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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ALLERGY 07

한방 탕(湯)과 ‘허임 침법’으로 알레르기 ‘역병’쫓는다

갑산한의원 이상곤 박사의 비염·천식 치료법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한방 탕(湯)과 ‘허임 침법’으로 알레르기 ‘역병’쫓는다

한방 탕(湯)과 ‘허임 침법’으로  알레르기 ‘역병’쫓는다

이상곤 원장이 안면 모형으로 환자에게 비염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신라 헌강왕(875~885) 때 처용이 지은 8구체 향가 ‘처용가’는, 아내의 간통을 애통해하는 남편의 마음을 시로 읊은 것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의학에선 이를 역병(疫病)의 범람을 슬퍼하고 인내하는 노래로 해석한다. 아내의 부정(不貞)은 곧 역병이며, ‘본디 내 것’이란 표현은 역병이 ‘내 몸이 만들어낸 병’이라는 뜻인 것이다. 아내와 역신(疫神)의 동침을 지켜본 처용은 이를 용서한다. 한의학계는 이를 통해 ‘역병이 창궐해도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관용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 이 노래의 진정한 주제라고 본다.

코 온도조절, 점액 분비가 비염 치료 관건

역병에 대처한다는 것, 즉 역병을 면(免)한다는 것은 요즘 말로 ‘면역(免疫)’이다. 현대의학에서 면역체계는 해로운 이물질에 대한 우리 몸의 방어체계를 뜻한다. 이런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 바로 알레르기라는 점에서, ‘처용가’에는 알레르기의 기본 개념이 다 들어가 있다고 봐야 한다. ‘본디 내 것인데 다만 빼앗긴 것’이란 대목은 자신의 면역체계가 꼭 해로운 병균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알레르기 현상을 가리킨다. 이렇듯 우리 한의학에는 예전부터 알레르기라는 개념이 존재했고, 그 근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각종 알레르기 질환을 한의학적 요법, 즉 탕과 침으로 치료하는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한의학 박사·면역학 전공)도 알레르기의 역사를 역병을 노래한 처용과 자주 연관짓는다.

“고려 사람들은 ‘처용 아비만 본다면 열병신이야 횟감이로다’라며 역병에서 벗어나려 했고, 조선시대 사람들도 역병을 막고자 처용의 탈을 쓰고 춤췄습니다. 역병이 돌면 신라 사람처럼 처용의 초상을 그려 벽에 붙이기도 했지요.”

역병이 피할 수 없는 병이라 보고 관용적으로 대처한 것이다. 한의학은 알레르기의 원인을 신체 내부에서 찾는다. 이 원장은 “현대의학이 외부 물질을 적으로 규정하고 반응성(염증)을 가라앉히는 것 위주로 치료하는 반면, 한의학은 환자의 신체 기능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결국 “알레르기는 나 자신의 문제이지 꽃가루나 먼지 등 이물질의 탓이 아니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한국형 알레르기가 생겼다”며 유발 원인을 크게 2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온도조절 능력의 약화입니다. ‘체온적응 장애’라고 하는데, 한의학에서는 ‘형한음랭(形寒飮冷)’이라 합니다. 위, 폐, 피부 등이 장애 현상과 관련이 깊어요.

그중 코는 외부 공기가 들어오면 0.25초 만에 36.5℃가 되도록 데워 심장과 폐에 그 열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 조절 기능이 원활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온도 변화 자체를 적으로 간주해 방어기전을 작동합니다. 열을 몸 밖으로 내보내면서 ‘방출에 의한 방어’를 하는 겁니다. 두 번째 원인은 점액분비 능력의 약화입니다. 코 안의 점액은 보통 하루에 1.2ℓ정도 분비돼야 정상인데 그 양이 줄어 콧속의 ‘코팅’ 작용이 제대로 안 되면 재채기와 콧물, 가려움증 등이 나타납니다. 이때도 ‘방출에 의한 방어’를 하는 거죠. 이게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한방 탕(湯)과 ‘허임 침법’으로  알레르기 ‘역병’쫓는다

비염 환자에게 허임 보사법 시술을 하고 있다(위).
염증이 많을 때는 뜸치료를 병행한다 (아래).

따라서 이 원장은 알레르기 질환 중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염은 코의 온도조절 능력을 회복하고 점액분비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치료의 주안점을 둔다. 온도조절 능력 회복을 위해 소청룡탕(小靑龍湯)을 주로 처방하는데, 여기에는 마황이 주약재로 들어간다. 마황에는 위축된 폐의 기운을 정상화해 호흡을 편안하게 하고(宣肺平喘), 폐의 온도를 높여주는 효능이 있다. 반면 코가 건조할 때는 맥문동탕(麥門冬湯) 등을 쓴다. 코 점액의 분비를 돕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되살아난 허임 보사법 … 비염, 천식 치료

이 원장은 대구한의대 교수로 재직할 때 대규모 임상실험으로 이 같은 한의학 비염 치료의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알레르기 비염을 3년 이상 앓고, 혈액 중 호산구(과립성 백혈구의 일종으로 염증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수치가 높으며 콧물, 코막힘 증상이 뚜렷한 80명의 환자가 그 대상이었다. 3개월 동안 체온과 습도조절 효능이 있는 황기, 방풍 같은 재료로 만든 한약을 복용시키면서 혈액, 병리, 화학, 알레르기 검사를 했더니 74% 환자에게서 알레르기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이 원장은 비염은 물론 천식, 축농증 등 호흡기 질환 치료를 위해 수백 년 전의 침법을 부활시켰다. 이른바 허임의 보사법(補瀉法)이 그것이다. 보사법은 선조와 광해군 때 활약한 침의로 당시 어의였던 허준이 실력을 인정한 허임(1570~1647 추정)의 침술. 예컨대 5푼 길이로 침을 찌른다면, 먼저 2푼 찌르고 멈췄다 다시 2푼 찌르고 나머지 1푼을 순차적으로 꽂는 방식이다. 이 원장은 12년 전 미국의 지인에게서 “중국인 한의사가 침 한 방으로 알레르기성 비염을 1년 동안 잠재웠다”라는 말을 들은 뒤 보사법 복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환자에게 숨을 들이쉬게 한 뒤 침을 빼고 손가락으로 침구멍을 막으면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몸의 기가 보(補·가득 차다)되고, 반대인 사법(瀉法)으로 5푼(1푼: 0.33cm) 찌르고 2푼 빼고 다시 2푼 빼 침구멍을 열고 환자에게 숨을 내쉬게 하면 기가 빠져나가는데, 이 보사 과정이 폐의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비염, 천식 등에 효과가 큽니다.”

이 원장은 자신이 복원한 허임 보사법을 하늘, 땅, 사람의 기운이 함께 적용된다는 뜻에서 ‘천지인 침법’이라 이름 붙였다. 이 원장은 온도적응 장애로 아침, 저녁 재채기를 많이 하는 한랭성 알레르기 비염 환자에게는 보법을, 반대로 꽃가루나 지하철 먼지, 황사에 예민해 재채기가 먼저 나고 콧물이 나오는 환자에겐 사법을 써 면역의 과민성을 완화시킨다.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의 한방 치료법은 환자의 증상과 체질에 맞게 몸에 불길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몸이 스스로 온도조절 기능을 되찾아갑니다. 이렇게 몸속의 냉·난방이 유효적절하게 이뤄져 정상체온을 유지하도록 자동 센서를 부착해주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주간동아 2009.05.12 685호 (p42~43)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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