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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 없는 K-1 짜릿한 재미 ‘헛방’

‘월드 그랑프리 16’ 서울대회 기대 이하 … 경기 중 기권 최홍만 팬들 아쉬움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한 방 없는 K-1 짜릿한 재미 ‘헛방’

한 방 없는 K-1 짜릿한 재미 ‘헛방’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링에 복귀, 월드 그랑프리 16강전에 출전한 최홍만(왼쪽)은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바다 하리에 판정패해 팬들을 실망시켰다.

K-1과 프로복싱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몰입’의 정도가 다른 점이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아닐까. 세계 정상급 프로복서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강도 높은 몰입 과정에 빠진다. 서너 달 동안 훈련캠프를 차려 상대방의 스타일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대비책을 찾는다.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지속적으로 로드워크를 하며 다양한 테크닉도 연마한다.

링에 올라서도 집중력을 발휘한다. 매 시합이 세계 타이틀전 등 큰 의미를 갖는 데다 경기를 1년에 한두 번밖에 갖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패배는 치명적이다. 타이틀을 따거나 잃는다. 챔피언과 비(非)챔피언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해당 체급의 챔피언은 한 명밖에 없어 숱한 도전자들은 그를 꺾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챔피언과 주먹을 섞을 도전 기회가 그리 쉽게 오지도 않는다.

입식 타격기를 대표하는 K-1 선수들도 훈련에 열중하는 것이야 다를 바 없다. 주먹뿐 아니라 발차기도 단련해야 한다. 그러나 대전 방식이 프로복싱에 비해 조금 느슨한 편이다.

단판승부가 아니라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지역 예선 대회도 매년 열려 선수가 링에 오르는 빈도가 잦다. 또 선수끼리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경우가 많아 격투 종목의 특성인 ‘죽기 살기’식으로 상대방을 때리는지도 의문이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최홍만(28)의 복귀전으로 관심을 모은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16’ 서울 대회. 서울 잠실 올림픽체육관 체조경기장에서 9월27일 열린 이 대회는 세계적인 격투기 스타들이 무더기로 출전해 팬들의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파이널 16’에 참가한 선수 16명 가운데 승자 8명은 연말 그랑프리 결승전에 나간다. 12월6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막하는 결승전은 15회째다.



1993년 1회 대회 이후 이제 꽤 연륜이 쌓였다. 이번 대회 참가자 16명 가운데 지난해 결승전 출전자 8명은 자동적으로 포함됐다. 나머지 8명은 지역 예선 통과자나 흥행에 필요한 선수 등으로 충원됐다.

이번 대회는 대체로 “박진감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달리 말하면 재미가 없었다는 것. 8경기 가운데 KO 승부는 루슬란 카라예프(25)와 할리드 디 파우스트(33)의 대전뿐이었다. 카라예프는 1라운드에 다운당한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2라운드 들어 부지런히 달려들어 강력한 라이트 훅 펀치로 파우스트를 쓰러뜨렸다.

판정으로 승부가 난다 해도 경기 내용이 알차면 흥미진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내용도 좋지 않았다. 최홍만의 상대는 모로코 출신의 강타자 바다 하리(24). 키 198cm, 몸무게 94kg의 탄탄한 체격과 강력한 펀치력을 지닌 선수다. 별명은 ‘악동’. 경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하리는 최홍만에게 살기마저 감도는 듯한 독설을 퍼부었고 최홍만은 “화끈한 정면승부를 벌이겠다”고 맞받았다.

그러나 막상 링에 오른 두 선수는 3라운드 내내 별다른 격돌을 벌이지 않았다. 최홍만은 먼저 주먹을 뻗는 경우가 거의 없을 만큼 소극적이었다. 2라운드에서 카운터펀치로 엉겁결에 하리를 밀치는 듯 때려 다운을 얻어낸 정도. 최홍만은 연습 부족 탓에 육안으로 보기에도 근육량이 현저히 줄었다. 무승부 판정이 나 연장전을 벌이려 했으나 최홍만 측이 링에 타월을 던져 기권 의사를 나타냈다.

월드 그랑프리를 진행하는 다니가와 사다하루 K-1 프로듀서는 기자회견에서 “최홍만의 부상 정도를 봐서 연말 결승전 리저브 경기에 출전시키려 생각한다”고 밝혔다. 리저브 경기란 결승 토너먼트에서 부상 때문에 다음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가 생기면 대신 참가자를 뽑기 위해 두 선수가 벌이는 시합이다. 리저브 제도가 선수들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지금 경기에 지더라도 리저브를 통해 결승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후배끼리 때리기가 곤란하다?

K-1 그랑프리의 13회, 14회, 15회 대회 챔피언에 3년 연속 등극한 ‘현역 최강’ 세미 슐츠(35)와 2회, 3회, 6회 챔피언인 노장 피터 아츠(38)와의 격돌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경기였다.

아츠가 줄곧 탱크처럼 파고들며 좌우 훅 펀치를 날린 반면 슐츠는 주특기인 하이킥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아츠가 판정승해 슐츠의 그랑프리 4연속 우승을 저지했다. 이 경기는 고수끼리의 대결답게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으나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는 ‘한 방’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싱거웠다. 슐츠는 아츠에 비해 연습량이 부족한 듯했다. 예전보다 피하지방이 많아 보였다.

그랑프리 11회, 12회 우승자인 레미 본야스키(32)도 폴 슬로윈스키(28)를 맞아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 않았다. 판정으로 이길 만큼의 공격만 하는 인상이었다. 그의 특기인 플라잉 킥도 시늉만 하는 듯했다.

슐츠, 아츠, 본야스키 등은 모두 네덜란드 국적자들인 데다 사적으로도 무척 친하다. 이는 격렬한 K-1 경기에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려는 의지를 경감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K-1 선수는 패배를 병가상사(兵家常事)로 여기는 반면 프로복서는 ‘패배=몰락’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간동아 2008.10.14 656호 (p62~63)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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