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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햄릿’ 시즌2

록 옷 입고 찾아온 질풍노도 햄릿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록 옷 입고 찾아온 질풍노도 햄릿

록 옷 입고 찾아온 질풍노도 햄릿

오필리어(정명은·오른쪽)와 그녀의 친구 헬레나(선영)의 이중창.

‘사느냐 죽느냐’라는 독백을 내뱉는, 문학사에서 가장 우유부단하고 정적인 주인공 햄릿. 그런 그가 덴마크의 왕자 복장 대신 몸에 달라붙는 가죽바지를 입고 칼을 휘두르며 록음악 선율에 취한 뮤지컬 주인공으로 환생했다.

1990년대 후반, 체코의 뮤지션 마틴 쿰작은 그의 친구이자 체코의 유명 팝가수인 야넥 레데츠키에게 셰익스피어가 남긴 위대한 비극 ‘햄릿’을 록 뮤지컬로 각색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흔쾌히 수락한 야넥은 대본과 작곡을, 마틴은 편곡을 맡기로 했다. 이 작품은 프라하에서만 3년간 롱런했고 이어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의 공연도 3년 동안 계속됐다.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에 고무된 두 사람은 2000년 뮤지컬의 본고장 미국 시장을 두드렸다. 2년 후 번역과 각색 과정을 통해 탄생한 첫 영어 공연은 뉴욕 근교에 자리한 뉴저지 레오니아의 한 극장에서 콘서트 버전으로 초연됐고, 연출가가 합류한 본격적인 무대 공연은 2003년 맨해튼에 있는 램스 시어터에서, 그리고 2004년 에이빙돈 시어터에서 각각 리딩 공연(Reading·배우가 무대장치 없이 대본과 음악을 위주로 연기하는 워크숍 공연)이 열렸다. 2005년 8월에는 프라하에서 미국 배우들을 고용해 가진 첫 영어 버전 공연이 열려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라이선스 초연을 가졌고, 현재는 극장 ‘용’에서 새롭게 탈바꿈한 시즌2 공연이 열리고 있다.

뮤지컬 ‘햄릿’의 특징은 대사를 최소화하고 20여 곡의 노래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나 ‘토미’ 같은 록 오페라의 형식을 띠고 있다. 뮤지컬의 복잡한 드라마와 캐릭터들의 심리구조를 반영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록음악 비트가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록음악은 강렬한 사운드를 통해 효과적으로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이 뮤지컬에서 청각적인 요소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핵심 콘셉트로 기능한다. 체코의 창작진이 원작 ‘햄릿’의 시대 배경에 맞는 덴마크 민요나 유럽의 클래식 음악을 외피로 두르는 대신 격렬한 록음악을 택한 이유는 그의 젊고 불완전한 자아와 주변을 둘러싼 혼돈을 표현하기에 록음악이 적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록음악을 부르는 햄릿’이라는 설정은 작품 전반에 걸쳐 새로운 해석의 문을 열어준다. 예컨대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인 선왕이 삼촌 클라우디우스에게 독살된 내막을 선왕의 환영(幻影)으로부터 직접 듣고 나서 하드록의 샤우트(shout) 창법으로 짐승처럼 포효하기 시작한다. 원작의 햄릿이 정적이며 고뇌에 찬 캐릭터인 것과 달리, 뮤지컬 속의 햄릿은 질풍노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서사적 음악과 결합 색다른 해석 … 더블캐스팅 선의의 경쟁

형식 면에서도 뮤지컬 ‘햄릿’은 앙상블의 춤과 해피엔딩이 극의 중심에 자리하는 미국식 뮤지컬과는 다른, 유럽의 전통적인 서사적 음악극에 록음악을 결합한 퓨전 뮤지컬로 볼 수 있다. 익숙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원작의 플롯을 뮤지컬 ‘햄릿’은 충실히 따라간다. 또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록의 자유로운 정신을 활용해 장면과 캐릭터에 맞게 새로운 음악적인 해석을 가미한다. 이를 통해 ‘햄릿’은 정극이 아닌 뮤지컬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오필리어와 레어티즈가 부르는 이중창 ‘시스터’는 전형적인 록 발라드이며, 2막에서 오필리어가 죽고 난 뒤 긴장된 분위기를 완화해주는 무덤지기의 재지(Jazzy)한 음색은 청량음료와 같다.

김광보 연출이 투입된 시즌2에서도 ‘햄릿’의 등장인물들은 한층 새로워 보인다. 초연에 비해 플롯은 더욱 진지하며, 캐릭터는 섹시해졌고, 음악과 춤이 부각되던 세밀한 장면들은 투박해졌다. 캐릭터들은 저마다 은밀한 성적 판타지를 안고 있는 듯이 보인다.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는 비단옷에 감춰진 요부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의 몸짓과 헤어스타일은 게이의 느낌을 주고, 레어티즈와 여동생 오필리어의 스킨십은 근친상간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는 매우 흥미롭게 극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반면 배우들의 역량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특히 햄릿을 맡은 김수용과 오필리어의 신주연 외에는 객석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할 만큼의 가창력을 보이는 배우가 눈에 띄지 않았다. 김수용은 뮤지컬 배우로는 드물게 안정된 로커로서의 음색을 활용해 파멸에 이르는 주인공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으며, 동시에 작은 체구와 여린 이미지로 인해 모성애를 자극하는 불완전한 존재로도 보인다.

무대장치는 초연에 이어 시즌2에서도 같은 회전무대를 활용해 실내와 실외로 구분되는 중앙의 메인 세트를 부각했다. 이러한 선택은 제작진으로 하여금 큰 무대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덜었을지 몰라도 공연 전반에 걸쳐 10여 차례의 잦은 회전으로 인해 공간감이 둔해지고 식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결투 장면, 오필리어의 자살 장면 같은 움직임이 큰 동작에서 회전무대가 주는 역동성은 작품의 콘셉트와 유기적으로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밖에도 햄릿과 오필리어가 사랑을 나누는 침대 장면, 거트루드의 거울 장면, 리프트를 활용한 장례식 장면은 평면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주요 배역들은 더블캐스팅으로 저마다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초연에 이어 시즌2에서도 주인공을 맡은 김수용과 함께 ‘벽을 뚫는 남자’의 고영빈이 햄릿으로 캐스팅됐다. 오필리어 역은 초연 때 호소력 있는 음색과 외모로 주목받았던 신주연과 새로 가세한 ‘벽을 뚫는 남자’의 정명은이 맡고 있다. 거트루드 왕비는 강효성과 김영주가 번갈아 맡는다. 공연은 4월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계속된다. 문의 1588-7890



주간동아 2008.03.18 627호 (p78~79)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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