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3

2017.01.25

스페셜 | 10년 후 대한민국

하나의 희망, 또 하나의 절망

영향력 커진 시민사회 긍정적, 내우외환 우려되는 경제와 안보

  • 최정묵 공공의창 간사 www.publicview.kr

    입력2017-01-23 18: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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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7일부터 28일까지 3주 동안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과 여론조사 전문기관 우리리서치는 각 사회 분야 전문가 206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10년 후 미래’라는 제목의 소규모 웹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은 대한민국 10년 후 미래를 알아보고자 17개 문항으로 구성했다.
     
    조사 대상 :국회의원 보좌진(32명), 정당인(14명), 공무원(17명), 언론인(12명), 학계(10명), 기업인(25명), 사민사회단체 활동가(11명), 분야별 활동가(85명) 등 총 206명조사 방법 :모바일 웹 조사 조사 시기 : 2016년 12월 7~28일(3주간)조사 기관 : 공공의창-우리리서치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미래 10년 후 모습을 대체로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는 어디 한 곳 빠져나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을 찾아야겠기에 현상을 진단하는 단순 빈도분석을 넘어, 현상에 숨어 있는 본질을 찾기 위한 고급분석을 시도했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희망과 또 하나의 절망에 부딪쳤다.

    먼저 경제부터 살펴보자. 전문가들은 향후 10년간 우리나라 연평균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GDP) 기준)이 1~2%대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2%대 성장률에 대한 응답률이 24.3%로 가장 높았다. 1%대 성장률 응답은 20.7%였다. 1% 미만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응답은 19.5%,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응답도 20.7%로 나타났다. 3%대 성장률(4.7%)과 4% 이상 성장률(1.8%)을 점친 전문가는 극히 드물었다(그래프1).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8년(-5.5%)과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0.7%)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한 전망치들이다.



    ‘중국 경제 버블 붕괴’가 가장 큰 외부 위협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향후 10년 안에 한국 사회에서 재앙에 가까운 사회적 충격이 발생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복수 응답).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수준의 경제위기’(69.1%)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정부 재정위기 34.3%, 계층과 집단 간 극한 충돌 24.0%, 대량실업 사태 23.4%, 치명적인 대형 재난·재해 22.3% 순으로 나타났다(그래프2).



    ‘향후 10년 안에 우리나라에 외부적 위협이 될 수 있는 한반도 주변의 문제 중 가장 발생 가능성이 큰 것은 무엇인지’도 물었다(복수 응답). ‘중국 경제 버블 붕괴’라는 응답이 50.9%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는 북한 붕괴 등 급변사태 39.2%, 일본의 군사력 팽창 30.4%, 미·중 군사 충돌 29.8%, 한반도 군사 충돌 17.0%, 한미 군사동맹 균열 10.5% 순이었다(그래프3).

    전문가는 대부분 국내의 총체적인 경제위기와 국외의 중국 경제 버블 붕괴를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장애 요소로 꼽았다. 한국 경제가 내우외환을 겪으리라는 얘기다. 특히 군사 충돌보다 경제위기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렇다면 10년 후 정치 시스템은 어떨까. ‘10년 후 대한민국 권력구조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는지’를 물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라는 응답이 36.9%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대통령 5년 단임제 유지 21.4%, 이원집정부제 16.1%, 의원내각제 10.1% 순으로 나타났다(그래프4). 어떤 행태로든 대통령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이 높았다. 촛불집회에서도 확인됐지만, 시민참여의 힘이 부실한 대의제를 대체하기보다 보완하는 형국으로 흐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그만큼 ‘협치’에 대한 요구는 중요한 정치담론을 형성하며 대의제를 압박할 것이다.

    이번에는 문화다. ‘한국 사회가 보다 성숙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고쳐야 하는 문화 또는 의식은 무엇인지’ 물었다(복수 응답). ‘권위주의’라는 응답이 56.3%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연고주의 34.5%, 집단·국가주의 19.7%, 군사문화 17.6%, 온정주의 16.2%, 성과주의 12.7%, 가족주의 11.3%, 가부장주의 9.2% 순이었다(그래프5). 혁신경제와 정치개혁의 공통된 과제가 있다면 권위주의와 연고주의 타파일 것이다. 연고주의로 만들어진 사회·경제적 특권을 유지하려면 권위주의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세력이 비판받는 온정주의도, 산업화세력이 비판받는 성과주의도 권위주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걸까.  

    북한은 어떨까. 응답자의 29.7%가 ‘독재와 고립주의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방·개혁’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응답도 22.1%였다. 남북연합 21.4%, 중국 지배 자치정부 10.3%, 한미·국제사회 관리 2.1% 순으로 나타났다(그래프6). 북한의 미래를 결정할 요소는 미·중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보다 북한의 자체적인 선택이라는 의견이 좀 더 많았다.

    정의↔성장↔복지…담론의 순환

    한국 사회의 분야별 과제는 10년 후 어떤 모습일까. 개선되거나 발전할까, 아니면 악화되거나 후퇴할까. 분야별로 다소 차이를 보였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어둡고 무거운 전망으로 가득하다. ‘불공정제도와 관행’은 개선(33.3%)과 악화(31.3%) 예상이 비등했다. ‘사회보장체계’는 개선(30.9%)과 악화(30.9%)가 동일했다. ‘산업기술 국제경쟁력’은 악화(41.6%)가 개선(18.1%)보다 높게 나타났다. ‘사회 양극화 문제’도 악화(58.7%)가 개선(22.7%)보다 높았다. ‘저출산 문제’ 역시 악화가 59.7%로 개선(14.8%)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향상되리라는 전망(18.1%)보다 낮아지리라는 전망(34.2%)이 우세했다. ‘각 분야를 종합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낙관론(20.1%)과 비관론(24.8%)이 비슷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공공윤리·부정부패’는 개선될 것(38.9%)이라는 의견이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29.5%)보다 조금 앞섰다는 점이다(그래프7). 공공윤리·부정부패 분야의 개선 전망이 미래 한국 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전망을 어느 정도 걷히게 할지 궁금하다.

    앞으로 10년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분야별 예상들이 지닌 함의는 무엇일까. 이제 좀 더 깊게 들어가 보기로 한다. 분야별 전망을 물었던 8개 문항 가운데 ‘대한민국 미래’(나무의 뿌리)를 종속변수로 분야별(나뭇가지) 전망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분석했다. ‘그림’에서 보듯 대한민국 흥망성쇠의 열쇠로 꼽힌 분야는 ‘경제’나 ‘복지’가 아니라 ‘정의’였다.

    ‘대한민국 미래’라는 뿌리에 연결된 첫 번째 나뭇가지는 ‘공공윤리·부정부패’였다. 현 시국을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다. 윗가지는 ‘사회보장체계’였고, 왼쪽으로 뻗은 가지엔 ‘불공정한 사회제도와 관행’이 걸려 있다. ‘대한민국 미래’를 제외한 나머지 7개 문항을 요인분석으로 보면 ‘대한민국 미래’에서 ‘정의’는 ‘복지’나 ‘성장’보다 더 높은 상관성을 보였다. ‘정의’와 ‘복지’를 연결하는 중간 가지는 ‘사회보장체계’였고, ‘복지’는 ‘사회보장체계’를 비롯해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저출산 문제’가 묶여 있었다. 나무의 맨 위를 차지하는 것은 ‘성장’인데, 이를 ‘복지’와 연결하고 있는 중간 가지는 ‘저출산 문제’였다. 마지막 단계에 ‘산업기술 경쟁력’과 ‘사회 양극화 문제’가 함께 묶여 있었다.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가 서로 교차하며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의 저울 앞에 다시 서게 됐다.



    담론의 오작교, 4차 산업혁명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시민사회의 역동성은 암울한 설문조사 결과와 달리, 한국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장에서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면, 시민사회에서는 선거로 선출된 후보와 일상적으로 더 좋은 민주주의, 더 좋은 공공성을 연결하는 생활정치로 나타나야 한다.

    중산층의 단계적 몰락, 승자독식의 구조화, 질 낮은 일자리의 증가, 공동체 훼손 등은 4차 산업혁명의 이면이기도 하지만 현 한국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이 정의와 성장을 만나게 하는 오작교 구실을 하고, 장기적·궁극적으로 물질의 가치가 사람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게 하려면 시민사회의 소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학도, 산업도 사람의 일이다.  

    인류는 문명사적 위기에 놓였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를 극복하고 합의할 새로운 운영체계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대한민국은 그 고민이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는 각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국가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준비 기간이었다. 시장과 국가가 소임을 나눠 책임지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를 넘어 시민사회가 ‘협치’의 중심에 서서 시장과 국가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때가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시민사회의 정보처리 능력은 국가와 자본에 못지않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배후를 밝혀내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는 뒷심으로 작용했다. 대기업 총수들을 청문회 증언대에 세운 것도 결국 시민사회의 압력 때문이었다. 이제는 영웅적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 세계 일류 기업 한두 개에 대한민국 운명을 맡기는 시대는 끝났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시민사회, 국가, 시장이 함께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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