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6

2005.05.24

난, 혼자 살라고 권한 적 없다

  • 입력2005-05-20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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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혼자 살라고 권한 적 없다
    지인들끼리 진행하는 출판 프로젝트의 하나로 싱글 생활의 지침을 함께 짚어가는 자리, 나는 갑자기 멍해진다. ‘둘보다 만족스러운 하나를 선택’한 처지에서 싱글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과연 내 상황이 그렇게 주체적이고 의지적인 태도의 결과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행복한 싱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러한 생활을 언제까지 꾸려가게 될지도 가늠할 수 없다. 혼자 살라는 조언을 해야 하나? 난 그렇게 권한 기억이 없다. 오히려 독립을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고충을 장황하게 토로하는 편이다.

    최근 들어 부쩍 혼자 사는 게 힘겨울 때가 많다. 남자들이 ‘집밥’을 먹고 싶어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이 있다는 게 꽤 설득력 있게 들리는 시점이 되었다. 밖에서 사먹는 부실한 식당 밥 대신 식구 누군가가 나를 위해 깔끔하게 차려놓은 식탁에 앉아 식사하고 싶다. 온갖 요리 재료를 손질해가며 솜씨 자랑을 하던 의욕은 독립 초기에나 재미 삼아 하는 일이지, 일상에 치이다 보면 내 한 몸 건사하겠다고 음식 만들어 먹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흔한 표현대로 ‘밥통을 폐쇄’하고 가장 경제적으로 요기를 달랠 방법을 궁리하게 되는 것이다. 쌀통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집 안에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라도 굴러다니면 다행인 형편이다.

    편하게 지내려다 보니 제대로 치우며 살지도 못한다. 불규칙한 식사와 지저분한 생활공간. 나처럼 튼튼한 처자도 몸에 이상을 느끼기 쉬운, 건강하지 못한 환경이(!) 일반적인 싱글 생활이다.

    사회는 마녀사냥 하듯 우리(독신자?)에게 책임 떠넘겨

    나는 한숨을 쉰다. 어쩌랴. 활동 권역의 문제로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기 어려운 데다 좋은 남자 만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싱글 여성들의 성생활에 대해 관음적인 호기심이 많기도 하지만 나이 들어 안정되게 만날 수 있는 남자가 어디 흔한가. 매력과 담 쌓은 남자들이나 바람난 유부남들만 한눈 가득 들어오는 것이 싱글 여성들의 연애 현장이다.



    나 같은 싱글들을 둘러보면 요행히 남자가 있는 경우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대개 남자가 없다는 결핍으로 불안해한다. 결혼보다 일을 중시하는 여성들을 ‘콘트라 섹슈얼’이라 부르며 패션화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던데, 사실 우리 여성들에겐 결혼의 안정성이야말로 패션지 화보로나 구경할 수 있는 팬태스틱한 대상이다. 콘트라 섹슈얼은 여성이 자연스럽게 현실에 적응해나간 하나의 양상일 뿐인 것을.

    이상의 푸념은 지겹도록 들어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우리가 공공의 적으로 비난받는 존재라는 사실도 싱글 생활을 고려하는 여성들에게 분명히 일러줘야 할 일이다. 결혼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독신신세가 좋은 예 아닌가. 싱글 여성은 사회적 책임감 대신 일신의 쾌락을 택한 방종한 종자라는 편견이 슬슬 질서화되어 간다는 신호다. 왜 싱글 여성들이 결혼 제도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나. 우리도 저출산 고연령 사회는 두렵다. 좋은 사람 만나 예쁜 아이 낳고 잘 살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리 되지 않으니 혼자 살고 있는 걸 어쩌라고.

    독신 여성의 증가가 사회적 문제라면, 개인이 아닌 사회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술 권하는 사회에선 술을 마시고, 독신을 권하는 사회에선 독신으로 살게 마련이다. 혼자 살라고 권하는 건 싱글의 입방정이 아니라 여성이 일과 가정 모두를 아우르기 어려운 2005년의 대한민국이다. 평생 혼자 살라는 소리는 먼지가 쌓인 집 안에서 과자로 끼니를 때우는 우리에게도 악담이다. 그런데 사회는 우리를 마녀사냥 하며, 우리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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