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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과 홉스의 상상공장⑥

최악을 상상하기

  • 장석만/ 옥랑문화연구소장

최악을 상상하기

최악을 상상하기
비가 오는데 캘빈이 밖에 나가려고 한다. 진창을 걸으면서 진흙이 몸에 튀어오르는 걸 보는 것도 좋고, 비가 옷에 스며드는 느낌도 색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캘빈은 예절 바르게도 엄마의 허락을 구한다. 혼자도 아니고 홉스와 같이 나가서 놀겠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엄마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엄마는 창가에서 일을 하면서 캘빈에게는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안 된다”고 말한다. 볼멘소리로 이유를 묻는 캘빈에게 엄마는 다시 한번 간단하게 답한다. 밖에 나가면 비에 젖을 테니까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캘빈은 비에 젖는 게 도대체 뭐가 큰 문제냐고 묻는다. 그러자 엄마는 이제야 캘빈에게 시선을 맞추면서 비에 젖은 다음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인과관계에 대해 말해준다. 캘빈이 폐렴에 걸리고, 엄마는 엄청난 병원비에 허리가 휘며, 서로 실컷 고생만 하다가 결국 캘빈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시나리오다. 엄마는 이렇게 최악의 경우를 제시함으로써 캘빈을 집 안에서 못 나가도록 효과적으로 봉쇄한다. 캘빈은 최악을 상상하는 엄마의 전략에 못마땅한 얼굴로 투덜거리지만, 사실 이런 상상은 캘빈 엄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엄마가 자신도 모르게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상당 기간 동안 부모가 전폭적인 보호를 해줘야 생존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자식을 낳아서 키운다는 것은 자신 속에 자식의 삶을 장기간 함께 담아둬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 부모는 자기 자신이 현재 생존하는 것과 더불어 장차 자식이 살아갈 미래의 영역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부모가 자식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앞당겨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부모는 장차 자식이 조금이라도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지닌 ‘미래의 차원’은 인류가 농경시대를 맞이하면서 더욱 강력하게 각인되었다. 씨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는 등의 농사짓기는 앞당겨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식을 통해 미래를 생각하고, 염려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캘빈 엄마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한 것은 바로 이렇게 오랜 진화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닌가?

자식의 생존을 위한 인간 부모의 배려, 그리고 농경적 생활방식의 채택으로 인류의 존속은 좀더 안정적인 기반을 갖게 되었지만, 모든 일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있게 마련이다. 종종 미래에 대한 걱정이 현재의 삶을 압도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을 대비하는 태도는 우리의 삶을 예측 가능의 지평(地平)에 머물게 하는 반면, 앞당겨 하는 걱정이 지나칠 경우 현재의 삶이 마비돼버릴 수도 있다. 언제나 현실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상상의 힘은 현실의 나를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죽일 수도 있다.

인간은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는 위험성을 상상하여 미리 조처를 취하도록 진화함으로써 많은 이로움을 얻었지만, 점점 그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다.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에 전전긍긍한다거나, ‘혹시’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재의 삶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파괴적 상상력에 빠지면, 두려움은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되고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대부분의 종교적 가르침과 위대한 사상이 무엇보다도 ‘현재의 삶에 대한 충분한 음미’를 말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캘빈의 엄마가 자기 파괴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엄마는 진흙 범벅이 된 캘빈 옷을 세탁하기 싫어서 이렇게 둘러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5.06.21 490호 (p55~55)

장석만/ 옥랑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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