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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for you

차례 지내고 시칠리아로 떠나볼까

설음식 절대궁합 ‘돈나푸가타’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차례 지내고 시칠리아로 떠나볼까

차례 지내고 시칠리아로 떠나볼까

돈나푸가타 와이너리 전경. 이곳에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비였던 마리아 카롤리나의 저택이 있었다. [사진 제공 · 나라셀라]

설음식은 짠맛과 매운맛이 적어 와인을 곁들이기에 좋다. 여기에 가격도 비싸지 않고 이야깃거리까지 풍성한 와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 섬에 위치한 ‘돈나푸가타(Donnafugata)’는 이런 조건을 갖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1851년부터 5대째 가족경영으로 내려오는 이 와이너리는 시칠리아 와인의 고급화를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돈나푸가타는 이탈리아어로 ‘도망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와이너리 로고에는 수심에 찬 여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이 여인은 19세기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국의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 왕비다. 그녀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의 언니이기도 하다. 동생이 처형되자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대항했다. 하지만 상대는 나폴레옹이었다. 수세에 몰려 피난한 그녀는 시칠리아 돈나푸가타의 포도밭 자리에 있던 저택에 한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여인을 표현한 그림은 돈나푸가타의 와인 레이블에도 많은데 모두 이탈리아의 소설, 시, 전설 속 주인공이다. 시칠리아의 풍요로운 환경, 와인이 가진 특성을 잘 반영하는 각 캐릭터는 와인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돈나푸가타가 만든 와인 중 많은 종류가 실제 우리 설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데 그 와인들의 레이블에도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스파클링, 루메라, 안씰리아

차례 지내고 시칠리아로 떠나볼까

다양한 설음식과 궁합이 좋은 돈나푸가타 브뤼 NV 스파클링 와인, 모든 음식에 두루 잘 어울리는 루메라 로제 와인, 나물 안주와 잘 맞는 안씰리아 와인(왼쪽부터). [사진 제공 · 나라셀라]

설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는 최고의 돈나푸가타 와인은 스파클링이다. 스파클링 와인의 기포는 맥주의 그것처럼 입안을 개운하게 해 음식의 맛을 끌어올린다. 돈나푸가타의 스파클링 와인 브뤼 NV(Brut Non-Vintage)는 백포도인 샤르도네(Chardonnay)와 적포도인 피노 누아르(Pinot Noir)를 섞어 만든다. 포도를 짠 즙만 발효해 만들기 때문에 적포도가 섞여도 색은 투명하지만 백포도로만 만든 스파클링 와인보다 과일향이 진하고 부드럽다. 레이블에는 모나리자 등 1500년대 이탈리아 여인의 초상화에서 모티프를 딴 여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얼굴 주위를 둘러싼 크고 작은 공기 방울은 스파클링 와인이 주는 경쾌함과 생동감을 표현한다.



로제 와인도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채소, 해산물, 육류를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린다. 돈나푸가타의 로제 와인 루메라(Lumera)는 여러 적포도를 섞어 만든다. 산딸기, 체리 같은 베리류의 향과 함께 산초향이 살짝 느껴지고 차게 마시면 상큼함이 더욱 두드러진다. 루메라는 르네상스 시대 시칠리아의 시(詩)에 나오는 여인이다. 이 시에서 여인은 삶의 환희를 일깨우는 구원자 이미지로 등장한다. 레이블에 그려진 루메라도 머리에 온갖 꽃이 가득 피어 있고 행복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나물을 안주로 한 조촐한 술상에는 가벼운 화이트 와인인 안씰리아(Anthilia)가 잘 어울린다. 카타라토(Catarratto)라는 이탈리아 토착 포도 품종으로 만든 이 와인은 사과, 복숭아 등 신선한 과일향이 많이 나 나물뿐 아니라 해산물과 즐겨도 좋다. 레이블 속 여인은 고대 시칠리아 섬에 살던 엘리미아(Elymia)족이다. 사라진 종족의 여인이어서 그럴까. 바람 속에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초탈한 듯 미소 짓는 모습에  안타까움마저 든다.



라 푸가, 리게아, 세라자데

차례 지내고 시칠리아로 떠나볼까

세라자데, 리게아, 라 푸가 와인(왼쪽부터). [사진 제공 · 나라셀라]

생선전처럼 해산물과 기름이 만난 요리에는 라 푸가(La Fuga)나 리게아(Lighea)를 곁들이면 좋다. 상큼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리게아를, 묵직한 맛을 좋아한다면 라 푸가를 선택해보자. 라 푸가는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들어 열대과일향이 풍부하며 질감이 부드럽고, 리게아는 알렉산드리아 머스캣(Muscat of Alexandria) 품종을 사용해 레몬향, 꽃향, 재스민향 등이 난다. 리게아 레이블 속 여인은 이탈리아 작가 토마시 디 람페두사(Tomasi di Lampedusa)의 소설 ‘라 시레나(La Sirena)’에 등장하는 인어다. 소설 속 주인공인 대학교수는 젊은 시절 시칠리아 바닷가에서 우연히 인어 리게아를 만난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았고,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던 그는 죽으면 리게아를 다시 만날 것이라 믿으며 노년을 보낸다. 한편 라 푸가 레이블에는 새로운 삶을 찾아 어딘가로 떠나는 여인의 옆모습이 보인다. 물결치는 그녀의 머릿결에 채색된 주황, 노랑, 초록, 파랑은 시칠리아의 태양, 땅, 바다 등을 의미한다.

버섯전이나 동그랑땡처럼 다진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전류에는 무겁지 않은 레드 와인인 세라자데(Sherazade)가 잘 맞는다. 시칠리아 토착 품종인 네로 다볼라(Nero d’Avola)로 만든 이 와인에서는 과일향, 바이올렛향, 매콤한 후추향이 느껴진다. 세라자데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여주인공이다. 돈나푸가타는 옛날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가 이 와인의 풍부하면서도 톡 쏘는 매력과 닮았을 거라는 생각에 이름을 세라자데라 짓고 레이블에도 상상 속 그녀의 모습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앙겔리와 벤 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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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요리와 잘 어울리는 앙겔리 와인(왼쪽)과 떡 이나 한과와 잘 어울리는 벤 리에 와인.[사진 제공 · 나라셀라]

육적이나 갈비찜 같은 고기요리에는 앙겔리(Angheli)처럼 타닌이 느껴지는 묵직한 레드 와인이 제격이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를 섞어 만든 앙겔리는 체리, 자두의 진한 과일향과 담배, 초콜릿 등 다양한 향이 조화를 이뤄 복합미가 좋다. 앙겔리 레이블에 그려진 여인은 이탈리아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Orlando Furioso)’에서 기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모의 여인 안젤리카다. 앙겔리의 맛과 향이 내뿜는 힘과 우아함은 말을 타고 질주하는 안젤리카의 매혹적인 자태를 떠올리게 한다.

떡과 한과는 차게 식힌 스위트 와인과 함께 즐기면 훨씬 더 맛있다. 돈나푸가타의 벤 리에(Ben Rye)는 알렉산드리아 머스캣 포도를 태양과 바람에 말려 만든 와인으로, 마치 꿀에 절인 살구와 무화과를 마시는 듯 달콤하고 향기롭다. 벤 리에는 아랍어로 ‘바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바람이 포도를 말리고 향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레이블은 포도를 재배하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설을 맞아 오랜만에 만난 형제, 자매와 단란하게 술 한 잔 기울이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이번 설에는 늘 마시는 맥주나 소주 대신 와인을 준비해보면 어떨까. 시칠리아의 태양과 바람을 품은 돈나푸가타 와인은 설음식과 찰떡궁합을 이루고, 와인마다 얽혀 있는 재미난 이야기는 모처럼의 가족모임을 더욱 즐겁게 해줄 것이다.






주간동아 2017.01.25 1073호 (p112~113)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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