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7

2005.05.31

“임기 중 첫아이 낳고 싶어요”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 “e정치 역량 높이기 일조, 당내 디지털 마인드 흐름 기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5-26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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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는 사람까지 ‘그 남자의 매력’이 궁금해진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예비신랑’에 대해 뽐내는 표정이 꼭 ‘사춘기 소녀’ 같다. 첫눈에 반한 건 아닌데, 어느 날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란다. 의원이 되기 전엔 ‘자유롭게’ 인라인스케이트를 함께 즐겼고, 요사이엔 서울 신촌의 야참 가게, 상암동의 극장 등에서 ‘조심스럽게’ 밀회했다. 국회 관계자들에게 데이트 장면을 들킨 적도 있었다.

    “임기 중 첫아이 낳고 싶어요”
    한나라당 김희정(34·부산 연제구) 의원이 5월28일(토요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동산에서 권기석(38) 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결혼해서 애도 낳고 공인으로서 모범을 보이겠다”는 선거 때 공약을 지킨 것이다. 의원이 임기 중 결혼하는 건 헌정사상 남녀를 통틀어 처음이다(재혼 제외). 주례는 김 의원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선배인 김원기 국회의장이 맡는다.

    애당초 ‘결혼 얘기’는 아주 조금만 나누려고 했다. 17대 국회 개원 1년을 맞아 최연소 의원의 관점에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보려는 뜻이었다. 또 인터넷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던 한나라당이 인터넷 랭킹 사이트에서 열린우리당을 제치고 1위에 올라 사이버 공간에서 ‘정권교체’를 이룬 비결도 궁금했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e폴리틱스 전략을 수립, 집행하는 ‘디지털정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인터뷰는 물색없이 ‘프라이버시’ 쪽으로만 흘러갔다. 굳이 묻지 않아도 ‘정치 얘기’는 자연스레 ‘연애담’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의 ‘개혁 아이콘’답게 시원시원했다. 감정을 둘러 표현하는 법이 없다. ‘사랑 얘기’도 마찬가지. 활달하면서도 소탈한 성격은 부대변인을 비롯해 정당인 시절부터 유명했다. 이렇다 보니 소장파 의원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일부 중진들도 그를 칭찬하는 데는 인색치 않다.

    -아이는 몇 명이나 낳을 거예요.



    “힘 닿는 데까지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애국자네요.

    “무작정 낳겠다는 건 아니고, 시간과 경제적 능력 등 주변 환경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낳을 수 있을 만큼 낳겠다는 뜻이에요. 이번 임기 중에 첫아이를 출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임기 중 첫아이 낳고 싶어요”

    김희정 의원과 예비신랑 권기석 씨

    -호감을 가진 기자들도 적지 않았는데, ‘작업’에 들어갔다가 실패한 기자 얘기도 들었습니다.

    “하하하. 몇 명 있었어요. 의원이 되기 전에도 그런 분이 있었고요.”

    -‘얼짱’이라는 별명을 좋아하세요.

    “얼굴이 예쁘지 않은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부담스러워요. ‘얼짱’의 정의를 새롭게 한다면 얼짱이 맞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인의 얼, 그 얼이 살아 있는 짱. 그런 의미에서 얼짱이라면 참 좋겠네요.”

    -‘여의도에선’이란 단서가 붙은 별명인데.

    “하하하.”

    -신랑 될 분을 2003년 007팅(주선자가 나오지 않고 당사자끼리 전화 연락을 통해서 만나는 방법)을 통해서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소개로 처음엔 전화통화를 나눴는데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서 바로 만나지는 못했어요.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어요. 좀더 시간을 가지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랑은 운명처럼 다가오더라고요.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는 얘기 있잖아요.”

    -어떤 점이 좋았습니까.

    “남자친구의 아버님이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어머님은 생계를 위해 독일에 간호사 교육을 받으러 갔고요. 그래서인지 검소하고 또 자상해요.”

    이 대목에서 김 의원은 예비신랑에 대한 자랑을 ‘길게’ 했다. ‘5월의 신부’를 맞이할 권기석 씨는 LG CNS에서 차장으로 일한다. 그는 중학교 때 독일로 가 아헨공대에서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엔지니어. 김 의원이 한나라당 부대변인이던 2003년 말 프러포즈했으나 거절당했다. 지난 총선 때는 주말마다 부산 선거사무실을 들러 허드렛일을 하며 김 의원을 돕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우수 의원으로 뽑힐 정도로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직도 맡고 있어서 제대로 데이트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했어요. 주말에 부산에서 지역구 일정을 치르고 서울에 돌아오면 밤 10시쯤 되요. 그러면 그이가 김포공항으로 마중 나옵니다. 승용차 안에서 밀린 대화를 주로 나눴습니다. 대학 때부터 살았던 신촌의 야참 집에도 들렀고요. 상암동에 있는 극장에도 가끔씩 갔는데 알아본 사람이 있었더라고요.”

    -지금은 동생들과 같이 살고 있지요. 신접살림은 어디에 차릴 겁니까.

    “신촌이오. 제가 살던 집 전세금(김 의원은 국회의원 재산공개에서 아파트 전세금과 예금 3945만원을 합쳐 1억945만원을 신고했다)하고 남자친구 집 전세금을 합해서 마련했습니다. 제가 쓰던 물건과 남자 친구가 쓰던 물건을 그대로 사용하면 되니까 새로 살 건 별로 없습니다. 예물은 주고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신혼여행은요.

    “누리꾼들이 싸이월드에 금강산, 독도 등에 가라는 의견을 많이 올려주었어요. 2박3일 일정으로 보성(전남)하고 광주를 다녀오려고 해요. 보성은 꼭 가고 싶었던 곳인데 아직 못 가봤거든요. 남자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좋다고 했습니다. 지금 숙소를 알아보고 있어요.”

    -의원이 된 지 꼭 1년 만에 결혼하는 셈이네요. 지난해 총선 당시 PK(부산·경남) 지역 개혁 공천의 상징이었습니다. 1년 동안 ‘개혁의 상징’ 몫을 제대로 한 것 같습니까.

    “박형준·이성권 의원과 제가 같은 날 공천자로 결정됐습니다. 우리 셋이 처음으로 공개 경합을 통해 후보가 됐습니다. 언론에선 ‘개혁 공천’이라고 평가했고요. 그런데 당을 어떻게 바꾸었느냐고 물으면 조금 난처합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좋거나 좋게 나올 가능성이 있을 때는 성적표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이 정도 된다고 얘기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성적표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낙제는 면했다고 생각합니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나이’ 때문에 느낀 한계는 없나요.

    “얼굴마담 아니냐, 꽃 아니냐,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일부 있어요. 국회에서 장관과, 당에서 선배들과 토론할 때 지역대표나 상임운영위원 자격으로 얘기하는 거지 새파랗게 나이 어린 젊은 여성으로서 나이 많은 분한테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가끔씩 구분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서글프죠.”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폴리틱스는 열린우리당과 비교해 취약한 부분인데.

    “제 자랑 해도 되나요? 한나라당이 처음으로 1등을 했어요. ‘피앙’이라는 인터넷 랭킹 사이트에서 지난달 25일 1위로 올라섰습니다. 뉴스 사이트에서 ‘사이버’나 ‘인터넷’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족사진 뽐내기 한마당’ 등 한나라당의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더 많이 뜹니다. 인터넷을 무시한 건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패한 주된 이유예요. 당시에 사이버는 곁가지였습니다. 또 좌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고요.”

    주지하듯, 한나라당의 ‘고루한 감각’은 대선에서 패배하는 데 한몫했다. 김 의원이 이끄는 디지털정당위원회는 지난 대선과 총선 때만 해도 주요 정당 중 가장 인기가 없던 한나라당의 e정치 역량을 크게 높여 놓았다. 젊은층의 지지세가 약했던 한나라당이 ‘감성정치’를 통해 회복에 나선 것. 김 의원은 “다시 2위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변화의 흐름을 탔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라는 ‘공룡’이 깜박이를 켜고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TK(대구·경북) 지역의 ‘어르신’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싸이월드니 블로그니 하는 걸 나이 드신 의원님들이 이해하는 건 어렵죠. 그분들은 아주 단단한 ‘사고의 틀’과 ‘네트워크의 틀’을 가지고 계세요. ‘세상의 흐름이 이렇게 혁명적으로 바뀌었다’라는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인적 네트워크가 이미 견고하게 구축돼 있었고 기득권을 도전받지 않고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탄핵 역풍으로 다른 상황을 처음으로 경험한 겁니다. 요즘엔 ‘나는 잘 모르니까 보좌관한테라도 설명 좀 해달라’고 요청들을 하세요. ‘나도 좀 배워보고 싶다’는 분들도 있고요. 이런 게 변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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