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7

2005.05.31

돌아온 부산 갈매기 “야구 없인 몬 산데이”

롯데 자이언츠 비상 덕분에 프로야구 르네상스 … 선수와 관중 끈끈한 응집력 ‘球都 부산’ 후끈

  •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글·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5-26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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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부산 갈매기  “야구 없인 몬 산데이”
    그날 부산 사직구장은 거대한 용광로였다. 성별,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한몸이 되어 들끓어 올랐다. 마치 해일처럼, 누구도 막지 못할 기세로 ‘부산 갈매기’는 온 야구장을 덮었다. 그것은 거대한 씻김굿이었다. 설움과 분노를 몰아내고 비로소 우뚝 선 ‘부산 야구’에 대한 헌사였다.

    5월17일 ‘사자 밥’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온 롯데는 손민한-노장진의 ‘황금계투’에 힘입어 4대 1로 삼성을 무찔렀다. 짜릿한 승부에 파도타기와 신문지, 라이터 응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선수들은 허슬 플레이로 보답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만년 꼴찌’ 롯데의 비상을 기리는 축제는 한동안 이어졌다.

    야생야사(野生野死),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다.

    ‘부산 갈매기’가 돌아왔다. ‘구도(球都)’ 부산이 야구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시즌 초반 ‘겨우’ 3위를 달릴 뿐인데도 그렇다. 인기와 실력이 이렇듯 어긋난 팀이 또 있을까. 부산 야구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듯싶다.

    돌아온 부산 갈매기 덕에 프로야구 관중도 부쩍 늘었다. 부산의 열기가 ‘야구 르네상스’의 첨병이 된 것이다. 프로야구의 부활은 올 시즌 롯데의 행보에 달려 있다. 야구 전문가들은 롯데가 4위권만 유지해도 르네상스가 열릴 거라고 본다.



    부산은 지금 야구와 열애 중이다. 사직구장에서 13년째 잡화를 팔아온 노동현(41) 씨의 얼굴엔 요사이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보다 매출이 20배로 늘어난 까닭이다. 야구장을 찾는 사람이 1000~2000명에서 2만~3만명으로 늘었으니 장사가 잘되는 건 당연하다.

    야구장 인근 사직동의 경기는 호황을 맞았다. 상가 권리금은 벌써부터 꿈틀댄다. 노래방 업주 지동찬(43) 씨는 “1등도 아니고 3등인데 이 난리인 게 웃기지요. 그게 부산의 야구 사랑이라예”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영난에 빠져 있는 스포츠신문도 이곳에선 불티나게 팔린다. 신문을 팔아 자식 대학 공부를 시킨 김희남(62) 씨는 “신문 장사로 돈 버는 시절은 끝난 줄 알았는데, 야구 덕에 다시 돈을 좀 만진다”며 소리 내 웃었다.

    사직구장의 백미는, 롯데가 점수를 내거나 찬스를 맞이했을 때 볼 수 있는 신문지 응원과 ‘부산 갈매기’ 합창이다. 신문지 응원은 관중석이 시멘트 바닥이던 1980년대, 깔고 앉았던 신문지를 흥에 겨워 흔든 것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MBC-ESPN 한만정 해설위원은 “부산 야구는 응집력이 강하다. 집중력이 있다. 응원의 힘을 받아 선수들은 집중력을 더한다. 관중과 선수가 하나가 되는 것, 그게 바로 부산 야구다”고 풀이했다.

    야구가 좋아 야구장에 가게를 연 박준욱(35) 씨는 84년 롯데의 첫 우승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공포의 1할 타자’로 불리던 유두열이 한국시리즈에서 터뜨린 짜릿한 3점 홈런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부산 사람들의 야구 사랑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부산 출신인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롯데의 92년 우승을 잊을 수 없다”면서 “일을 마치고 부리나케 야구장으로 달려가 신문지 찢어 흔들면서 ‘부산 갈매기’를 부르곤 했다”고 회고했다.

    롯데가 우승한 건 딱 두 번이다. 정규리그에선 한 번도 1위를 못했지만, 84년과 92년 한국시리즈에서 극적인 승부 끝에 우승컵을 안았다. 한 경기의 승부에 연연치 않고 팬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게 된 배경이다.

    롯데 팬클럽의 ‘연락책’인 김정환(46) 씨는 롯데가 ‘뻥 야구(홈런으로 승부를 내는 야구)’를 하지 않았다는 데서 인기의 비결을 찾는다. 롯데의 경기는 늘 감칠맛이 난다는 것. 소총수 위주의 롯데 야구는 전통적으로 박빙의 승부가 많아 흥미를 북돋았다.

    부산일보 야구담당 유명준 차장은 “부산은 역사적으로 야구 열기가 가장 높은 도시였다. 일정 성적만 거둬도 난리가 날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평했다. 부산이 지리적 특성상 일찍부터 일본 야구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

    부산엔 부산고 경남고 부산상고 등 야구 명문도 즐비하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보면서 자란 이들이 많다. 양상문 감독은 “부산은 어떤 도시보다도 고교 야구 명문팀이 많다”면서 “부산에선 한 다리만 걸치면 야구와 관련된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닷가 특유의 끈끈한 정서도 한몫했다. 사직구장의 응원은 거칠다. 경기가 안 풀리면 ‘치아라(그만둬라)’는 말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경기에 졌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다. 큰 점수 차로 뒤진 경기에서 터져나온 안타 하나, 홈런 하나에도 ‘부산 갈매기’를 목 놓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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