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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원과 동아시아의 미래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

일본의 기원과 동아시아의 미래

일본의 기원과 동아시아의 미래

일본 시라오이 아이누 부락에서 전통춤을 추는 아이누족 노인들.

근대국가 중에서 일본만큼 전통적인 특색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열도로 도래했지만, 그것은 ‘외세에 의한 군사적 정복과 강압적 통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일본 문명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섬나라’라고 하는 지정학적 고립이 절대적 이유일까. 물론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일본인과 일본어, 일본 정신문화의 기원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관심거리다.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학설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원전 2만 년 전, 빙하기에 일본으로 흘러들어온 이들이 열도의 선주민인 조몬(繩文)인이 되고 그들이 점점 진화했다는 학설이다. 이 학설대로라면 일본인은 1만2000년간 독자적 유전자를 유지한 단일민족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걸 믿는다.

두 번째 학설은 추운 기후에 견디는 벼 품종, 관개수로를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적 벼농사 기술, 삽과 괭이 등을 만드는 철기문화 등을 지닌 고대 한국인이 대규모로 이동해 야요이(彌生, 기원전 4세기~기원후 3세기) 문명을 세웠고 현대 일본인은 바로 그들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설은 고대 한반도로부터 도래인들이 이주해 왔지만 규모는 작았다. 대신 생산성 높은 벼농사를 짓는 도래인들의 인구가 수렵채집민인 조몬인보다 훨씬 빠르게 불어났을 것이라는 절충적 주장이다. 또한 중앙아시아 유목·기마 민족이 기원후 4세기경 한반도를 거쳐 일본을 정복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서구의 학자들은 두 번째 설을 많이 믿는다. 예컨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총, 균, 쇠’(문학사상사)에서 유골 DNA 분석을 토대로 기원후 400년을 전후한 고대 한국인의 이주가 현대 일본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먼저 조몬인은 다리가 짧아 키가 작고, 상대적으로 아래팔이 길다. 또 둥글넓적한 얼굴은 눈 사이가 멀고 눈두덩이 두드러지게 솟아오른 데다, 코와 콧마루가 뚜렷하다. 반면 야요이인은 조몬인보다 평균 3~5cm 더 크고, 얼굴은 길며 좁고, 눈두덩과 코는 평평하다.



결국 조몬인의 두개골은 현대 일본인보다는 일본의 소수민족인 아이누인과 유사하다. 반면 야요이인의 두개골은 현대 일본인과 가장 닮았다. 한국인과 야요이인의 혼혈비율이 조몬인과 아이누인의 유전자 구성보다 우세하기 때문에 고대 한국의 도래인들이 현대 일본인의 기원에 영향을 미쳤다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인과 일본어, 일본 정신문화 뜨거운 관심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와 함께 언어를 유력한 증거로 보았다. 사실 일본어와 한국어는 같은 우랄알타이 어족이지만 차이를 보인다. 때문에 이는 한국인 기원설을 반박하는 증거로 많이 쓰였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교수는 현대 한국어는 신라어에서 비롯됐고, 일부 전해지는 고구려 단어는 한국어보다 오히려 일본어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본의 고대 조각상은 수염이 텁수룩한 아이누족이 아니라 고대 한국인들을 묘사한 모습이다. 이것도 유력한 증거다. 1869년 일본이 홋카이도를 병합하기 전까지 주로 그곳에 거주하던 아이누족의 남자들은 텁수룩한 턱수염에다 온몸에 털이 많고 지문이나 귓불도 특이하다.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홋카이도에 정착한 백인 카프카스 인종에 속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인연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대몽골제국의 쿠빌라이가 일본에 신하의 예를 갖추라고 하자, 일본은 침묵으로 묵살해버렸다. 쿠빌라이는 1274년에 이어 1281년 몽골 함대와 고려 군사들을 두 패로 갈라 규슈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른바 가미카제(神風)로 불리는 태풍으로 15만명의 병력 대부분이 익사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몽골이 일본 정벌을 단념한 이유는 일본인들의 주장대로 단지 가미카제가 불었기 때문일까.

컬럼비아대학의 가라타니 고진(柄谷善男) 교수는 ‘일본 정신의 기원’(이매진)에서 몽골이 조선의 30년 저항에 힘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일본 정벌을 포기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 중국 몽골 러시아 사이에 한반도가 있어 일본은 단 한 번의 군사적 정복도 당하지 않았다. 천황제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뿌리 깊은 ‘(일본의) 신화적인 힘-가미카제’가 실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 덕에 일본은 한 번도 이민족에 직접 지배당하지 않았고, 그것이 바로 천황제를 오랫동안 유지시킨 이유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맥아더의 대일본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맥아더는 대소련 전략에 천황을 이용하기 위해 전쟁의 최고책임자인 천황의 책임을 면죄해주었다. 그 결과 일본은 (상징적) 천황제를 유지하면서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에만 몰입(요시다 노선)’함으로써 오늘날의 강대국으로 부활했다. 고진 교수는 그래서 “만약 한국이 소련이나 중국 세력이 남하하는 데 방파제 구실을 하지 않았다면 전후 일본의 정치체제가 존속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문자도 마찬가지다. 7세기 무렵의 만요가나(萬葉假名)는 원래 고대 한국에서 사용된 것이었을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 귀화한 사람들에 의해 고안됐다. 이 문자는 나중에 한국에서는 사라졌다. 반면 현대 일본어의 히라가나(平假名)와 가타카나(片假名)는 9세기경 관습적으로 사용되던 ‘한자의 표음적 사용(만요가나)’을 간략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고진 교수는 일본어의 기원을 일본인의 ‘독자적인’ 지혜라고 설명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라면서 나라 시대 야마토 조정의 율령제 채택이나 불교 수용, 헤이안 시대에 한자와 만요가나를 기반으로 만든 현대 일본어(가나 문자)의 탄생 등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섬나라’였기 때문이지, 결코 ‘일방적으로 고립된 섬나라’로서 뭔가 내재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바깥에서 도래한 것 파괴 않고 ‘변조’

또한 도쿠가와 막부의 관학도 조선의 주자학이었다. 1719년(숙종 45년) 신유한이 통신사 일행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쓴 ‘해유록’(보리)은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나가사키와 오사카에서 유학자 등 일본 지식인들이 줄지어 통신사들을 구경했고, 당시 일본 사무라이 지식인들은 조선통신사와 시를 겨뤄 명성을 드높였다는 걸 알게 해준다. 더 먼 과거를 되짚어보면 채색, 종이, 먹 등을 전한 고구려의 담징,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백제의 왕인, 쇼토쿠 태자의 스승인 혜자도 일본의 기원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소설 ‘신들의 미소’(1921)에서 주인공인 예수회 선교사 오르간티노는 자주 환각에 사로잡히는데, 그럴 때마다 혼령인 노인이 나타나 일본에서는 바깥에서 들어온 어떤 사상도, 가령 유교나 불교도 ‘변조’된다며 “우리의 힘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변조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아쿠타가와는 크리스트교 등 ‘바깥에서 도래한 것’은 파괴되지 않고 ‘변조’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도 일본에는 그 어떤 외래의 것도 수용되지만 그저 ‘잡거(雜居)’하고 있을 뿐, 내적 핵심에 이르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일본문명은 ‘순수 100%’인가, 잡거인가. 다이아몬드 교수와 고진 교수는 모두 한일교섭사에서 “한반도는 일본의 정치적·문화적 형태를 규정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도래한 것도 잡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우월감에 빠지라는 메시지는 아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역사적 반목 때문에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한국과 일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이므로 동아시아의 미래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문명이란 바람처럼 떠도는 문화를 그물로 낚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은 것을 일방적으로 부정하지 말자는 것, 그런 열린 자세를 요구하는 말이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8.04.22 632호 (p88~89)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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