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8

2008.08.12

논술의 필수조건 ‘견해와 논거’

  • 입력2008-08-04 16:4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용 과장이 내 몫까지 잘해줘.”

    용 과장은 어젯밤 자신을 불러내선 그저 이 말 한마디에 연신 담배만 피워대던 마 부장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오랜만에 되찾은 열정에 20대처럼 활기차던 그가 그땐 다시 중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머리가 굳어서 로스쿨 도전을 그만두겠다니? 마 부장님답지 않아.’

    의문은 커져갔지만 더 알 수 있는 바가 없었다. 용 과장이 할 수 있는 건 마 부장의 말대로 그의 몫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그는 강남 조 선생이 있는 H학원으로 향했다.

    “마 부장님께 전화를 받았네. 로스쿨 도전을 그만두신다고?”



    “네, 선생님. 저도 갑작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그래, 무슨 사정이 있겠지. 로스쿨 시험이 올해에만 있는 것도 아니니 앞으로 마 부장님께서 잘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해주게나. 이제 시험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구먼. 용 과장, 자네 그동안 열심히 했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네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게.”

    “네, 선생님.”

    2 논술의 시작 - 논거 마련

    “자네도 잘 알다시피 LEET에는 세 개의 영역이 있네. 지금까지 우리는 그중 추리논증과 언어이해 영역을 공부했지. 이제 마지막으로 논술 영역에 대해 공부하면 LEET의 모든 영역을 공부하게 되네. 그런데 자네는 논술시험을 본 경험이 있는가?”

    “아니요. 전 논술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세대예요.”

    “그렇군.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해왔던 글쓰기가 논술 답안을 작성하는 데도 도움을 줄 테니 말이야. 다만 논술문을 쓰는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꼭 숙지해둬야 하네.”

    “논술은 일반적인 글쓰기와 많이 다른가요?”

    “아니야, 기본은 똑같다고 할 수 있어. 단지 논술문에는 반드시 자신의 견해가 담겨야 하고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논술문이라고 할 수 없어.”

    “견해와 논거요? 그럼 논술문은 논증과 비슷한가요?”

    “오, 그래. 논술은 기본적으로 논증적인 글쓰기를 요하네. 논증적인 글쓰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내 친구 하 선생에게 부탁해둘 테니 잘 배우도록 하고, 우리는 일단 논거를 마련하는 연습부터 해보겠네. 그럼 자네, 퀴즈를 하나 풀어보겠나?”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게 퀴즈를 내주십시오!”

    강남 조 선생의 LEET 퀴즈

    자네, 시민의 재판 참여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다음 글은 시민의 재판 참여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진 않지만, 시민의 재판 참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지. 이 글을 읽고 시민의 재판 참여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의 논거를 찾아보게나.

    일상적 지식은 상식, 일상적 체험, 사려 깊은 숙고와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민간 지식도 일상적 지식의 한 범주다. 민간 지식이란 개념은 농민들의 토양에 관한 친숙성에서부터 아프리카 원주민의 사냥술, 토착민들의 식물에 관한 지식,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 농구의 규칙과 전략에 이르기까지 인간 활동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민간 지식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과학적·전문적·지적 엘리트를 규정하는 공식적인 또는 특화된 지식에 대비되는, 비공식적이고 대중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 지식은 텍스트 형태로 기록되기보다는 흔히 구술 형태로 전승돼 비공식 부문에 체계적으로 남아 있다. 반대로 공식적, 과학적 지식은 기록된 텍스트 형태로 조직되어 전달된다. 과학은 자신의 지식을 그것이 생산된 문화로부터 이론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반면, 민간 지식은 그것이 생산된 구체적 문화와 태생적으로 결합되고 그 문화의 내부에서 해석된다.

    현대사회가 과학과 기술의 경이로움에 빠져 있는 동안 민간 지식은 오랫동안 무시돼왔다. 공식적, 과학적 지식은 민간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고안된 우월한 지식 형태라고 정의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과학적 지식의 정통성은 공식적으로는, 보통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일상적 지식과의 인식론적 차별화에 의존한다. 그간 수많은 영역에서 민간 지식을 더 진보된 과학적, 기술적 지식들로 대체하는 것을 명시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것은, 근대과학과 기술의 많은 부분이 전통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 발전해왔다는 점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종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인간은 생존투쟁을 도와줄 좀더 효과적인 도구와 수단을 끊임없이 개발해왔다. 산업혁명에 앞서 등장했던 기술적 발명들의 주요 목록을 떠올려보자. 불, 바퀴, 역법, 직조 기술, 도자기, 농사, 산술, 기하학, 천문학, 항해술, 제련 기술, 화약, 고무, 톱니바퀴, 활자, 종이와 인쇄술 그리고 건축과 도시 계획 등은 근대문명의 발전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종교와 철학, 국가와 행정 체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사정은 예외가 아니었다.

    민간 지식은 고유한 인식론적 지위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경험적인 분석과 규범적인 분석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음, 시민의 재판 참여에 관한 논거라? 이 글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얘길 하고 있는데…. 그래도 다시 한 번 차분히 읽어보자. 일상적 지식, 민간 지식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이 글은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들도 알고 보면 전통적인 지식의 토대 위에서 발전해왔고, 그런 만큼 민간의 전통적인 지식도 중요한 쓰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시민의 재판 참여에 대한 찬성 논거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그래? 좀더 자세히 얘기해보겠나?”

    “네. 시민의 재판 참여는 이전까지 전문적으로 법을 공부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진행되던 재판에 비전문가인 시민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판에 참여한 시민들의 견해를 위 글에서 말한 민간 지식으로 본다면 찬성 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잘했군, 아주 훌륭하네.”

    “하지만 선생님, 저는 아직 시민의 재판 참여에 대해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걸요. 전 그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위 글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일 뿐이죠.”

    “그래, 자네의 말을 알겠네. 실제 시험에서는 이러한 경우 반드시 찬반양론에 대한 글이 모두 주어질 것이니 별문제는 없을 게야. 하지만 논술시험에서는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의 논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네. 그래야만 더욱 훌륭한 답안을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지. 이에 대한 얘기는 후에 다시 나올 테니 그때 얘기하도록 하세.”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자네, 내가 만든 진짜 문제를 한번 풀어보겠나?”

    (합격의 법학원 ‘논리와 비판연구소’ 제공, 다음 호에 계속)

    합격의 법학원 이재열 원장의 로스쿨 현장 르포

    ◎ 로스쿨 심층면접 논란


    로스쿨에 입학하려는 직장인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전형요소는 LEET(법학적성시험)와 심층면접이다. 모의시험까지 치른 LEET와 달리 심층면접은 그동안 형식과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수험생들의 궁금증을 높여왔다. 이런 가운데 6월19일과 20일 고려대가 처음으로 모의심층면접을 실시해 큰 관심을 모았다. 특히 심층면접을 준비해온 다른 로스쿨도 이번 면접을 ‘벤치마킹’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타 로스쿨 준비생까지 대거 참여하는 열기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모의면접은 10문제가 출제돼 문제별로 간단히 쓰는 서면질의와, 3개의 문제 중 하나를 선택해 2인 1조의 면접관에게 답하는 대면질의로 진행됐는데 질문 내용을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먼저 일부 내용부터 살펴보자.

    - 만일 불법체류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국내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 학교의 교사가 이러한 불법체류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교사는 이 사실을 경찰이나 검찰에 신고하는 것이 옳은가?

    - 아파트 건설업체에게 건축허가를 조건으로 우회도로를 건설해 기부하도록 한 해당 관청의 요구는 정당한가?(서면질의)

    - 지금의 글로벌 시대에는 전통적인 국가나 민족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 자신이 원할 경우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옳은가?(대면질의)

    이런 문제에 대해 대다수 수험생들은 법률지식을 묻는 시험이란 인상을 받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사법시험을 준비했거나 법학을 전공한 수험생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답변했지만 법학 비전공자들은 난감해했다는 게 중론이다. 논란이 되는 것은 이 대목이다.

    현행 로스쿨법은 입학 사정 때 법률지식을 묻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허용하면 법학 전공자들이 훨씬 유리해지고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선발한다는 로스쿨의 근본 취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려대도 이를 의식해 “사회적 현상과 관련된 문제를 출제하는 바람에 법적인 쟁점과 연결된 경우가 많았다. 채점 때는 법률지식이 아닌 논리적 사고와 판단의 적절성을 판단기준으로 삼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험생들의 반발이 워낙 거센 탓에 실제 면접에서는 법률적 색채가 덜 짙은 문제를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법학 비전공자들이 방심하기에는 이르다. 고려대 심층면접을 통해 로스쿨이 기본적인 법학지식을 갖춘 수험생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재 법학지식이 부족한 수험생들은 거의 모든 로스쿨이 법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비전공자가 3년의 수학만으로 전문 법률가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올 11월에 치러질 로스쿨 첫 면접시험의 내용은 법률지식 측정을 막으려는 교육당국의 으름장과 법 지식이 탄탄한 수험생을 뽑으려는 로스쿨들의 열망이 만나는 타협점에서 수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