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2

2008.04.22

인간 군상의 평범한 일상 극사실주의風으로 채색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입력2008-04-14 1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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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군상의 평범한 일상 극사실주의風으로 채색

    히라타 오리자의 ‘도쿄노트’를 각색한 ‘서울노트’는 베르메르의 극사실주의 그림처럼 일상의 모습을 세심하게 묘사한 독특한 연극이다.

    제3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미래(2014년)의 어느 날, 격전지인 유럽에서 서울로 피난 온 베르메르의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는 미술관 로비. 연극 ‘서울노트’(박광정 각색, 연출)는 이처럼 비현실적이고 드라마틱한 설정과는 반대로 차근차근 전개되는 일상들로 2시간가량의 전환 없는 무대를 채운다. 베를린의 전선에서 휴가 나온 군인과 그의 여자친구, 오랜만에 모인 형제자매, 남자친구와 변호사를 데리고 아버지의 유산인 그림을 기증하러 온 여인, 첫 데이트를 나온 남녀, 베스트 프렌드로 보이는 20대 여자 둘, 큐레이터 둘이 등퇴장을 반복한다. 이들의 이름은 거의 불리지 않는다. 마치 남자1, 여자1과 같은 평범한 인물들의 느낌을 준다.

    이 연극에서는 어떤 드라마틱한 갈등도 일어나지 않으나, 대화의 과정을 통해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상처들이 표면으로 드러난다. 군인의 여자친구는 남자친구를 전선으로 돌려보낼 준비를 하고, 형제자매의 막내 내외는 이혼 소식을 발표한다. 아버지 없는 유년시절을 보낸 젊은 여자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바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그림들을 떠안는다. 선을 본 남자는 그림을 감상하고 오겠다는 여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과거에 가르쳤던 학생과 마주친다. 한때 깊은 관계였던 두 사람은 다소 어색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도 큰 소리를 내거나 울지 않는다. 게다가 연극 전체에 비극적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도 마치 물속에서 물 밖 상황을 추측하듯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전쟁을 환기시키는 것은 군복 입은 남자이며, 유럽의 난민과 피난 온 그림들에 대한 덤덤한 대화다.

    ‘극사실주의 연극’이라 불리는 ‘서울노트’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박진감 있게 달리는 여타 연극과는 사뭇 다르다. 느슨한 인과관계를 지닌 일상들이 한 장소에서 차분하게 전개된다. ‘조용한 연극’이라고도 불리는 ‘극사실주의 연극’은 17세기 네덜란드의 그림들로 소급된다. 당시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것은 종교화와 역사화였다. 그러나 인본주의가 대두되던 17세기에 네덜란드 화가들은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인물·정물 등 한 종류의 대상을 줄기차게 그리는 유례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림들을 ‘장르화’라고 부른다. 이들은 상이 맺히도록 구멍을 뚫어놓은, 카메라의 전신인 ‘카메라 옵스큐라’를 활용해 사물을 치밀하게 계산된 구도와 색감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17세기의 네덜란드 화풍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성을 표현한 화가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베르메르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듯, ‘서울노트’는 베르메르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나아가 아예 큐레이터의 입을 통해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아카데믹한 해설을 들려준다. 이때 큐레이터 말에 처음으로 로비의 인물들이 모두 집중하는 모습은 그의 말이 그만큼 중요한 내용임을 느끼게 한다.



    이 연극은 단지 일상을 일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옵스큐라에 맺힌 상을 정밀하게 보여주는 그림처럼 일상의 단면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사진을 가감 없이 모사한 1960년대의 극사실주의 화법에서처럼 어색한 침묵의 순간, 의사소통이 단절된 상태, 관객에게 엉덩이를 보이는 모습 등을 그대로 살려놓는다. 또한 인물들은 동시에 무대에 올라 중구난방 떠들고, 잔가지와 같은 주제들을 툭툭 던진다.

    인물 간 치열한 갈등구조보다 작가의 존재감 더 부각

    주관을 배제한 어조로 극이 전개되지만, 역설적으로 이 작품은 인물 간의 갈등이 치열한 여타 연극들에 비해 오히려 작가의 존재감을 더 강하게 느끼도록 한다. 극중 인물이 “그림을 보고 있는 건지, 그림을 그린 작가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작가의 세계를 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 것처럼 ‘서울노트’를 통해 관객들은 일상을 보는 듯하면서도 작가의 존재를 느끼고 그 작가의 생각을 읽게 된다.

    ‘서울노트’는 일본의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의 ‘도쿄노트’를 각색한 작품이다. 1962년생인 히라타 오리자는 전쟁 2세대로서 직접적으로 폭격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패전국인 일본이 지닌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간접화법을 통해 드러낸다. 한 예로 휴가 나온 군인은 마치 남의 말을 하듯 이야기한다. “공습이라는 것 아주 무섭다더라. 당하는 쪽은.” 작품 속에서 직접 묘사되지는 않지만, 전쟁은 모든 상처의 근원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연극’이 ‘밋밋한 연극’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극중 연거푸 언급되는, 일상을 묘사한 17세기 화가들은 빛의 사용에 민감했다. 또한 그림을 그릴 때는 구도에 대해 치밀한 계산이 선행됐다. 장소의 전환이 없고 갈등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장면이 부재하더라도 연출의 묘미를 살려 조용한 가운데 좀더 ‘섬세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배우들의 딕션은 훌륭했으나, 대사나 제스처를 통한 강조나 ‘포즈’의 사용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5월12일, 대학로 정보소극장, 문의 02-743-7710)

    ‘서울노트’ 속 강박증상

    모서리공포증, 의외로 많다


    인간 군상의 평범한 일상 극사실주의風으로 채색
    ‘서울노트’의 등장인물 중 막내동생은 모서리라면 무엇이든 무서워한다. 각 진 것이 싫어서 바둑을 못 둘 정도다. ‘닥터 이라부’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공중그네’에도 뾰족한 것에 대한 공포증을 지닌 조직폭력배가 등장해 웃음을 준다. 칼은 말도 못 꺼내고 안경을 쓰기가 힘들 지경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최강 로맨스’의 형사 강재혁도 뾰족한 물체만 보면 정신을 잃는 캐릭터.

    연극이나 영화에서 이처럼 희화화되곤 하는 이 증상은 ‘모서리공포증’ ‘선단공포증’ ‘꼭짓점공포증’ 등으로 불리는 일종의 강박증상이다. 모서리공포증을 지닌 사람들은 눈앞에 칼이나 샤프 끝, 젓가락, 빨대 등 뾰족한 물건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못 견딜 뿐 아니라 심하면 공책이나 책상 등의 모서리를 바라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다며 불쾌함을 호소한다.

    모서리공포증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은 몇 년 전 god 출신의 윤계상과 트로트 가수 장윤정이 모서리공포증을 지녔다고 밝히면서부터다. 특히 장윤정이 모서리공포증 때문에 성형수술을 못한다는 기사는 세간의 화제가 됐는데, 기사를 본 사람들이 그제야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경우도 적잖게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증상으로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서리공포증은 어릴 때 뾰족한 물건과 관련된 좋지 않은 경험을 했거나,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상상을 통해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냈을 때 생긴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로 특정 모양의 사물을 공포 대상으로 변이시키는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보이기도 한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단계별로 모서리와 접촉하는 등 실제로 경험해서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생각을 바꾸는 행동요법이다. 현대인들은 모서리공포증 외에도 고소공포증, 밀폐공포증,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대인공포증), 무대공포증 등 셀수없이 많은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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