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2017.03.01

스포츠

역대 최약체 ‘푸른 도깨비’ 반전카드 있나

한국 WBC 대표팀 해외파 기용 실패, 선발 자원 부족으로 위기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입력2017-02-27 14: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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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역사는 2006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2006년 야구의 세계화를 외치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처음으로 개최했다. 월드컵처럼 각국 최고 선수들이 자국을 대표해 자웅을 겨루는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가 목표였다. 이전까지 야구는 진정한 세계 최강을 가리는 국제대회가 없었다. 농구의 경우 미국이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부터 대학대표팀이 아닌 미국프로농구(NBA) 리그 특급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해 A매치가 시작됐다.  

    반면 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 측이 올림픽 기간 중 시즌이 중단되는 것에 반대해 진정한 의미의 국가대항전이 없었다. 1938년부터 야구월드컵이 열리고는 있지만 아마추어가 중심인 대회다. 미국은 올림픽에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파견했고, 일본도 아시아경기대회에 사회인야구대표팀을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야구의 세계화라는 목표와 국가대항전이 갖는 흥행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6년 시작돼 4년 주기로 열리는 WBC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까지도 세계 최고 대회로 공식 인정했다. 2006년 제1회 WBC 당시 한국은 메이저리그 소속 선수를 모두 동원하고 현역 감독 4명이 코칭스태프로 참여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국가대표팀을 구성했다. 그 결과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미국을 7-3으로 꺾는 등 돌풍을 일으키며 4강 신화를 달성했다. 축구의 ‘붉은 악마’처럼 야구 대표팀은 ‘푸른 도깨비’라는 멋진 애칭도 얻었다.



    메이저리거는커녕 해외파도 드물어

    2006년 WBC의 성공은 KBO리그 중흥으로 연결됐다. 2006년 연 300만 명 남짓이던 프로야구 관중은 WBC를 치른 이듬해 400만 명을 넘어섰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제2회 WBC 준우승이 잇따르자 700만 명을 돌파했다. 관객의 증가는 제9구단 NC 다이노스, 제10구단 kt 위즈의 창단과 광주, 대구, 경남 창원의 야구장 신축 등으로 이어졌다.



    KBO의 중흥을 가져온 2006년 대표팀의 성공은 해외파와 국내 선수의 적절한 조화 덕분이었다. 당시 최종  엔트리 31명 가운데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서재응(LA 다저스), 최희섭(보스턴 레드삭스), 김병현과 김선우(이상 콜로라도 로키스) 등 5명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일본리그 지바롯데 마린스 소속이던 이승엽도 대표팀에 합류해 최고 전력을 꾸렸다. 준우승을 달성한 2009년 대회에서는 해외파가 크게 줄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선수가 대거 이탈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일본리그 야쿠르트 스왈로스 임창용이 주전 마무리로 활약했고,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추신수도 힘을 보탰다.

    하지만 2013년 WBC에서 한국 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참패하며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대표팀엔 메이저리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해외파는 일본리그 오릭스 버팔로스 소속이던 이대호뿐이었다. 2017년 WBC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라는 우려가 따르고 있다. 큰 힘을 보탰던 해외파는 우여곡절 끝에 합류한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 한 명뿐이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는 팀이 반대해 합류하지 못했고,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주전경쟁을 위해 대표팀 선발을 고사했다. 타자 중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활약을 펼친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대표팀의 주전 유격수이자 중심 타자 후보였지만 음주운전 사고로 제외됐다. ‘김인식호’는 과연 세계 야구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을 달성한 ‘국민감독’ 김인식 감독은 비관적인 우려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 2월 22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마무리한 김 감독은 “선수 선발부터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이제 훌훌 털고 훈련을 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WBC다. 네덜란드 팀은 메이저리그 선수가 대거 합류한다. 그래서 가장 경계하고 있다. 일단 첫 번째 목표는 2라운드 진출”이라고 말했다.



    선발 부족, 좌완과 불펜으로 극복

    현재 대표팀을 바라보는 가장 걱정스러운 시선은 선발투수 부족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대표팀 에이스 구실을 해온 류현진(LA 다저스), 김광현(SK 와이번스), 윤석민(KIA 타이거즈) 3명이 동시에 대표팀에서 빠진 건 처음이다. 모두 부상과 재활 등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양현종(KIA)과 장원준(두산 베어스) 등 좌완 투수 2명을 선발 주축으로 삼고 차우찬(LG 트윈스), 원종현(NC), 임창용(KIA), 장시환(kt) 등 불펜투수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준비하고 있다. 차우찬은 리그에서는 선발투수지만 WBC에서 경기 중반 실점을 막는 키 플레이어 구실을 맡을 전망이다. 특히 여론의 비난 속에서도 불법 해외원정 도박으로 벌금형을 받은 오승환을 선발해 마무리 임무를 맡겼다.

    특히 네덜란드와 중남미국가 타자들에게 생소한 스리쿼터 스타일(사이드암과 오버핸드의 중간 형태)의 원종현, 언더스로 임창용과 우규민(삼성 라이온즈), 사이드암 심창민(삼성) 등 잠수함 투수를 적극 활용하는 불펜 야구를 펼칠 계획이다. 투수 교체 타이밍에서 최고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선동열 투수코치의 임무가 중요한 이유다.

    WBC는 3월 6일 개막한다. 한국이 속한 A조는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1라운드를 치른다. A조에서 최강 팀으로 꼽히는 네덜란드는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와 유격수 실버슬러거상을 받은 산더르 보하르츠(보스턴), 안드렐톤 시몬스(LA 에인절스), 디디 흐레호리위스(뉴욕 양키스), 요나탄 스호프(볼티모어), 유릭손 프로파르(텍사스) 등 현역 메이저리그 스타가 대거 합류했다. 보하르츠와 스호프는 시즌 2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강타자다. 에이스 릭 밴덴헐크(릭 판 덴 휘르크)는 2013~2014시즌 삼성에서 우승을 이끌었고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약 중이다. 시속 150km 이상 빠른 공을 던지고 한국 타자들을 잘 안다는 강점이 있다.

    같은 A조에 속한 대만은 메이저리그 선수가 대거 불참한다. 그러나 천관위(지바롯데), 궈진린(세이부 라이온스) 등 일본리그에서 뛰고 있는 투수들을 경계해야 한다. A조 마지막 팀 이스라엘은 처음으로 본선 무대에 진출한 팀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브루클린에서 열린 예선 4조 경기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부분 전성기가 지났지만 메이저리그 출신 11명이 소속된 다크호스 팀이다. 김시진 WBC 대표팀 전력분석팀장은 “지난해 9월 전력분석팀이 브루클린에 파견돼 선수들을 관찰했지만 이후 빅리그 출신으로 선수가 대거 교체됐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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