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5

2016.11.30

정치

숨죽인 보수, 짐 싼 보수, 갈 곳 없는 무당층

새누리당 적극지지자 절반가량 수면 아래로…국민 분노의 종착점은 ‘정의’

  •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mojj03@naver.com

    입력2016-11-29 1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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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두 달여 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평가는 33%에서 5%로 28%p 폭락했고, 여당인 새누리당 지지율 역시 34%에서 15%로 19%p 하락했다. 누가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잃었을까. 현재 가치로만 보면 대통령이겠지만, 미래 가치까지 포함한다면 새누리당이 더 뼈아플 것이다.

    같은 기간 ‘지지정당이 없거나 입장을 밝히지 않은’ 무당층은 26%에서 32%로 6%p 증가했는데 주로 서울(15%↑)과 대구·경북(28%↑) 거주자, 60세 이상(19%↑), 무직·은퇴·기타(12%↑), 생활형편이 어려운 층(12%↑)이었다. 무당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7%, 국민의당이 3%, 정의당이 2% 증가한 것으로 봐서 이들은 지지율이 하락한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계층일 개연성이 높다. 새누리당을 이탈해 무당층이 된 사람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향후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될까. 더 나아가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 5%의 정치사회적 함의는 무엇일까.



    현재 모든 정치사회 여론은 ‘정의(justice)’라는 바구니에 담기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정평가는 한국갤럽(11월 15~17일)이 90%이고, 한국갤럽과 조사 방식이 다른 리얼미터의 여론조사(11월 14~16일)에서도 86%로 나타났다(그래프1 참조). 이러한 여론은 단기적 추세에서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로 작동한다. 반면, 민심은 장기적 추세에서 사회적 공의와 보편적 윤리에 의해 작동된다. 하루하루 날씨가 여론이라면, 날씨의 장기적 패턴을 보이는 기후는 민심과 비슷하다.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은 ‘최순실 게이트’가 어느 정도 공익을 침해하고 있는지 일반 국민에게 물었다(여론조사 전문기관 휴먼리서치 조사, 11월 2~3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휴대전화 조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표기준 준수). 그 결과 93%가 ‘공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그래프2 참조). 대통령 국정운영 부정평가 수치를 조금 상회하고 있다. 민심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특별한 계기와 사건이 발생하면 표면으로 드러난다. 지금 여론은 민심과 맞닿아 있다. 민심과 맞닿아 형성된 이번 여론은 그 뿌리가 깊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민심과 여론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본다.



    분노의 진원지, 공공의 무능과 부패

    11월 19일 토요일, 지역 행사로 진행된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60만 시민이 모였다. 이전과 다른 이색적인 일정이 추가됐다. 광화문광장에서 소리 높여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퇴진을 거부하는 대통령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와글와글 시민평의회, 이병덕 코리아스픽스 대표)이 2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토론은 크게 3개 주제로 진행됐다.



    첫 번째 주제인 ‘우리는 왜 화가 났는가’에 대해서는 ‘정부의 능력과 도덕성을 견제할 장치가 없기 때문’(52%)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권력자와 측근만 배부른 대한민국’(17%),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없다는 절망’(13%)이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분출됐다. 두 번째 주제는 ‘시민이 제안하는 집회문화’였다. ‘집단이나 조직이 아닌, 다양한 구성원이 주도하는 시민 중심의 집회 만들기’(31%), ‘평화-폭력의 이분법을 넘어선 다양한 집회 방식 포용하기’(18%), ‘다양한 문화적 실험이 공존하는 집회 공간 마련하기’(16%) 등이 언급됐다.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는 ‘시민토론회 등 지속적인 시민모임이 필요하다’(24%)는 의견과 함께 ‘지역과 일상으로 시민촛불과 의사 표현을 확산할 수 있는 방안 모색’(17%), ‘집회를 넘어 시민불복종운동’(17%) 같은 의견도 나왔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넘어 한국 사회의 공동체시스템에 대한 절망과 울분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공공의창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실시했다(휴먼리서치, 11월 2~3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휴대전화 조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표기준 준수). ‘최순실 게이트의 성격’을 물었는데, ‘박근혜 정부의 일회성 문제’(34%)라기보다 ‘누가 집권하든 나타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61%)라는 의견이 2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분노는 여기에서 그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또 ‘우리 사회 불평등과 불공정 심화의 가장 주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었다(여론조사 전문기관 우리리서치, 10월 12~13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유무선 전화조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표기준 준수). 그 결과 ‘건국 이후 역사 정의를 세우지 못하고 부와 권력이 잘못 대물림됐기 때문’(46%)이라는 응답과 ‘돈과 물질 등을 중시하는 세계화로 인해 부와 권력이 한쪽으로 집중됐기 때문’(45%)이라는 응답이 대동소이하게 나타났다(그래프3 참조).



    공공의창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 초입에 정당과 언론, 검찰이 공공의 이익을 지키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각각 조사했다(우리리서치, 11월 2~3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유무선 전화조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표기준 준수). 그 결과 언론(38%), 정당(30%), 검찰(23%) 순으로 공공의 이익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그래프4 참조). 하지만 이는 현 정국에서 언론, 정당, 검찰 모두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고 해석해야 한다.

    검찰은 박 대통령을 엄정하게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최순실 씨 입국 사실조차 일반에게 알리지 않았다. 언론도 모두가 합심해 전방위로 각종 국정농단 의혹을 캐고 있지만,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정부 발표나 청와대 발표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쳤다. 제대로 된 대권후보를 세우려고 정당이 어떤 노력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헌법을 토대로 한 각 국가 구성원의 책임과 소임에 대한 계약은 파기된 듯하다. 지금은 국민 여론과 민심이 대통령 조기 퇴진과 탄핵에 쏠려 있지만,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가는 순간,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자명하다. 



    방황하는 무당층

    앞에서 살펴봤듯이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 6%p 증가했다. 정황상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계층이라고 추론(보수층 새누리당 이탈 60→32%)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시기 단면만 잘라서 보는 여론조사 결과는 보수층을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보수층을 분석하는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다. 변화를 예측할 때 보수층이라는 가장 흔들림이 적은 변수를 중심에 놓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보수층은 두껍다. 1997년 대통령선거(대선) 이후 보수정당을 표방한 새누리당이 얻은 국민 총득표율은 46.3%. 이 가운데 39.7%가 적극지지자고, 6.6%는 소극지지자다(표 참조). 소극지지자란 후보나 정책 또는 일부 정당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표장을 찾지 않는 계층을 말한다.

    민주당이 얻은 국민 총득표율은 39.2%. 이 가운데 23.8%가 적극지지자고, 15.4%가 소극지지자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궐선거에서는 적극지지자가 많은 새누리당이 유리하다. 선거 때마다 민주당이 바람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두 정당의 콘크리트 지지율 차는 16%p에 이른다.

    이러한 분석의 유의미성은 2012년 대선 결과로 검증해볼 수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얻은 총득표율은 51.6%. 이는 15년간 공직선거에서 확인된 새누리당 적극지지자와 소극지지자, 그리고 무당층 내 보수성향층의 총합(52.1%)과 거의 같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 적극지지자와 소극지지자, 무당층 내 진보성향 및 실질적 무당층을 모두 합한 수치인 47.9%에서 0.1%p를 더 얻었다(표 참조).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당시 지역구 대표로는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후보를 찍고, 비례대표로는 국민의당을 찍은 경우가 속출했다. 지역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23%, 새누리당을 지지한 17%가 비례대표에서 국민의당에 표를 던졌다(4월 20일 전국 성인남녀 1160명을 대상으로 임의걸기방식(RDD) 휴대전화 60%, 집전화 40.6% 조사). 국민의당 주요 지지기반은 양 정당의 소극지지자와 무당층 안에 보수진보성향 유권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현 정당 지지율을 보면 어떨까. 정국 상황을 감안하면 새누리당 적극지지자 39.7%의 절반에 가까운 지지층이 수면 아래에 가라앉았다고 볼 수 있다. 보수는 크게 안보보수, 도덕보수, 경제보수로 나눌 수 있다. 지금 새누리당을 지키는 보수는 안보보수일 개연성이 높다. 이들은 고립된 상태고 당분간은 재반등 가능성이 높지 않을 듯하다. 도덕보수는 수면 아래로, 경제보수는 민주당 등 야권으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위기는 기회, 대한민국을 개조하라!

    공공의창은 ‘최순실 게이트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도 물었다(우리리서치, 11월 2~3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유무선 전화조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표기준 준수). 그 결과 ‘대한민국을 개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49%)라는 응답과 ‘대한민국이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위기’(44%)라는 응답이 엇비슷하게 나왔다(그래프5 참조).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지난 후 대한민국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세계화 속에 민주주의’보다 더 큰 담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위 조사 결과가 ‘이제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성공신화에 가린 그림자를 들여다볼 때’라고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같은 조사에서 ‘한국 사회에 가장 위험이 되는 문제가 무엇인가’도 물었다. 그 결과 불평등 47%, 북한 도발 18%, 안전사고 17%, 환경오염 9%, 질병 4% 순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폭발한 민심에 화답할 대안은 무엇일까.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직선제로 선출한 대통령과 국민이 마치 조선시대 왕과 백성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가. 일제강점기의 그림자로 건국된 대한민국이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가 근현대사의 성공을 자신들만의 업적으로 가둬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이유보다 결과 자체에 목매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과거가 문제라고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는 있다. 그러려면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소임에 대한 계약이 아직 유효한지 점검해봐야 한다. 만약 유효하지 않다면, 우리는 새로운 사회계약에 서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의 낡은 산업구조에서 경제성장이 모두를 위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복지가 경제성장과 선순환에 있지 않고 그저 가라앉지 않게 떠받치는 일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수와 진보는 모두 고백해야 할지도 모른다. 협소해진 현 민주정신으로는 더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수도,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도 없다는 것을 진보와 보수는 모두 고백해야 할지도 모른다.

    검찰과 언론, 기업과 정당은 물론이고 낡은 산업구조와 협소해진 민주정신이 근로자와 고용주, 비정규직과 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 호남과 영남, 지방과 도시, 세대 간 갈등 같은 사회경제적 균열을 대부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가 고백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선이라는 타이머는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다. 대선후보는 수많은 정책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현 틀에서 제시되는 정책들은 대책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가짜일 공산이 크다. ‘최순실 게이트’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면 더는 숨기거나 진실을 가려서는 안 된다. 2017년 대선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직구만 던져야 한다. 그리고 야구장에 모인 관중(국민)은 안타를 맞더라도 직구만 던지는 투수를 응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직구가 우리의 과거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인도하는 회심의 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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