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0

2009.04.07

“그런 걸 왜 하느냐고? 날지 않고 날개 접을 순 없다”

탐험가 최종열 씨, 노 하나로 2000km 한반도 뱃길 일주 도전

  • 오진영 자유기고가 ohnong@hanmail.net

    입력2009-04-03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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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걸 왜 하느냐고? 날지 않고 날개 접을 순 없다”
    국내 최초 북극점 정복, 세계 최초 사하라사막 도보 횡단, 실크로드 자전거 횡단 등의 기록을 가진 탐험가 최종열(51) 씨가 이번에는 무동력 보트를 타고 한반도 해양 탐험에 나선다. 1987년 에베레스트 등반부터 2002년 아프리카 적도 대탐험까지, 30년 가까이 대자연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최씨에게 바다 탐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 영토는 해양 면적이 육지 면적의 4.5배에 이릅니다. 바다 자원은 21세기 환경보호 시대의 미래이자 마지막 보루예요.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희망과 도전정신을 일깨운다는 취지로 이번 탐험을 계획했습니다.”

    희망 일깨우는 일 … 바다 탐험은 처음

    충북 제천의 청풍호반에서 만난 최씨는 직접 제작한 길이 7.3m, 폭 1.8m의 보트를 보여주며 해양 탐험에 대해 설명했다. 모터 없이 노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이 보트로 5월 초 동해시를 출발해 독도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간 뒤, 제주도 남쪽의 수중섬인 이어도까지 갔다가 서해를 거슬러 올라 인천에서 마칠 계획이다. 하루에 40∼50km를 노 저어 전체 2000km를 일주하는 데 50∼60일이 소요될 예정. 중간에 정박하는 곳에서 현지 청소년들을 초대해 해양자원의 중요성과 탐험정신에 대한 강연도 열고 2010년 제천 한방 바이오엑스포도 홍보할 계획이다.

    언뜻 보기에 ‘이 배로 바닷길 2000km를?’이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배는 작고 단출했다. 그래도 바닷물을 식수로 정수하는 장치와 태양열을 전기로 바꾸는 패널, 주변의 큰 배와 충돌을 피하기 위한 반사 레이더 등을 장착해 이 배를 완성하는 데 1억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단다.



    “전 세계 해양 탐험가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만난 영국인 탐험 헤드매니저에게 한반도 해양 탐험 계획을 이야기하고 배를 만들 설계도를 부탁했더니 ‘당신들 기술로는 만들기 어려울 테니 영국에서 만들어가라’고 하더군요. 한국 최초의 해양 탐험이고 내 생명을 좌우하는 배인 만큼 반드시 내 손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지요.”

    무동력 보트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탐험가들의 책에 실린 설계도를 참조하고 강화 플라스틱(FRP) 접착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1년 걸려 배를 제작했다. 배 만드는 비용을 대기 위해 노후 대비로 들어놓은 적금을 깨고 집을 담보로 대출받고 지인들의 도움도 받았다. 후원을 얻으려 몇 군데 대기업 홍보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요즘 경기가 워낙 어려워서…’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최씨는 “선진국에선 탐험에 대한 기업 후원이 활발한데, 아직 우리나라 사정은 그렇지 못해 후배 양성에도 어려움이 많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박수 치며 격려해주는 사람보다 “그런 걸 왜 하는데?”라고 묻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늘 새로운 탐험의 길을 떠나는 꿈을 놓지 않고 살아온 반평생. 한번 집을 떠나면 몇 달이 지나야 돌아오는 아빠에게 “다시는 가지 말라”고 칭얼대던 어린 두 딸은 이제 아빠의 꿈을 이해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헤어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 같은 더위 속에 사막을 건넜고 손발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를 동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북극도 다녀온 최씨지만, 뜻밖에도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그의 인생에서 첫 번째 도전이던 전국 일주 마라톤이었다고 한다. 삼복더위에 1400km를 달리면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달리고 나니 ‘뭐든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실크로드를 자전거로 횡단할 때나 아프리카 적도의 밀림을 탐험할 때, 힘들어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 용기와 자신감을 길어올리는 우물이 됐다.

    국민적 관심 환기, 이어도 탐험 구상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비록 작더라도 어떤 한계를 넘었다는 극기의 경험이 인생의 여러 위기를 이겨내는 힘을 키워준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어려움만 남았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도 살 수 없을 겁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이 나의 추진력이 됩니다.”

    탐험은 자신과의 싸움이고 시간과의 싸움이자, 들고 가는 짐의 무게와의 싸움이었다. 그에게 삶의 의미를 새롭게 가르쳐준 경험은 1991년 북극점 탐험 때였다.

    “얼음이 갈라지면서 바닷물에 빠졌는데 끌고 있던 썰매가 얼음턱에 걸린 덕에 간신히 살아났어요. 영하 40℃의 추위에 바로 불을 피워 몸을 말리지 않으면 동상에 걸려 손발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를 위기였습니다.”

    몸에 지니고 있던 라이터는 젖어서 불이 켜지지 않았다. 추위와 공포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 배낭 밑바닥에 여벌 라이터가 있다는 게 문득 떠올랐다.

    “그런 걸 왜 하느냐고? 날지 않고 날개 접을 순 없다”

    <b>1</b> 1995년 사하라 도보횡단 당시의 최종렬 씨(오른쪽). <b>2</b> 2001년 로마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종주에 나서기도 했다(맨 오른쪽).

    “라이터로 버너에 불을 붙이는 순간, 그 작은 불꽃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웠는지, 그 순간의 행복을 잊지 못합니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결코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는 요즘 하루 7만 번 노를 저어야 40km를 가는 해양 탐험을 앞두고 체력을 단련 중이다. 이번 한반도 뱃길 일주 도전을 무사히 마치면 해양 탐험 루트를 해외로 넓힐 계획이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이 걸려 있는 이어도 탐험도 구상 중이다. 국민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도전을 앞두고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두려워서 떠나지 못한다면 평생 꿈만 꾸다 말겠지요. 날아보지도 않고 날개를 접을 수는 없어요. 바다에서 하루 만에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출발할 겁니다.”

    두려움을 딛고 날아오르는 도약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지금, 최씨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탐험의 정신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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