危害) 행위도 하지 않고 오로지 지나가기만 할 경우에는 선박의 안전과 경제적 항해를 위해 이를 무조건 허가해야 한다는 국제 룰이 바로 ‘무해통항권’이다.

무해통항권은 어선이나 상선에만 해당된다. 군함이나 정부 소속 선박은 상대국 외무부에 신고해 허가를 받은 뒤 그 나라의 영해를 오로지 ‘통과’만 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은 채 통과하다 발각되면 특정 국가 해군의 공격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 때문에 제주해협을 지나려는 중국 잠수함은 우리 외무부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은 후, 어떠한 작전도 이행하지 않고 통과만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수면으로 부상(浮上)해 항해한다. 쿠바나 이라크의 정부 선박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면 통과할 수 있다.

“위험하다” 당시 해군 수뇌부 강력 반대

제주해협 열어놓고 PSI 참여한다고?

‘영해 및 접속수역법’이 정한 대한민국의 영해 범위. 제주해협은 분명 우리 영해 안에 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어선이나 상선으로 위장한 북한의 공작 모선(母船)은 한반도 남쪽의 공해(公海)로 내려온 뒤 은밀하게 잠수정을 내려 남해안으로 침투시킨 사례가 적지 않다. 1998년 여수해안에 침투했다가 발각돼 격침된 북한의 반잠수정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에는 상선을 운영하는 민간 해운사가 없다. 북한의 상선은 모두 북한 정부 소속으로 돼 있어 ‘제2해군’이라고도 불린다. 2007년 10월30일 아덴만에서 활동하던 미 해군 구축함은 소말리아 해적에게 쫓기는 북한 상선 ‘대홍단호’를 구해준 바 있는데, 이때 대홍단호에 탄 북한 선원들이 개인 화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 스페인 해군은 미군의 정보를 토대로 미사일 부품을 싣고 들어온 북한의 서산호를 검색해 나포했는데, 이 사건은 미국이 주도한 PSI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중대한 계기가 됐다. 이런 식으로 북한의 상선이 선원을 무장시킨 상태에서 WMD나 그 부속품을 운반한 사례가 적지 않은데도 한국은 2005년 이후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무사 통항을 허용해왔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PSI 참여를 선언하는 동시에 남북해운합의서는 그대로 적용하겠다고 밝힘으로써 PSI 참여를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드는 모순을 만들었다.

해군 출신인 당시 윤 국방장관은 정 통일장관의 주장에 동조해줬지만, 해군 수뇌부는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무사 통항에 강력히 반대했다. 이 시기에 해군 작전사령관을 지낸 김성만 예비역 중장은 “제주해협에 들어온 북한의 상선은 통과 도중 비밀리에 싣고 온 잠수정을 내려보낼 수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발사할 투발수단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기에 당장 핵미사일을 한국으로 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상선에 핵무기를 실은 뒤 제주해협을 지나다가 부산항 쪽으로 돌진하게 하거나 남해안을 떠돌면서 위협을 가하게 한다면, 한국에 대단한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09.06.16 690호 (p48~49)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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