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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비서관 박영준, 크거나 다치거나

李 정책 발제·보조·정리까지 막강 권한 … 함량미달 ‘인사 파문’으로 첫 시련과 입방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王비서관 박영준, 크거나 다치거나

박영준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은 선이 굵다. 보스 기질이 있다.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입이 무겁다. 중뿔나게 나서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아랫사람에겐 ‘큰형님’ 같은 존재고 윗사람에겐 ‘참모 중 참모’다. 그런 그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2월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첫 수석비서관 회의. 박 비서관은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수석’ 회의에 참석한 ‘비서관’은 딱 두 명. ‘수석급 비서관’으로 불리는 박 비서관과 김백준 총무비서관이다.

박 비서관의 권한은 ‘수석’보다 더 크다. 그래서 ‘왕(王)비서관’으로도 일컬어진다.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의 권한은 더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 노무현 정부 때 굵직한 이슈를 오로지한 ‘대통령국정상황실장’보다도 막강하다.

박 비서관은 청와대 직원들에 대한 복무 감사 권한을 갖고 있다. 청와대 각 조직이 그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 또한 청와대 주요 회의는 모조리 그의 손을 거치게끔 돼 있다. 수석비서관회의, 확대비서관회의의 ‘발제’격인 상황보고가 그의 몫이다.

청와대 조직 평가자 … 고대 출신 S라인



수석비서관회의, 확대비서관회의의 결과 및 사후조처도 박 비서관이 취합해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그가 각종 정책의 시종(始終)을 책임지는 셈이다. 박 비서관의 역할은 노무현 정부 때 이호철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상자기사 참조).

친이(親李·친이명박) 진영은 크게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국회 부의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대표되는 ‘원로그룹’, 정두언 박형준 의원으로 상징되는 ‘소장그룹’, 그리고 ‘이재오 그룹’으로 나뉜다. 이들 세 그룹은 ‘권력 함수’에 따라 앞으로 ‘연대’와 ‘대립’의 줄타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조각(組閣)과 청와대 인선은 원로그룹이 장악했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의 부자)라는 조어(造語)를 낳은 인선 검증의 실무, 지휘를 박 비서관이 맡았다. 반면 소장그룹이 추천한 인사들은 낙마하거나 한직으로 밀린 예가 많다고 한다.

권부에서 ‘힘’이 한곳으로 쏠리면 견제를 받게 마련이다. ‘소장그룹’과 ‘이재오 그룹’은 여론을 들끓게 한 인선 검증과 관련해 박 비서관에게 화살을 겨눴다. 박 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참모이면서 이 부의장의 사람이다. 11년 동안 국회에서 이 부의장을 보좌하며 정치를 배웠다.

박 비서관은 이른바 ‘S라인’(서울시청 출신)이다. 2005년 이 부의장의 ‘지시’로 서울시로 자리를 옮겨 이 대통령을 보좌했다. 국장급 정무담당 보좌역으로 재직하면서 ‘시청과 여의도’의 눈높이를 조율하고 채널을 맞추는 구실을 했다.

그는 고려대 출신이다. 이 대통령처럼 모교 후배를 ‘챙기고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대 출신 의원 보좌관 모임의 회장도 역임했는데, 고려대 출신 한나라당 보좌관들은 ‘사람 좋고 실력 뛰어난’ 그를 ‘큰형님’처럼 여긴다. 지난 대선 때 ‘물밑에서’ 이 대통령을 지원한 고대교우회(高大校友會) 조직을 관리한 것도 박 비서관이다.

4·9총선 출마 이 대통령이 붙잡아 무산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선의 ‘일등공신’이다. 이 대통령의 외곽 캠프인 안국포럼을 꾸렸고, 이후 전국을 돌며 지역 명망가를 중심으로 지역조직을 만들어 그들의 연대(連帶)를 이끌었다. 지난해 12월13일 경기 평택시 ‘이명박 후보’ 지지유세 때 1500명가량의 지지자가 모였는데, 그중 800여 명이 박 비서관이 외곽세력으로 조직한 선진국민연대 소속이었다. 고대교우회 조직들도 대거 참여한 이 단체의 회원은 1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박 비서관은 게다가 영남(경북 칠곡군) 출신이다. ‘고소영·S라인’이라는 우스갯소리로 상징되는 ‘성골 중 성골’인 셈이다.

1960년생인 그가 또래의 권부 인사들보다 부족한 점은 ‘의원 배지’를 달지 못했다는 것. 박 비서관은 소장그룹 의원들을 상대하면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청와대 입성’보다 ‘총선 출마’를 원했다. 그는 이번 4·9 총선에서 곽성문 의원(자유선진당)의 한나라당 탈당으로 ‘무주공산’이 된 대구 중·남구 출마를 기정사실화했으나 이 대통령이 잡는 바람에 청와대로 유턴했다. 이 대통령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자리(국회의원)보다 이 자리(대통령비서관)가 할 일이 훨씬 많다. 그리고 네 역할을 메울 사람이 없다.”

박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정보·수사 기관의 정보가 모이는 길목에 서 있다. 그는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일 때부터 최신 북한 정보를 취합해 이 대통령에게 전해왔다. 평양발(發) 메시지도 그의 손을 거쳐 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한다.

역대 정권에서 정보를 쥔 이들은 하나같이 ‘권력의 핵’으로 떠올랐지만, 박 비서관은 인선 업무를 총괄하면서 상처를 입었다. 그가 사람을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함량미달’ ‘문제투성이’ 인사가 대거 발탁됐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대선 때 박 비서관이 ‘이명박 캠프’로 끌어왔다고 한다.

선이 굵으면서도 겸손한, 이 대통령의 ‘가게무샤’(‘그림자 무사’라는 뜻의 일본말)가 현 정권의 임기가 종료(2013년 2월)된 뒤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권력의 주변’에서 ‘권부의 핵심’으로 널뛰기한 이들이 허망하게 스러진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 비서관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롱런’을 점치고 있다.

盧정부 이호철과 안희정은

청와대 안과 밖에서 막강 정보력 과시


王비서관 박영준, 크거나 다치거나

이호철 전 대통령 국정상황실장(왼쪽),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 포럼 집행위원장.

이호철 전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야운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된 부림사건의 주인공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를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묘사한다.

이 전 실장은 노무현 정부 때 정보·수사 기관은 물론, 정부 각 부처의 정보가 모이는 길목에 서 있었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은 ‘노무현의 사람’이기에 앞서 ‘이호철의 사람’이었다. 외부로는 그의 업무 범위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거꾸로’ 노 전 대통령을 ‘휘두를’ 만큼의 정보를 갖고 있었다.

청와대 안에 그가 있었다면 청와대 밖엔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이 있었다. 안 전 위원장은 2006년 가을 ‘비선(秘線)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는데, 북측 인사를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을 설명한 말은 노무현 정부 당시 그의 위상을 말해준다. “제가 대통령께서 어린 동업자라고 부른 사람입니다. 수시로 뵙니다. 사실 거의 매일 뵙습니다. 그 뜻을 전하려고 온 겁니다.”

안 전 위원장은 사석에서 이런 말도 했다.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보면 장관들이 말을 잘 못해요. 대통령이 막 묻고 그러면 쩔쩔맨다 이 말이죠. 그리고 대통령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내가 장관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씩 해석해주는 겁니다. 이 뜻이, 이렇게 해야 하고…, 안 그러면 장관들이 헤매고 있어요.”




주간동아 2008.03.18 627호 (p22~2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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