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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를 한 번만 만져보세요”

동반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심리학자의 편지

  • 조용범 전 생명인권운동본부 공동대표·미국 뉴욕주 심리학자 ycho@thetreeg.com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를 한 번만 만져보세요”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를 한 번만 만져보세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집단자살이 잇따르는 등 인터넷 자살카페와 집단자살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언론의 자살사건 관련 보도 ‘자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에 ‘주간동아’는 자살예방 관련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심리학자 조용범 박사에게서 집단자살 보도에 흔들릴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한 편지를 받아 게재한다. 조 박사는 지난해 탤런트 최진실 씨의 자살 직후 자살 충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바 있다(주간동아 657호 ‘나 힘든데 같이 있어줄래? 누구에게든 전화 거세요’ 참조). -편집자주

또다시 많은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 번째 편지를 씁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연쇄자살 사건은 1997년 경제위기 때 발생한 수많은 연쇄자살을 떠올리게 합니다. 불길한 예감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 시대의 자살 현상은 당시 정치·경제·사회적 상황과 이에 대한 개인의 심리적 반향을 이해해야 좀더 정확히 진단할 수 있습니다. 자살은 흔히 개인의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같은 연령대나 직업군의 사람들이 연쇄적 혹은 집단적으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단적인 예가 부끄럽게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보이는 노인 자살입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선택한 노인의 수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21세기 고려장’이라고 부릅니다. 정서적으로 소외되고 스스로 무가치하게 느끼는 노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며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생명의 끈을 놓는 것은 분명 집단적 자살이고, 우리는 자살 방조의 공범입니다.

한국만큼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나라가 또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자기 가족이나 가신(家臣) 그룹에 속하지 않으면 적으로 규정하고 죽일 듯 경쟁하는 사이코패스적인 현상을 사회 곳곳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죽음을 택하도록 하는 자살의 문화. 집단을 구하기 위해 패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본 사무라이의 할복처럼, 한국 노인들도 집단 할복을 하는 게 아닐까요.

현재의 시대적 자살현상은 다음의 복합 요인들이 혼재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은 안재환 최진실 장자연 같은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과 이러한 사건에 대한 방송언론의 무절제한 보도입니다. 수많은 연구에서 연예인의 자살은 마치 순장(殉葬)처럼 비슷한 연령대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간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이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피상적 보도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비슷한 사람들에게 ‘자살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연예인들의 자살은 분명 부끄러운 시대의 모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불법 사채업의 폭력성, 권력자의 성적 착취 등이 감지되지만 우리 사회는 진실을 밝히지도, 모순을 일으킨 자를 처벌하지도 않습니다.

뭐든 적극적 행동 땐 죽음에 대한 생각 소멸

두 번째로는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실업문제입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세계 경제불황과 새 정부의 정책적 오류는 벌써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고 가족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번 집단자살 사건에는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미래를 장담할 수 없던 이들,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97년 이후 있었던 참혹한 생명의 손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실업문제를 해소할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둘 사라지는 이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한국에는 유행처럼 선호되는 치명적 자살수단들이 있습니다. 연탄과 번개탄, 맹독성 제초제 등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안전에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역시 많은 연구가 이러한 치명적 자살수단에서 멀어질 때 자살률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폭음의 일상화’입니다. 술 또한 위험한 자살수단입니다. 맹독성 자살수단을 사용하기 전, 대부분의 자살자는 술을 마십니다. 독주가 매우 싼 한국에서 저소득층은 술로 불만을 삭이는 데 너무도 익숙합니다.

집단적으로 특정 장소를 선택해 자살하는 것은 그동안 사이비 종교에서나 행해지던 일이었습니다. 교주가 천국에 가자며 신도들에게 독약을 나눠 마시게 하는 일은 세계 곳곳에서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지도자의 명령에 순응하며 독약을 마시는 메커니즘은 사회심리적으로 쉽게 이해되는 인간의 일반적 순응행동 패턴입니다. 이번 강원도 집단자살에서의 이념은 염세적 비관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비관론과 염세주의는 개인적 소인(素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 소인을 예방하거나 보호하지 못한 사회시스템의 부재, 그리고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문제에 책임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중 자신의 상황이 비극적이며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을 만큼 비참하다면, 자살을 결행할 동반자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한적한 펜션에서 술을 마시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면 밖으로 나와 자연의 향기를, 죽여도 죽여도 뿌리를 내리는 잡초의 삶을 오감을 열고 오랫동안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염세적인 생각으로 몰고 가는 요인들이 실제로는 자기 탓이 아니라, 안전한 환경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에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십시오. 그리고 위험요인을 적극적으로 제거해나가십시오. 안전하지 않은 독극물의 유통을 제한하라고 정부에 요구하십시오. 실업 구제를 요구하십시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세요. 그들과 술을 마시는 것 말고, 즐거운 일을 함께 하세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신기하게도 이렇게 적극적인 행동을 하면 수분에서 수시간 안에 사라집니다. 이 비밀을 알게 된 여러분은 이제 생명지킴이입니다. 적극적으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면서 스스로를, 서로를 구하십시오.



주간동아 2009.05.12 685호 (p62~63)

조용범 전 생명인권운동본부 공동대표·미국 뉴욕주 심리학자 ycho@thetree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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