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6

2008.10.14

‘탕치기 VS 온라인 수배’… 유흥가가 뿔났다

유령 취직 선불금 가로채고 잠적 잇따라 … 업주들 여성 정보공개 합동 추격전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10-08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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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치기 VS 온라인 수배’… 유흥가가 뿔났다
    ‘본명 ○○○(가명은 ○○이나 ○○ 사용), 주민번호 83xxxx-2xxxxxx, 선불금 1200만원. 키 163cm, 55사이즈, 뚱뚱한 편이며 몸에 비해 가슴이 엄청 큼. 잠잘 때도 속눈썹을 붙이고 있음. 주소 대구광역시 달서구 ○○동 ○○○-○, 계좌번호 농협 1○○-01-○○○○○○.’

    이 같은 정보는 유흥업소 업주들이 속칭 ‘탕치기’(유흥업소 취업을 위장한 여성들이 업주에게서 선불금을 받은 뒤 도망치는 행위로 일종의 선불사기다)를 막기 위해 올린 것이다.

    불황 장기화 극심한 영업난

    또 다른 업주들의 2차 피해를 막으려고 업주들 나름대로 ‘블랙리스트’를 구축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심지어 도망간 여성의 발목에 한자 문신이 새겨져 있다는 식의 세세한 정보까지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유흥업소 업주들이 온라인상에서 탕치기 여성들의 현상수배에 나선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4~5년 전 경기침체와 접대실명제 등으로 유흥업 전체가 극심한 영업난에 빠진 것이 계기다. 당시 유흥업소들이 불황에 허덕이자 여종업원들의 수입은 점차 줄었고, 이미 과도한 빚을 지고 있던 일부 여종업원들이 여러 업주에게서 받은 선불금을 떼먹고 잠적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그러자 2004년 초 H정보라는 업체가 인터넷 사이트와 카페를 개설하고 탕치기 ‘전과’ 여성들의 신상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홍보팀과 정보팀까지 조직해 가동시킨 이 업체는 개인정보와 전과는 물론, 위치 찾기에 기존 종사자의 탕치기 신용조회 서비스까지 제공해 업자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의뢰비는 건당 2만원, 신용조회 서비스는 1만원, 위치정보 제공은 50만원을 받았다. 이 업체는 탕치기 여성을 찾아 직접 업주에게 넘겨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이 경우 업체는 업주와 여성들 사이에서 계약된 선불금 차용증 액수의 20~30%를 수수료로 받았다.

    그러나 H업체 서비스에 대해 업주들 주변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서비스 사이트는 개설 1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수년간 탕치기 여성들에 대한 정보 공유는 온라인 대신 오프라인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 불황이 장기화되고 탕치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자 다시 온라인상의 현상수배가 활성화되고 있다. 유흥업소 취업을 알선하는 I, R 사이트는 아예 ‘탕치기 정보 공유’ 커뮤니티를 마련했고, 지난해 말부터 선불금을 받고 종적을 감춘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올리는 업자들의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탕치기의 변종 수법으로, 업주에게 대포전화를 통해 면접 보러 갈 테니 차비를 입금하라며 돈을 받는 속칭 ‘차비탕’ 사기가 증가하자 H사이트는 휴대전화 중간번호와 뒷번호 네 자리까지 공개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올라온 업주들의 피해 사례는 각양각색. A씨는 “J 아가씨가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 1100만원을 선불로 주고 일본으로 보냈더니 하루 만에 돌아와 잠적했다”며 구체적인 개인정보와 사진을 공개했다.

    업주들 선불금 불법 논란 계속

    ‘탕치기 VS 온라인 수배’… 유흥가가 뿔났다

    유흥업소 업주가 선불금을 받아 잠적한 위장취업 여성의 신원을 공개한 글. 업주는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현상금까지 건 업주도 있다. 새끼마담(유흥업소 중간관리자)인 B씨는 2~3명의 아가씨를 데려올 수 있다고 해 3000만원을 빌려줬다가 이 여성이 잠적해 사이트에 ‘긴급수배’라는 제목으로 신상정보를 올렸다. B씨는 여성의 부모가 연대 보증해 6000만원의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라며 소재지를 제보하는 사람에게 2500만원의 사례비를 내걸었다. 심지어 ‘탕치기’를 당했을 경우 형사소송이 가능하도록 여성 이름으로 약속어음을 발행하는 방법까지 소개했다.

    이처럼 종업원으로 일할 의사가 없으면서 유흥업소에 위장 취업해 선불금을 챙기는 사건이 늘어나면서 경찰도 이 흐름을 쫓고 있다. 7월 대전 둔산경찰서가 유흥업소에 위장 취업해 선불금을 가로챈 다방 종업원을 체포하는 등 단속에 나선 것. 소매치기로 훔친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선불금을 빼돌린 탕치기단도 얼마 전 검거됐다.

    그러나 업주들이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경찰 등에서는 선불금을 주고 여성들을 고용하는 업주들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7월17일 황운하 대전 중부경찰서장은 지역 성매매 근절 대책을 발표하는 기자 브리핑에서 “선불금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선불금을 쓴 여성들에 대해 100% 무혐의 원칙을 적용하고, ‘탕치기’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업주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온라인상의 정보 공개도 개인정보 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최근 업주들의 행태를 보면, 화약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위험이 있더라도 금전적인 피해가 생기는 한 온라인 추격전을 그만두지 않을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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