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3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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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론? 과거를 보라

대선 판세 좌우할 4대 변수…경선에서 뒤집히고, 검증 과정에서 곤두박질치고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7-01-23 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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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극적인 선거는 2002년 대선이었다. 무명의 노무현 후보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대통령에 당선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야권의 집권은 언제나 극적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한 과정도 2002년 대선 못지않았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 없었다면 김대중 정부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다시 야권의 집권이 점쳐진다. 과거 어느 때보다 국민 여론이 우호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운동장은 더 기울어졌다. 60세 이상 유권자가 사상 최초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유권자의 24%에 달한다. 4명 가운데 1명이 60대 이상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충격파가 워낙 컸던 탓에 이들 가운데 부동층이 늘어난 것이 그나마 운동장의 기울기를 줄여주고 있을 뿐이다. 물론 기울기는 수시로 변하는 것이고, 결국 본래 각도로 돌아갈 개연성이 높다. 시간은 절대 야권 편이 아니다. 야권은 집권하려면 이번에도 극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경선 기적

    대선 막판 변수는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한다. 대세론이 자주 허물어진 까닭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대세론이 그렇게 무너졌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내 이인제 대세론도 그랬다. 2002년 민주당이 전국 순회 경선에 처음 돌입했을 때 이인제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 중이었다. 2002년 1월 신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총재 지지율은 45.4%, 이인제 상임고문은 34.8%였다.

    이인제 대세론이 도도한 가운데 노무현 대안론도 없지 않았지만, 경선 돌입 전 민주당 노무현 고문의 지지율은 5~7%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3월 16일 광주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노무현 후보가 1위를 차지한 뒤 여론은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노풍’이 급속히 힘을 얻어가면서, 4월 1일 동아일보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노무현 고문이 이회창 총재와 양자대결에서 45.3% 대 34.6%로 10.7%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선, 그것도 광주 경선 하나로 이인제 대세론은 물론, 이회창 대세론까지 한꺼번에 깨는 ‘1타 2피’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이런 경선 기적이 이번 대선에서도 일어날까. 국민 정서는 이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국민은 전면적인 국가 대개조 또는 대수술을 갈망한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인물보다 기득권을 타파할 인물을 원한다. 당연히 새로운 인물에 대한 욕구도 강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는 과거 어느 대선보다 많은 대선주자가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경선도 치열할 테다. 그 과정에서 이미 형성된 ‘문재인 대세론’이나 ‘반기문 대세론’이 깨지는 이변 또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번에도 2002년처럼 ‘문재인 대세론’과 ‘반기문 대세론’을 단번에 깨는 인물이 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돌발 악재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이 귀국하기 전날 동생 반기상 씨와 그의 아들 반주현 씨가 미국 뉴욕에서 기소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악재는 늘 이런 식으로 닥친다. 전조 현상이 없진 않다. 하지만 그 시점부터 관심을 갖는 언론이나 국민은 거의 없다. 대선주자 본인도 수면으로 부상하기 전까지는 심각하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을 위협한 돌발 악재는 이른바 ‘병풍(兵風)’이었다. ‘한겨레’의 1997년 3월 8일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 지지율은 44.3%,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지지율은 32.2%였다. 97년 대선 때 이회창 총재가 공식 후보로 확정된 시기는 7월 하순이다. 그때까지도 이 총재는 지지율 40%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병풍이 불면서 15%대로 급락했다. 반면, 당내 경선에서 패한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30%를 넘어서면서 결국 그의 탈당으로 이어지고 만다. 병풍으로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이인제 후보의 출마에 따른 보수표 분산, 그리고 DJP연합 카드까지 더해지면서 이회창 총재는 패배의 길로 들어서고 만 것이다.

    병풍의 악몽은 2002년 대선에서도 이어졌다.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 군 수사관인 김대업 씨와 민주당 설훈 의원이 또다시 이회창 총재의 장남 이정연 씨가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고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른바 ‘2차 병풍’이다. ‘김대업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건은 검찰 수사로 이어졌고, 이 총재는 또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후 대법원은 2005년 김대업 씨에게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했지만, 대선 결과를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본격적인 검증 과정에 돌입하면서 최근 반기문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지만, 문재인 대세론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최근 문 전 대표는 자신이 이미 검증을 거친 후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2007년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찬반 결정 당시 북한 측에 사전에 물어보고 결정했는지 같은 논란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불거질 수 있다. 이른바 ‘3철’을 비롯한 비선 실세 관련 악재도 터질 수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당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신분으로 부산저축은행 측의 부탁을 받고 검사기관인 금융감독원 책임자와 전화통화를 해 개입했다는 의혹 역시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다. 문 전 대표가 공동소유한 법무법인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수임한 단순 빚 독촉 업무의 대가로 수임료 59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런 돌발 악재는 후발 대선주자에게도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돌발 악재는 이회창 후보에게도 그러했듯이 사실 여부를 떠나 선거 국면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래서 기획 폭로가 줄을 잇기도 하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변수다. 돌발 악재가 대선주자 개인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차떼기’ 사례처럼 정당 차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처럼 정권 차원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또한 속수무책이기는 개인적 돌발 악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합종연횡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병풍은 물론 ‘총풍’에도 시달렸다. 대선 직전 이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려고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한 3인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박충 참사를 만나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드러난 사건이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 후보가 DJP연합을 이루지 못했다면,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개연성이 높다. 대선 결과 김대중 후보가 1032만6275표(40.3%)로 승리했다. 이회창 후보는 993만5718표(38.7%)로 패했다. 불과 39만여 표차다.

    경선 패배 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출마한 이인제 후보를 이회창 후보가 당에 주저앉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란 분석도 적잖다.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은 19.2%였다. 이 득표율이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 이인제 대세론을 형성한 발판이기도 하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을 낙관하고 이인제 후보에게 손을 내밀지 않던 사이 김대중 후보는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에게 적극 구애한 끝에 DJP연합을 이뤄냈다. 이 한 번의 극적 선택으로 적어도 100만 표 정도는 움직이지 않았을까 한다. 1997년 10월 3일 한겨레가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김종필 총재의 지지율은 4.0%였다.

    이번 대선에서도 극적 선택이 나올 수 있을까. 대선주자가 많을 뿐 아니라 정당도 많아 가능성은 높다. 최근에는 힘이 빠지긴 했지만 임기 3년 단축 개헌을 고리로 중도와 보수 대선주자들이 제3지대에서 결집하는 것을 상정해볼 수 있다(상자기사 참조).



    대형사건

    마지막으로 대형사건도 변수다. 여기에는 대지진 발생이나 백두산 폭발 같은 천재지변과 더불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같은 대규모 감염병 유행, 또는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이 포함될 수 있다. 메르스 사태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지지율이 1위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처럼 특별한 계기로, 특별한 대응으로 특정 대선주자가 부각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같은 대형 게이트도 이에 해당한다. 게이트는 주로 정권을 쥔 쪽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여권 대선주자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언제나 빠지지 않는 북한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선거에서 북풍은 맹위를 떨치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에 민심은 한결 냉정해진 편이다. 하지만 북한 급변 사태가 발생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는 상황이다. 이런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여론은 요동칠 개연성이 높다. 이 경우 안보 면에서 가장 신뢰감을 주는 대선주자가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외환위기) 같은 상황도 대형사건의 범주에 들어간다. 가계부채 또는 국가채무로 말미암아 갑자기 경제위기가 도래한다면 역시 국민은 경제에 유능한 대선주자에게 먼저 눈길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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