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9

2016.12.28

커버스토리

‘성형관광’ 끊기니 강남이 아우성

수술 부작용 파문 등 악재… 중국 성형 급성장도 의료한류에 타격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2-23 17: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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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영향으로 한국문화, 한국음식 등 한국 스타일을 선망하는 중국 여성이 많아졌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형한류’다. 몇 년 전 한 중국인 여배우가 ‘한국 성형외과에서 성형을 받아 예뻐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국 원정성형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성형수술은 한 번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불안한 중국 성형외과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경험이 풍부한 한국 성형외과를 선호하는 심리가 이 열풍을 더 부추겼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2014년 기준 국내 성형외과를 찾은 외국인 환자 10명 중 7명이 중국인이다. 중국인 환자의 성형외과 방문 비율은 2009년에는 27.2%였으나 2014년에는 68.6%로 급격히 늘었다. 환자 수도 791명에서 2만4854명으로 30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유커(游客·중국 단체여행객)의 감소로 우리나라 ‘성형관광’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을 찾은 전체 중국인 환자의 24%가 성형외과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원으로 비교하면 2014년에 비해 27.9%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2016년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성형외과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발표 이후 더욱 급격하게 환자 수가 줄고 있다”고 말한다.

    성형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본격적으로 줄기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중국 공영채널 CCTV가 ‘한국 성형미용의 숨겨진 함정’이란 제목의 방송을 통해 성형관광의 부작용과 비싼 치료비로 폭리를 취하는 일부 성형외과를 폭로하면서 성형관광객 수가 급감했다. 여기에 사드 이슈까지 겹치면서 서울 강남에 주로 포진한 성형외과병원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조만간 문 닫는 병원 속출한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중국인 환자를 진료하는 한 성형외과 의사는 “2~3년 전 한창 중국인 환자가 많이 들어올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그 수가 절반도 안 된다. 보통 공식 에이전시가 환자를 모객한 뒤 병원과 연결해주는데, 최근에는 이런 단체여행객 수가 확 줄었다. 제주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성형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조만간 파산하는 병원이 속출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의 ‘성형메카’라 부르는 서울 강남 일대 성형외과병원을 직접 방문한 결과 과거에 비해 중국인 환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외국인 관광코스로 급부상한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 신사역 주변에는 빌딩 전체를 병원으로 쓰는 기업형 성형외과병원이 즐비한데, 거리에서는 예전처럼 붕대를 감고 중국어로 대화하는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인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A성형외과는 대리석으로 꾸민 화려한 로비는 물론, 대기실과 상담실도 한산한 편이었다. 그나마 몇 명 있는 환자는 태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했다. 병원 안내데스크 직원은 “중국인 환자를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여전히 중국인 비율이 높긴 하지만, 환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얼마 전 중국인 코디네이터 2명이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경영 악화로 직원 수를 줄인 곳은 A성형외과만이 아니다. 나민화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이사는 “중국인 환자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병원일수록 타격이 크다. 건물 임차료에 인건비, 에이전시 수수료 등 등 고정 지출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환자만 줄고 있기 때문에 간신히 유지하는 곳이 꽤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성형 비용이 낮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 성형외과 의사는 “환자가 없으니 시술 비용을 내릴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비용에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실제 가격을 검색해보기 때문에 올려 받기도 어렵다. 에이전시 수수료에 중국 코디네이터 비용 등을 감안하면 남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외국인환자유치시스템에 등록된 정식 에이전시는 총 1666개로 해마다 늘고 있지만 영업을 중단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정해놓은 에이전시 수수료 가이드라인은 진료비의 12~20%로, 유치 국가와 병원 간 계약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 성형관광업 종사자는 “불법 브로커 문제는 거의 다 사라졌지만 환자 수가 줄다 보니 에이전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중국 전문 업체가 타격이 크다. 최근에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외국인 환자 유치를 시도하려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은 한류 영향으로 방한하는 의료관광객이 2014년 8000명에서 2015년 1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56.5% 증가했다.



    강남에서 배워간 중국 성형외과 승승장구

    중국인 환자가 급격히 줄어든 또 다른 원인으로 중국 현지 성형외과의 환경 변화를 꼽을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성형외과는 믿기 힘들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5년 사이 장족의 발전을 이뤄 지금은 강남 일대 유명 성형외과 못지않은 전문성을 갖춘 병원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엄밀히 말하면 이는 ‘한국식 중국병원’으로, 거대 자본을 앞세워 한국 성형외과를 100% 벤치마킹한 곳들이다. 내·외부 인테리어부터 장비까지 한국식으로 갖춰놓고 한국 유명 의사를 초빙해 환자를 유치하는 것.

    오히려 한국보다 수술 비용이 비싼 곳도 있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건너가 수술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중국 상류층이 주요 고객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최근 몇 년 전부터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전문의는 주말마다 중국으로 건너가 ‘가욋돈’을 벌고 있다. 또한 이들은 병원에서 환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의료기업과 정식 협약을 맺어 의료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성형외과 의사의 손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한국과 의료기술 격차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의사 수준이 높아졌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면 중국인이 우리나라까지 와서 원정 성형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고, 중국 병원에서 한국 의사를 고용할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지금처럼 국가 간 정치적 이슈가 민감한 상황에서는 한국 의사의 중국 진출에 제동이 걸리게 마련이다. 실제로 사드 문제가 불거진 뒤 한국 의사의 중국 병원 취업이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 성형외과 의사는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아 중국으로 건너간 의사가 꽤 있는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걸로 안다. 중국에서 활동하려면 자격증 시험을 따로 봐야 하는데, 시험문제가 예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고 하더라. 심지어 중국어로 면접을 보기도 해 부담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결국 성형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외국인 환자 유치 채널을 다각화하면서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16년 11월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5년간(2017~2021) 의료한류의 세계적 확산과 국제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의료 해외 진출 및 외국인 환자 유치 지원, 글로벌 헬스케어 인력 등 기반 인프라를 강화하는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한 성형외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문화융성사업처럼 부디 의료융합사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머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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