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0

2009.04.07

“창조적 아이디어가 돈 되는 시스템 만들겠다”

(인터뷰)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9-04-03 1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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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적 아이디어가 돈 되는 시스템 만들겠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기획수석을 맡아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미래기획위원회는 국가 비전 및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대통령 자문기구다.

    정부가 ‘1인 기업’ 육성에 팔을 걷고 나섰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어려움에 빠져 있는 중산층 지원 대책의 일환이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3월23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부처 합동회의를 열고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게 막고 △빈곤층이 중산층 대열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도우며 △빈곤층 청소년들을 미래의 중산층으로 길러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산층 키우기 휴먼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중요하게 논의된 어젠다 가운데 하나가 ‘1인 기업’ 육성. 정부는 ‘1인 기업’ 중에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전문지식 등을 바탕으로 설립된 것만을 묶어 ‘1인 창조기업’으로 규정하고 관련 분야 창업에 지원을 집중하기로 했다. 남다른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기업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이 정책의 기획과 입안을 주도한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은 “1인 창조기업이 활성화하면 중산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1인 창조기업이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부가 향후 정책 기조를 ‘중산층 키우기’로 정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법 가운데 하나로 창업 활성화를 내놨다. ‘중산층’과 ‘창업’을 경제정책의 키워드로 삼은 이유는.



    “세계적인 경제위기 여파로 중산층이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납세와 소비의 중추인 중산층이 몰락하면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입는다. 중산층을 키우는 것이 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이후 재도약하는 데 유리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봤다. 창업을 강조한 것은 ‘취업 아니면 실업’이라는 이분법적 패러다임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창조적 마인드를 가진 중산층이 ‘구직’을 넘어 ‘창직(創職)’을 꿈꾸게 해야 한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33.6%로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미 창업이 활성화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1인 창조기업’은 이 같은 일반 자영업과 어떻게 다른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창업의 기본 요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분야는 숙박업, 음식점업, 도·소매업, 운송업 등이다. 하지만 ‘1인 창조기업’으로서 지원받으려면 정보기술(IT)·인터넷·디자인 등 제조 관련 서비스업, 영화·만화·관광·저술·출판 등 문화 관련 서비스업, 전통식품·공예 등 일부 제조업 분야에서 창업해야 한다. 모두 경제적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높은 업종이다.”

    ‘1인 창조기업’의 범주에 속하는 직종 종사자들은 지금까지 기업을 만들기보다 주로 프리랜서로 활동해왔다. 제도권 밖에 있는 프리랜서도 ‘1인 창조기업’ 육성 정책의 대상이 되나.

    “2008년 현재 우리나라의 프리랜서는 약 34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을 뿐, 자신의 아이디어와 전문 기술을 바탕으로 일하는 사실상 ‘1인 창조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잠재적 기업’으로 분류하고 창업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해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일 생각이다. 규제 완화, 세금 감면 등을 통해 창업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면 2012년까지 최소 10%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1인 창조기업’ 육성 정책의 목표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산업화해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것이다.”

    ‘1인 창조기업’ 육성 정책의 관건은 ‘아이디어 발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 개개인이 가진 아이디어를 끌어내 고용 및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할 방법이 있나.

    “지금 정부에서는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등록 시스템 ‘IBB(Idea Biz Bank)’를 구축 중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간단한 사업기획서 형태로 등록하면 전문가들이 내용을 평가한 뒤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정된 아이디어에는 자금을 지원하고,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운영에 도움이 될 아이디어는 기업 쪽으로 연결해주는 등 사업기획서의 성격에 맞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계획이다. 온라인 포털사이트를 만들고 인터넷을 사용하기 어려운 노인층 등의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오프라인 ‘아이디어 발굴단’도 운영할 생각이다.”

    김대중 정부가 벤처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한동안 창업 붐이 일었지만, 결국 대다수가 실패한 전례가 있다. 경기침체로 기존 자영업자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지금 ‘1인 창조기업’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원래 창업은 위험부담을 안고 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한다고 해서 모든 ‘1인 창조기업’이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무너지면 할 수 없고, 무너질 기업은 무너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다음번에는 성공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구축할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설립된 벤처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문을 닫은 건 사실이지만, 살아남은 곳은 네이버처럼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기회비용이다. 정부는 한 번 실패해도 또 창업하고, 다시 실패하면 거듭 창업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창업 육성 정책을 펴다 보면 정부 지원을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급증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인 기업 지원정책을 폈다가 경제활동이 전혀 없는 유령기업이 보조금만 챙겨가는 사례가 빈발해 사회문제가 됐다.

    “우리나라의 ‘1인 창조기업’ 육성 정책은 독일의 ‘1인 기업 지원정책(Ich AG)’과 차이가 있다. 독일은 연 매출액이 2만5000유로 이하인 기업에 3년간 창업지원금을 보조하는 등 돈을 풀었다. 이 과정에서 유령기업이 양산될 소지가 생겼다. 그러나 우리는 자금 지원보다 규제 완화, 세금 감면 같은 정책적 혜택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유통시켜 창업을 지원하는 IBB 시스템을 마련한 것도 우리만의 강점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의 아이디어와 각종 기술, 전문 노하우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시장을 만들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1인 창조기업’이 활성화되고 경제에도 활력이 생길 것이다.”

    창업 지원, 고객 확보, 판매 활로 개척

    ‘1인 창조기업’ 이렇게 지원한다


    “창조적 아이디어가 돈 되는 시스템 만들겠다”

    *위 시스템은 현재 구축 중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료 제공 : 중소기업청

    미국 애플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마켓 ‘앱스토어’에서 요즘 한국인 프로그래머 변해준 씨가 개발한 게임 프로그램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헤비 매크’라는 이름의 이 게임은 등록 9일 만에 유료 애플리케이션 판매 순위 3위에 올라섰고, 이후에도 계속 상위권에 랭크됐다. 드림위즈 이찬진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에 “전체 5위 안에 들면 하루에 수천 개씩은 팔릴 테니 (개발자 변씨는) 하루에 수백만원씩 버는 셈”이라며 “1~2주 안에 저희가 몇 달 일해 올린 수입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변씨의 사례는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 해법으로 제시한 ‘1인 창조기업’ 모델과 맥을 같이한다. 중소기업청이 3월26일 발표한 ‘1인 창조기업 활성화 대책’도 일반인들이 변씨처럼 자신의 기술이나 지식,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해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범정부적인 아이디어 수집 및 발굴 시스템 IBB(Idea Biz Bank) 구축(그림 참조). ‘1인 창업’을 꿈꾸는 개인이 IBB 시스템에 아이디어를 등록하면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단이 아이디어를 검토한 뒤 △제품으로 만드는 상품화형 △아이디어 자체를 파는 판매형 △서비스 제공형 등으로 분류해 각 유형에 맞는 지원을 제공한다. 즉시 상품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경우 ‘아이디어 상업화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해 자금 지원은 물론 사업화 기획 및 마케팅을 일괄 지원하고, 상품화된 제품이 출시되면 소비자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다(예산 275억원 배정). IBB 시스템은 5월 초 시범 운영된 뒤 6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될 예정이다.

    최대 1억원까지 특례보증제도 도입

    ‘1인 창조기업’ 활성화를 위해 각종 법령도 개정된다. 골자는 1인 창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을 대폭 완화하는 것. 상법을 고쳐 최저자본금 조건 등을 폐지하고 전통식품, 발효식품 제조업의 경우 창업 기준을 완화해 소규모 사업장에서도 제조할 수 있도록 할 계획. 이렇게 되면 메주나 고추장 등 전통음식 개발에 재능이 있는 노인 등이 가정에서 1인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 간장, 벌꿀 같은 전통식품을 시골집에서도 팔 수 있도록 식품위생법상 즉석 판매 및 제조 가능 식품의 범위를 넓히고, 닭과 오리뿐 아니라 장류, 음료 등에도 옻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1인 창조기업의 경우 서울에서 창업하더라도 ‘등록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행 지방세법은 수도권 내에 법인을 등록하면 등록세의 3배를 매기고 있다. 지금까지 1인 기업에 적용되지 않았던 고용보험 중 실업급여도 인정하기로 했다. 창업 후 고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배려하는 정책도 마련됐다. 민간기업이 디자인이나 번역을 1인 창조기업에 아웃소싱하면 사용 기업에 바우처 지급 방식으로 계약 비용의 일부(10%, 300만원 한도)를 지원한다.

    1인 기업의 경영 안정을 위해 창업자금 등 정책자금을 먼저 배정하고, 최대 1억원까지 보증하는 ‘1인 창조기업 특례보증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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