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9

2016.12.28

특집

‘대통령 이재명’ 길에 놓인 장애물 4

혹독한 검증, 문재인과 경선, 보수 재편, 그리고 중도의 선택

  •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ankangyy@hanmail.net

    입력2016-12-23 17: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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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이재명.’ 탄핵정국에서 비롯된 대권지형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대선주자 3강으로 올라선 이재명 성남시장은 난관을 뚫고 대통령에 당선할 수 있을까. 이재명은 먼저 1차 관문인 국민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갑자기 나타난 이재명에게 국민은 혹독한 검증을 요구할 수 있다. 2차 관문도 만만치 않다. 촛불정국 이후 줄곧 1위를 고수하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경선을 치러야 한다. 마지막 관문도 쉽지 않다. 대통령선거(대선)는 51 대 49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보수가 재편되면 중도의 선택이 곧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 이재명 앞에는 대략 4가지 장애물이 있다. 이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 장애물을 넘어설 때 이재명은 비로소 대통령이 될 수 있다.



    1 정치과잉 또는 진보과잉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없는 것.’ 2005년 8월 미국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의 특집기사 제목이다. 기사에 따르면 정당은 2040년 사라질 것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인기 없는 분야가 정당, 정치, 국회의원이다. 영국문화원의 ‘2020 보고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미래예측보고서’도 2040년 정당 소멸을 예측했다(‘유엔미래보고서 3’, 155쪽).

    정당 소멸은 곧 정치 소멸이다. 국회는 신뢰도 조사에서 만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당은 오래전부터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기관이 됐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갓 창당된 국민의당의 약진은 기존 정당 또는 정치에 대한 불신의 표출이었다. 정치 소멸의 징후다. 큰 격차로 당선한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권을 극도로 싫어했다. 국민의 정치혐오가 만연한 가운데 이들은 탈정치 이미지를 극대화했고 무난하게 당선했다.

    이재명이 시장으로 재직하는 성남시는 경기도의 변방이 아니다. 수백 명의 전·현직 국회의원, 전·현직 장관급 인사가 거주한다. 100만 명의 인구와 3조 원에 육박하는 예산, 서울 강남에 버금가는 교육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파워풀한 기초자치단체인 셈이다. 이재명은 성남에서도 튀는 인물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In-depth Interview)를 진행하면서 자주 듣는 얘기가 ‘성남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은 이재명’이었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고 기회 포착에 탁월하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재명을 ‘준비된 선동가’라고 평가했다.



    정치과잉은 곧잘 진보과잉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이재명은 가장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하야, 탄핵, 구속’을 가장 먼저 주장했다. 2016년 12월 17일 대전 촛불집회에서도 재벌 해체(또는 재벌체제 해체)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 구속 수사를 주장했다. 다른 대통령선거(대선) 주자와 비교되는 선명한 주장이다. 오승용 전남대 교수는 이재명을 문재인보다 더 왼쪽에 자리한 대선후보라고 분석했다. 정의당 지지층의 약 40%가 대선후보로 이재명을 꼽는다.

    정치과잉 또는 진보과잉은 이재명이 넘어야 할 첫 번째 장애물이다. 반(反)정치, 반(反)기득권 흐름 속에서 유력 대선후보가 된 이재명의 숙명이다. 이재명은 최근 언론 인터뷰마다 법 질서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자신이 보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2 네거티브 이미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촛불민심 수혜자다. 탄핵정국 덕에 종합편성채널 JTBC의 정치 토크 프로그램 ‘썰전’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보내는 유시민에게 2010년은 기억하기 싫은 해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유시민은 민주당 김진표를 0.96%p 차로 꺾고 야권 단일후보가 된다.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던 유시민은 한나라당 김문수에게 큰 격차(4.41%p)로 패배했다. 유시민은 4대강 반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문수의 핵심 공약은 GTX(광역급행철도) 임기 내 착공이었다. 네거티브가 졌다.

    2012년 대선도 마찬가지다. 선거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박근혜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마음에 드는 공약으로 ‘민생안정’을 꼽았다. 문재인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사람이 먼저다’를 꼽았다. 문재인의 핵심 공약인 ‘사람이 먼저다’는 정치 슬로건이자 네거티브를 내포하고 있다. 문재인은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안철수를 승패구도로 몰아넣었다.

    이재명은 네거티브 캠페인에 익숙하다. 여당이 근소하게 우위를 점한 시의회를 설득하기보다 시민에게 직접 호소하며 시정을 돌파하곤 했다. 국가정보원 사찰사건을 폭로하고 지방재정 세제 개편을 쟁점화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해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여왔다. 강렬한 네거티브 탓에 이재명이 최초로 실시한 3대 무상복지(산후조리 지원, 청년배당, 무상교복) 같은 포지티브 이미지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이재명의 네거티브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비박(비박근혜)계 대표주자인 김무성, 유승민에 대한 정계은퇴 요구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수사 요구 까지 거침이 없다. 네거티브는 후발주자에게 손쉬운 전략이자 유용한 수단이다. 그러나 차기 대선의 상수가 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네거티브 이미지는 이재명이 넘어야 할 두 번째 장애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 이미지를 벗는 데 20년을 보내야 했다.



    3 민주당 지지층 외면

    민심, 구도(정당, 인물), 전략은 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3대 요소다. 민심이나 구도는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전략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바뀔 수 있다.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선룰’이다. 지금까지 친노(친노무현) 패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열성 지지자를 경선룰을 통해 동원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선거인단 구성은 친노의 핵심 전략이다.

    이재명은 민주당 지지층에서 2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층에서 2016년 11월 다섯째 주 20.8%, 12월 첫째 주 24.1%, 12월 둘째 주 19.3%를 나타냈다. 문재인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층에서 50% 안팎이다. 이재명은 문재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재명은 정의당 지지층에서 야권후보 가운데 1위다. 국민의당 지지층에서도 17.3%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표1 참조).

    선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민주당 경선룰은 대략 선거인단 구성과 여론조사로 이뤄진다. 선거인단은 당원과 국민으로, 여론조사는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으로 구성된다. 이재명은 열성 지지자가 대거 참여할 수 있는 경선룰이 도입되지 않으면 문재인을 꺾기 어렵다. 다른 군소 주자들과 연대한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누르기도 했다. 문재인과도 오차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결과도 많았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지층에서 유난히 약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재명은 민주당 지지층에게 아직 ‘대통령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의 비판처럼 사이다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만 허기를 채울 수는 없다.

    민주당 지지층의 외면은 이재명이 넘어야 할 세 번째 장애물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약진한다 해도 과거 경선룰로는 승리하기 쉽지 않다. 결선투표 같은, 이재명에게 유리한 새로운 경선룰이 필요하다.



    4 중도층 이탈 우려

    탄핵 이후 민주당 지지율은 40% 전후를 기록했다. 국민의당, 정의당까지 포함하면 전체 야당 지지율은 55%를 넘는다. 그러나 여권이 재편되고 단일후보를 내면 대선은 결국 51 대 49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야당은 제2, 제3세력으로 쪼개져 있다. 미세한 차이에서 중도의 선택이 곧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

    18대 대선을 치른 2012년 2월부터 8월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2월 조사에서 자신이 중도라고 밝힌 유권자는 박근혜 29.8%, 안철수 25.8%, 문재인 20.7% 순이었다. 그러나 야권 후보 단일화가 기정사실이 된 8월에는 양상이 바뀐다. 박근혜 40.1%, 안철수 28.4%, 문재인 9.1%였다(표2 참조).

    박근혜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진 것은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논의되면서 안철수와 문재인을 지지하던 중도층 일부가 이동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을 지지하던 중도는 안철수로, 안철수를 지지하던 중도는 박근혜로 연쇄 이동했다. 즉 안철수가 야당 본색을 드러내자 안철수를 지지하던 중도 일부가 미련 없이 박근혜 지지로 돌아선 것이다. 비중도 역전됐다. 안철수와 문재인 지지율을 합쳐도(37.5%) 박근혜의 지지율(40.1%)에 미치지 못했다.

    2012년 대선을 통해 드러난 중도의 정체는 한마디로 ‘유연하고 합리적인 보수’에 가깝다. 진보진영이나 제3세력이 중도를 지지기반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 될 수 있다. 과거에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촛불민심으로 현재는 중도층이 야당, 야권성향 후보를 선호하지만 대선이 임박하면 본래 자리로 회귀할지 모른다.

    중도층의 이재명 지지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16~18%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지지율(20~30%)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중도층의 이재명 지지에는 불안요소가 많다. 국민이 이재명을 가장 진보적인 후보로 인식할수록 대선이 임박하면 지지층이 문재인이나 안철수 등 다른 야권후보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안철수나 손학규 등을 지지하던 중도는 여권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중도층의 지지가 문재인에서 안철수로, 다시 박근혜로 연쇄 이동한 내일신문-디오피니언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중도는 늘 조금이라도 덜 진보적인 후보, 덜 불안한 후보에게 이동했기 때문이다.

    중도층 이탈 우려는 이재명이 넘어야 할 네 번째 장애물이다. 문재인의 패배는 중도의 거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재명은 중도에서 문재인보다 확장성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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