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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22) 저우창(周强)

절차·민주 중시하는 6세대 선두주자

농사일 도우면서도 책 읽던 학구파 … 1985년 공직에 첫발 이후 승승장구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절차·민주 중시하는 6세대 선두주자

절차·민주 중시하는 6세대 선두주자

저우창(周强)

저우창(周强·48·사진) 후난(湖南)성 성장은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의 6세대 최고지도자 후보다. 그는 2006년 9월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최연소 성장으로 발탁됐다. 중국에서 1960년대 출생자 가운데 첫 성장이다.

현재 중앙의 부장 또는 지방의 성장급 가운데 40대 인사는 모두 5명이다. 지방 지도자로는 저우창 성장을 비롯해 4월에 임명된 후춘화(胡春華·45) 허베이(河北)성 대리성장과 지난해 12월 임명된 누얼 바이커리(努爾 白克力·47)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주석이 있다. 또 중앙 지도부엔 쑨정차이(孫政才·45) 농업부장과 5월4일 최연소로 부장급에 임명된 루하오(陸昊·41)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共靑團) 중앙서기처 제1서기가 있다. 이들은 2012년 등극할 5세대 지도부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수석 부총리에 이어 2022년 이후 중국을 책임질 6세대 지도자들이다.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수장으로 하는 공청단 출신 가운데서도 핵심이다. 공청단의 최고 수장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만 8년을 근무했다.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까지 포함하면 무려 11년에 이른다.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1년을 지낸 후 주석이나 5년을 지낸 리 부총리보다도 재임기간이 길다.

공청단 근무 시절의 업적도 탁월하다. 그가 제1서기로 재직하는 동안 공청단은 ‘당이 요구하면 공청단은 행동한다(黨有號召 團有行動)’는 구호 아래 여러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중국 정부가 1999년부터 대대적으로 전개한 서부 대개발을 지원하는 ‘대학생 서부자원 프로그램’부터 창장(長江), 황허(黃河) 등 오염이 심각한 중국의 주요 강들을 살리는 ‘모친하(母親河) 보호 액션’, 박사복무단, 청년문명호, 청년지원자 프로그램 등 국가를 위한 다양한 청년활동을 전개했다. 또 국제IT청년포럼, 중국타이다(泰達)생물포럼, 해외학술인 귀국창업주(週) 등 많은 국제협력사업도 새로 만들었다.



2006년 9월 최연소 성장 발탁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공청단 산하 중국청년여행사를 중국 최대 여행사로 키워낸 일이다. 2006년 현재 이 회사의 총자산은 33억3000만 위안(약 4926억원)으로 웬만한 재벌 회사와 맞먹는다. 2006년 상반기 영업수익도 11억3000만 위안(약 1672억원), 순수입만 3767만 위안에 이른다.

2006년 9월 그가 최연소 성장으로 발탁된 데는 후 주석의 핵심 인맥인 공청단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이런 탁월한 능력이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는 후난성 성장에 임명되자마자 후난성 내 55개 행정 및 법 집행기관의 권력 리스트를 일반에 공개했다. 또 각급 행정기관의 주요 사업과 정책을 일반에 공개해 조사, 연구, 전문가 포럼을 거치고 일반인의 참여 속에 정책을 결정하도록 지시했다.

이 같은 조치는 일반인들이 행정 책임자와 권한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행정권력을 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행정효율을 제고하고 관리들의 비리를 사전에 막으며 모든 행정을 법 절차에 맞게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권력의 양광(陽光) 운행’ 운동으로 불리는 이 조치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지난해 4월 후난성 행정절차 조례를 개정했다. 주민의 행정 감독과 참여를 법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절차·민주 중시하는 6세대 선두주자

중국 후난성 서북부의 ‘무릉원’.

수질 개선 위해 공장 폐수와의 전쟁 뚝심 발휘

이처럼 그가 투명하면서도 법에 따른 절차를 중시하는 것은 대학 전공이나 사법부 근무 경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1년간 고향에서 지식청년으로 농사를 짓다가 1978년 충칭(重慶)에 있는 시난(西南)정법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까지 7년간 공부한 그는 85년 사법부에 배치돼 판공청 부주임, 법제사(法制司) 사장 등 10년 남짓 사법부에서 근무했다.

학창시절 그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그의 고교 시절 스승인 저우셩(周勝) 씨는 “저우창은 나이는 어렸지만 학업성적이 매우 뛰어났다”면서 “특히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 어문 실력이 출중했다”고 회고했다.

저우창 성장의 어머니는 “명절이나 휴일에도 창은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지 않고 책을 읽었다”며 “고향에서 지식청년으로 농사일을 할 때도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고 읽곤 했다”고 전했다.

그의 공부 욕심은 남다르다. 저우창 성장의 대학 동료인 중국검찰출판사 위안치궈(袁其國) 사장은 “저우창은 취침을 위해 기숙사 불을 끈 뒤에도 혼자 회중전등을 켜고 공부했다”며 “그래서 친구들이 이를 빗대 ‘낭잉잉쉐[囊螢映雪·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뜻]’라고 많이 얘기했다”고 말했다.

고교를 마치고 농촌에서 일하던 중 대입시험을 보고 바로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습관 덕분이다. 당시 시난정법대 법학과는 300여 명의 입학생을 뽑았는데, 저우창은 당시 17세로 어린 축에 속했다. 문화대혁명 기간(1966~76) 대학에 가지 못했던 청년들이 동시에 몰리면서 만 15, 16세부터 33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합격했던 것이다.

“격정과 이상이 충만한 시대였어요. 모든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었고 사회에 대한 강렬한 책임감도 느꼈죠. 모두 사회 밑바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절대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저우창 성장은 지난해 3월 중국의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석사과정을 마칠 때 지도를 맡았던 진핑(金平) 교수는 그에게 기대를 표시하며 “중국은 대국으로 많은 정치가가 필요하지만 절대로 정객이 돼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저우창 성장은 성장급 가운데 최연소 나이로 인구 6700만명의 후난성 행정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으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걸까. 후난성에 가자마자 그는 1년 만에 물고기가 살 수 없는 5급수의 둥팅(洞庭)호를 3급수로 크게 개선했다. 후난성 경제가 파탄난다는 우려에도 폐수를 흘려보내는 236개의 제지공장 문을 닫고 234개 공장의 조업을 중단시킨 결과였다.

1995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로 발탁된 뒤 이러한 정치적 업적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해온 그가 최고 권좌에까지 오를 수 있을지 세인의 눈이 그에게 쏠리고 있다.

저우창 프로필

·한족(漢族)

·1960년 4월생

·후베이(湖北)성 황메이(黃梅)현 출생

1976. 8 고향에서 지식청년 근무

1982. 9 시난(西南)정법대학 졸업

1985. 9 시난정법대학 석사연구생 졸업

1985. 9 사법부 근무 시작

  사법부 판공청 부주임,

  법제사(法制司) 사장

1995. 11 중국공산주의청년단

  (공청당·共靑團)

  중앙서기처 서기

1998. 6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2003. 7 공청단 중앙서기서 제1서기 연임

2006. 9 후난(湖南)성 당위원회 상무위원,

  부서기, 대리성장

  2006. 11 후난성 부서기

2007. 2~현재 후난성 성장

제16, 17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주간동아 2008.05.20 636호 (p54~56)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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