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7

2008.03.18

통일부, 살아남은 자의 비애?

남북문제 주도권 외교부에 넘겨주고 사무실도 별관으로 옮겨 뒷방살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3-10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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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11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하중(사진) 당시 주중대사가 주최한 만찬 자리. 나흘간의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해찬 전 총리는 달떠 있었다. 이 전 총리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는 등 평양에서 나름 의미 있는 일정을 소화했다. 이 전 총리와 김 대사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그들만의 파티를 즐겼다.

    중국 외교가에선 김 대사를 반쯤 중국 사람으로 취급한다. 친중(親中) 노선으로 경도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중(訪中) 때도 친중 노선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전 총리에게 중국발(發) 정보를 공급하는 정보원 구실도 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일부 우파는 “대(對)중국 저자세 외교를 펼쳤으며, 햇볕정책을 대변해왔다”고 그를 비판한다.

    그는 외교부에서 일하면서 중국을 ‘안고 산’ 인물이다. 2001년 10월 부임한 뒤 6년 넘게 주중대사로 일했으며,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외교안보수석으로 햇볕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런 그가 이명박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기용됐다. 어떻게 보면 ‘미국통’ 일색이던 외교·안보·통일 라인에 ‘친중파’가 터를 잡은 셈이다.

    정원도 80명 줄어 직원들 전전긍긍

    “2006년 주중대사관 국정감사가 끝나고 우다웨이(武大偉·중국 외교부 부부장)를 만나러 김 대사와 함께 갔는데, 햐! 우다웨이가 포옹하고 좋아라 할 때, 그 사람 표정이 당신(김 대사)은 중국 사람이지 한국 사람 아니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통합민주당 L의원)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문제를 국제공조의 틀로 다루고 있다.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남북 간 퍼즐을 풀겠다는 뜻이다. 남북 간 내교(內交)를 다루는 통일부 폐지안은 이 대통령의 소신이었다. 그는 내각에 남북문제를 다루는 특임장관을 둔 뒤 외교부 중심으로 남북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으나, 통합민주당의 반발로 통일부는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문제의 컨트롤 타워는 외교부다.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이 겸임하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맡은 것은 현 정부에서 외교부의 역할과 위상이 갈수록 강화됨을 의미한다. 김 신임 장관도 친미(親美) 성향의 외교부에서 ‘나고 자란’ 외교관료의 전형이다.

    통일부는 5본부·1단의 본부 직제가 1실·3국·1단으로 개편되면서 직원 정원이 290명에서 210명으로 줄었다. 조직 개편으로 자리가 없어지는 공무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통일부는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본관 4∼5층에서 외교부가 있는 별관 4∼6층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이 때문일까. “이름만 남았을 뿐 외교부에 흡수됐다”는 탄식도 나온다.

    김 장관은 3월3일 베이징에서 열린 언론사 특파원단과의 귀임 간담회에서 “중국통이지만 미국 관련 분야에서도 오래 근무했다. 한국 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관계”라고 말했다. 그가 ‘이명박 코드’에 맞춰 변신하리라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통일부는 결국 ‘껍데기’만 남았다는 게 정부 일각의 평가다. 조직은 존치됐으나 외교부 중심의 ‘국제 공조틀로만’ 남북문제를 다루려는 스탠스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민족문제이면서 국제문제인 남북 간 이슈를 풀어가는 데 껍데기 통일부-알맹이 외교부가 찰떡궁합이 될 수 있을까?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가 어떻게 내·외교(內外交)를 조율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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