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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느린 사람 위한 특급 도우미

느린 사람 위한 특급 도우미

느린 사람 위한 특급 도우미

LG전자가 개발한 시각장애인 전용 ‘책 읽어주는 휴대전화’. 이 휴대전화는 시각장애인이 도서 텍스트파일을 내려받으면 음성으로 변환해 읽어주는 기능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는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사람이 나온다. 그런데 그의 뇌에 전극 칩이 이식되고 그것이 컴퓨터와 연결돼 있어 생각만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인터넷 세계를 돌아다니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눈다.

이런 장치는 더 이상 공상과학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들의 복잡다기한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난관이지만, 인간의 망가진 뇌와 신체 기능을 대신하거나 보완해줄 기계는 앞으로 놀라운 속도로 발달해갈 듯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휴대전화는 어떨까. 그 기술의 발전은 장애인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휴대전화가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지면서 신체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소지하기 편리해졌다. 또한 핸즈프리처럼 누구나 이동 중에 통화할 수 있도록 개발된 보조기구가 결과적으로 손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안성맞춤이 된다. 반면 액정 글씨와 버튼이 너무 작아서 눈이 어둡거나 손이 둔한 이들은 미세 조작이 어렵다. 그리고 기능이 지나치게 많고 복잡해 기본적인 사용조차 불편할 때가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장애인 친화적인 휴대전화가 활발하게 연구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키패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책·영수증·메뉴 등을 사진으로 찍으면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장치다. 그리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통화 목록, 문자 및 음성 메시지, 부재중 전화, 날짜, 시간, 배터리 잔량 등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장치도 나온다고 한다.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골도(骨導) 전화기라는 것이 나왔다. 수화기를 귓바퀴 뒤쪽의 돌출한 뼈에 갖다 대면 그 진동으로 상대방 음성을 듣는 전화다. 물론 일반 유선전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들이 상대방의 음성을 듣는 것은 그렇다 치고 자기 의사는 어떻게 표시할 수 있을까. 역시 수화를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방면은 갈 길이 먼 듯하다. 손목에 차고 수화를 하면 그것을 인식하는 링이 한창 개발 중이고, 수화하는 모습 자체를 전송해주는 홀로그램폰이 예견되는 정도다.



장애 없는 사회 만들기 촉매작용 기대

한편 노인들의 안전사고에 대비해 허리띠에 착용하는 낙상 센서라는 것이 나왔다. 그래서 만일 넘어지면 그것을 감지한 센서가 휴대전화를 작동시켜 구급차를 부르게 된다. 또한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몸에 바이오센서와 심전도 모니터링 장치를 부착해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곧바로 휴대전화가 병원에 연결돼 조치를 받는다. 치매노인이나 장애인이 일정 구역을 벗어나면 보호자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U-수호천사’라는 장치도 지난해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제반 조치를 섬세하게 수립해가는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다. 일본의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석 근처에 휴대전화 전원을 꺼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돼 있다. 심장맥박 조정기(pacemaker)를 착용한 환자에게 전자파가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누군가가 길에서 갑자기 쓰러졌을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병원이나 구급대와 연결해 전문가의 지시를 받으며 즉석에서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을 할 수 있는 ‘원격작업 지시(remote instruction)’의 매뉴얼도 개발해가고 있다.

도구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발명됐다. 망치와 톱, 수저와 식기, 신발, 의자, 수건, 자동차, 우산, 안경…. 이 모든 물건이 없다면 우리의 생활은 엉망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장애를 가진 셈이다. 휴대전화는 현대인의 삶과 사회, 아니 신체 일부가 돼버렸다. 테크놀로지의 진화는 그렇게 인간의 존재 조건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육체의 자유로움을 증진시키는 도구의 발전은 장애인들의 생활을 크게 개선하고 있다. 그것은 핸즈프리처럼 부수적인 결과로 될 수도 있고, 골도전화기처럼 의도적으로 발명한 덕분일 수도 있다. 휴대전화는 전동휠체어 못지않게 장애인들의 물리적·사회적인 행동반경을 넓혀주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애인들이 여전히 그들끼리의 관계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덕분에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원활히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징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이버 공간에서도 장애인이 차별받는 경우가 있다. 익명의 누리꾼(네티즌) 여러 명이 채팅을 하는 대화방에서 그런 일이 가끔 벌어지는데, 뇌성마비 환자들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가 느려 반응이 느리고 글씨가 답답하게 올라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다른 대화자들이 눈치채고 하나 둘씩 빠져나간다. 결국 장애인 혼자 남게 되고, 그런 일을 몇 차례 겪으면 비장애인과의 대화 마당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속도가 중시되는 정보 환경에서 느림은 치명적인 장애인 것이다.

다행히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는 청각이나 언어장애를 가진 이들이 비장애인과 전화로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통신중계서비스(Telecommunication Relay Service)’를 제공하고 있다(www. relaycall.or.kr). 그러나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통합은 하드웨어나 시스템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일의 템포가 빨라지고 민첩함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속도가 느린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유비쿼터스 환경은 또 다른 장벽과 장애를 낳는다.

천천히 가는 존재를 기다려주고 그들의 기동성(mobility)을 높이기 위해 지혜와 자원을 모아야 한다. 소통도구로서 타인과의 접점을 넓혀주는 휴대전화, 그것이 장애인끼리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의 통합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면 보편적인 ‘모바일’ 시대로 그만큼 나아가게 되리라. 휴대전화는 그러한 장애 없는(barrier-free) 사회의 디자인에 촉매작용을 할 수 있다.



주간동아 2008.07.08 643호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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