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8

2016.12.21

사회

지워지지 않는 립스틱의 치명적 유혹

착색력·지속력의 비밀은 에탄올과 안료 ‘먹는 화장품’임에도 50g 이하 제품은 성분표시 제외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12-16 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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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지워지지 않는 지속력 최강 립스틱.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셔도, 수영장에 가도 안심.’

    올 한 해 립스틱 광고에는 이와 유사한 문구가 자주 등장했다. 보통 립스틱을 바른 후 말을 하거나 식사를 하면 색이 지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립스틱 제품 상당수는 ‘덧바를 필요 없는’ 특성을 강조한다. 색이 지워지지 않도록 립스틱을 바른 후 그 위에 덧바르는 개별 제품도 등장했다. 이들 제품은 이름이 다 다르지만 소비자를 유혹하는 강조점은 공통적이다. 입술에 립스틱 색소가 밀착되는 ‘착색력’, 웬만한 수분에는 지워지지 않는 ‘지속력’이다.

    립스틱은 얼굴이나 몸에 바르는 여느 화장품과 달리 ‘먹는 화장품’이라는 특성이 있다. 소비자가 의식하지 않는 사이 입술에 혀를 대는 행동만으로도 립스틱 성분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입술은 다른 부위 피부에 비해 유·수분이 부족해 립스틱 사용 시 성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지속력을 발휘하는 립스틱 성분은 무엇일까. 화장품 판매처 몇 곳을 돌아봤다.



    성분은 영업기밀?

    서울 강남역 부근,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높은 A브랜드 매장을 찾았다. ‘색깔이 오래 남는다’고 광고하는 립스틱을 살펴보니 겉포장이나 제품 자체에 전 성분이 표시돼 있지 않았다. 판매직원에게 “전 성분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화장품 성분을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검색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으로 방문한 B브랜드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은 “립스틱 성분은 연고에 쓰이는 라놀린, 왁스가 대부분”이라고만 답했다.



    여러 화장품 브랜드가 모인 C매장에는 총 14개 브랜드의 립스틱이 있었다. ‘익스트림’ ‘타투’ ‘올 데이’ ‘롱 래스팅’ 등 눈길을 끄는 제품명들이 보였다. 하지만 해외 S브랜드를 제외하고 모두 전 성분이 표기돼 있지 않았다. S브랜드도 영어로 된 전 성분 표기사항 위에 국내 수입처의 스티커가 붙어 있어 이를 떼지 않고는 립스틱 전 성분을 알 수 없었다. 나머지 13개 브랜드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립스틱 성분은 나와 있지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2008년부터 ‘화장품 전 성분 표시의무제’를 시행했지만 50g, 50ml 이하 소용량 제품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립스틱 제품은 대부분 10g 내외이다.

    즉 립스틱의 지속력과 착색력을 강화하는 성분을 알려면 화장품 회사에 개별적으로 연락해야 했다. 화장품 브랜드 세 곳에 문의하니 한 곳은 “영업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으며 식약처가 인증한 원료만 쓰고 있다”고 했고, 한 곳에선 답이 오지 않았으며, 나머지 한 곳은 다음과 같은 짧은 답변을 보내왔다.

    “디메티콘/비닐디메티콘크로스폴리머라는 실리콘엘라스토머의 미세한 입자가 입술 주름을 메우고, 색소를 밀착해 지속시키며, 착색제(염료)로 착색력을 높인다. 식약처에서 화장품 원료로 인증한 원료를 사용했기에 유해성 우려는 없다.”

    전문가에 따르면 립스틱의 지속력과 착색력을 강화하는 요소는 몇 가지 더 있다. 이은주 연성대 뷰티스타일리스트학과 교수는 “착색을 돕는 성분은 휘발성 물질인 에탄올”이라고 말했다.

    “립틴트, 립라커 제품은 착색을 우선시한다. 이들 제품은 일반 립스틱에 잘 사용하지 않는 에탄올 성분을 함유한다. 화장품에 자주 사용되는 ‘헥사디올’도 에탄올 계열이다. 휘발성이 강한 에탄올은 립 제품의 수분을 날리고 입술 피부에 색소를 밀착시킨다. 이 성분을 자주 사용하면 입술이 건조해지고 염증이 생길 수 있다.”  



    ‘먹는 화장품’ 간과한 식약처

    립스틱의 지속력을 강화하는 성분은 시대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하병조 을지대 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는 최근 쓰이는 성분 몇 가지를 설명했다.

    “1990년대 초 일본에서 ‘키스 프루프’(키스해도 묻어나지 않는)라는 광고로 선보인 립스틱이 있었다. 당시엔 알긴산(alginic acid)이라는 해조류 추출 성분을 사용해 국내에서도 조금씩 유행했다. 요즘엔 입술 위에 얇은 막을 형성하는 고분자 피막제로 디메티콘/비닐디메티콘크로스폴리머, 폴리비닐알코올, 하이드로제네이티드스타이렌/메틸스타이렌/인덴코폴리머 등이 쓰인다.”  

    색소를 만드는 안료, 염료도 착색력을 높인다. 하 교수는 “‘레이크 안료’ 등 일부 색소 성분은 전용 리무버로 지우지 않는 한 입술 피부에 남는다. 또한 안료 중에는 알루미늄, 구리, 망간 등 금속이온과 결합한 경우도 있는데 부실하게 결합되면 녹아 피부 속으로 흡수될 위험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제언했다.

    “미국은 색소의 유해성 정도에 따라 FD&C(음식과 약, 화장품에 사용), D&C(약과 화장품에 사용), Ext D&C(외상용 약과 화장품에 사용) 등을 색소명 앞에 표기한다. Ext D&C도 입술이나 정맥 등 피부 속으로 흡수되기 쉬운 부위에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관리가 까다롭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유사하게 ‘적색 ○○호’ ‘황색 ○○호’ 등 색상과 호수만 붙여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반인이 알기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미국처럼 사용 제한 범위를 표기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또한 소비자는 입술 전용 리무버로 립스틱을 꼼꼼하게 지운 후 세안해야 한다.”

    문제는 많은 소비자가 립스틱을 꼼꼼하게 지우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리무버로 지우는 순간 입술이 더 건조해져 각질이 일어나고 번거롭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은주 교수는 “지속력 강한 립스틱을 바르고 리무버로 지우는 일을 반복하면 입술 피부가 건조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그럼에도 꼭 립스틱을 써야 한다면 꼼꼼한 클렌징은 필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립스틱 제품에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립스틱은 얼굴이나 몸에 바르는 화장품과 똑같이 분류돼 해당 성분을 ‘먹었을 때’ 유해성은 따로 감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화장품 기업은 “식약처가 인증한 원료이므로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설명만 반복한다.

    이에 “정부가 나서서 화장품 유해성 관리를 강화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은주 교수는 “국내에는 ‘화장품을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하지만 ‘여성 한 명이 평생 먹는 립스틱 양이 3~7kg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립스틱은 ‘먹는 화장품’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인당 화장품 사용량 등 소비패턴 조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특히 초등학생도 화장하는 현실을 감안해 화장품 안전성 관련 교육도 시급하다. 피부에 유해할 수 있는 성분, 이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교육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꼼꼼한 클렌징’이라도 강조해야 한다. 소비자는 지속력, 착색력이 좋은 제품만 소비하면 입술 건강엔 해로울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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