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9

2016.12.28

커버스토리

베트남·이란 들썩 한류는 그래도 흐른다!

중국 한한령에 막히자 비공식채널 활성화…이란은 사극 인기에 이어 ‘가전한류’

  • 정덕현 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입력2016-12-23 17: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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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부의 한류금지령(限韓令·한한령)에 담긴 공식적인 제재 사항은 파악되지 않지만, 중국과 교류하는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이 체감하는 한한령은 분명 존재한다. 한류스타 송중기가 모델로 활동하던 중국 휴대전화업체의 광고 모델 교체, ‘대장금’의 이영애가 주인공을 맡은 새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 대한 중국 심의 지연 등 최근 국내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황이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한류는 비공식채널을 통해 여전히 중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현재 케이블TV방송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도깨비)와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두 작품 모두 스타 작가 김은숙, 박지은이 각각 집필한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중국 팬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공식채널이 없어 일명 ‘해적판’ 형태로 유통되긴 하지만,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의 화제 페이지에서 ‘푸른 바다의 전설’은 2016년 12월 14일까지 누적 조회 수가 27억 뷰에 육박했고, ‘도깨비’ 역시 8억3000만 뷰를 기록했다. 심지어 중화권 톱스타 수치(舒淇·서기)는 자신의 웨이보에 ‘도깨비의 모든 장면이 가슴 뛰게 아름답다’고 적었다.



    드라마 OST로 시작된 케이팝 열풍 

    또한 중국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쿠에서는 이미 종영한 김우빈, 수지 주연의 ‘함부로 애틋하게’가 2016년 12월 14일 현재 39억 뷰를 돌파했고 이준기, 이지은(아이유) 주연의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도 누적 조회 수 25억 뷰를 넘어섰다. 그야말로 풍선효과다. 공식채널이 막히자 비공식채널로 우회하는 이가 늘어난 셈이다. 이로 인해 국내 제작사가 떠안는 금전적 손해는 막대하지만, 반대로 이번 기회에 중국에서 한류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받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 한한령이 아니더라도 한류는 이제 새로운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중 주목되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1990년대 말부터 조금씩 전파되던 베트남 내 한류는 2000년대 초부터 케이팝(K-pop)이 온라인 매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불이 붙었다. 96년 ‘첫사랑’, 97년 ‘모델’ 그리고 2002년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가 한류 물꼬를 텄고, 드라마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을 통해 우리 가요에 익숙해진 베트남 국민은 케이드라마(K-drama)에 이어 케이팝 열풍까지 만들어냈다. 베트남인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안에 녹아 있는 진한 가족애와 우정, 사랑 등이 자기들 정서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중국 드라마에 의존하던 베트남인은 한류를 접하고부터 콘텐츠 면에서 월등한 한국 드라마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 교류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2015년 말 베트남에서 방영된 영화 ‘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 판은 흥행 수익 480만 달러(약 57억 원)를 기록하며 베트남 박스오피스 사상 역대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현재 베트남 내 한류가 ‘국내 제작-해외 수출’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으며, 현지화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히 말해준다. 2015년 베트남에서 방영된 한국-베트남 합작 드라마 ‘오늘도 청춘’은 2016년 ‘시즌2’가 제작됐으며,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은 강태오는 베트남에서 대세 한류스타로 등극했다. 

    한때 한류 콘텐츠가 너무 비슷하다는 이유로 회의론이 일기도 했지만 그 공백을 케이뷰티(K-beauty)와 케이푸드(K-food)가 메웠다. 특히 케이뷰티는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예인의 미모를 닮고자 하는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중동 이란에서 부는 한류 열풍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으로 2007년 이란에서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의 성공을 들 수 있다. 사실 ‘대장금’이 이란에서 9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소식에 많은 이가 의아해했다. 이슬람권 국가에서 한복 차림의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흥행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장금’의 구성 자체가 다양한 미션을 해결해가는 미드(미국 드라마)와 비슷하고, 보수성의 외피를 둘렀지만 여성의 성장을 그리는 혁신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란 국민의 억눌린 감정을 일정 부분 해소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페르시아 왕조의 역사를 가진 이란이 우리 사극에서 표현되는 것과 유사한 정서를 지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란에서 부는 한류 열풍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기에 그동안 이란에서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는 대부분 사극이었다. ‘주몽’ ‘해신’ ‘바람의 나라’ ‘상도’ ‘이산’ ‘해를 품은 달’ ‘장영실’ ‘육룡이 나르샤’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사극만 히트한 건 아니다. 공효진, 이선균 주연의 ‘파스타’에 이어 최근에는 ‘응답하라 1988’이 인기리에 방영됐다. 한류 드라마로 모아진 관심은 케이팝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란의 최대 한류 팬클럽 ‘클라클러스’ 회원을 포함해 걸그룹 ‘소녀시대’와 아이돌그룹 ‘인피니티’ ‘EXO’ ‘슈퍼주니어’ 팬클럽의 활동도 왕성하다.



    이슬람 문화권도 녹인 한류

    이란 내 한류에 기대가 큰 이유는 최근 서방의 대이란 경제제재 해제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란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란 젊은이가 늘고 있다. 한국 제품에 대한 관심은 이른바 ‘가전한류’로도 나타난다. 이슬람 문화권에 맞게 제품을 변용한 덕에 한국산 제품에 거부감이 거의 없다는 평이다. 심지어 이란시장에서 한국 가전의 시장점유율이 7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류로 전 세계를 제패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한류에 거는 기대마저 꺾을 이유는 없다.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의 문화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듯이, 한류 역시 이들의 문화 틈바구니에서 나날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음이 자명하다. 한류 20년을 맞아 그 성과가 비록 만족스럽지 못해도 한류가 지닌 잠재력까지 얕봐서는 안 된다. 문화는, 한류는 한쪽이 막히면 다른 한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중국과 일본에 의존해오던 한류 비전을 베트남, 이란 등 제3세계로 확대해가야 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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