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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人기행ㅣ학포 양팽손

차를 닮은 성품 … 향기로운 선비

기묘사화 뒤 고향 능주로 낙향 … 벼슬 마다하고 문장·서화·차로 여생 보내

  • 정찬주/ 소설가

차를 닮은 성품 … 향기로운 선비

차를 닮은 성품 … 향기로운 선비

양팽손이 글을 읽으며 여생을 보낸 학포당

학포당(學圃堂)은 기묘명현(己卯名賢·조선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사류) 중 한 사람인 양팽손의 독서당이고, 쌍봉사는 천년 고찰이다. 나그네가 학포당과 지척에 있는 쌍봉사를 하나로 묶어 얘기하는 까닭은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차(茶)가 바로 그것이다. 쌍봉사 일대의 양지바른 산에는 야생차가 제법 넓은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예부터 이 지방 선비나 승려들이 차 살림을 했다는 증거다.

쌍봉사는 신라 구산선문의 사자산파 개산조 도윤이 입적한 곳이다. 도윤은 당나라 유학승으로 ‘평상심이 도(道)’라고 외친 중국의 남전선사 회상(會上)에서 차의 부처로 불리는 조주와 법 형제가 되어 공부했던 스님이다. 따라서 도윤의 차 살림은 그때부터 시작됐을 터이고, 그가 들여온 차씨로 인해 오늘날 쌍봉사 일대의 야생 차밭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학포 양팽손은 성종 19년(1488)에 능주에서 태어나 중종 5년 20세에 조광조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고 29세 때 문과에 급제한다. 현량과에 발탁되어 공조 좌랑, 형조 좌랑, 사관원 정원, 이조 정랑 등을 역임하다 홍문관 교리에 재직하던 중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 김정 등을 위해 분연히 소두(疏頭·연명하여 올린 상소문에서 맨 처음 이름을 적은 사람)한 뒤 삭직된다. 이후 양팽손은 고향인 능주로 낙향하여 쌍봉마을에 독서당을 짓고 여생을 보낸다. 능주에 유배 온 조광조와 매일 만나 경론을 논하다가 그가 사약을 받고 죽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신을 손수 염해 쌍봉사 부근의 깊은 산골에 가매장해준다. 이후 기묘명현들이 복관되면서 그도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매번 사양하다가 1544년 용담현령에 잠시 나아갔다 병환으로 곧 사임하고 다음해 58세로 눈을 감는다.

조광조도 생전에 학포 인격에 대해 극찬

이와 같은 그의 일생을 볼 때 조광조가 살아 생전에 그를 일컬어 “더불어 이야기하면 마치 지초(芝草·영지)나 난초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고, 기상은 비 개인 뒤의 가을 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막 걷힌 뒤의 밝은 달과 같아 인욕(人慾)을 초월한 사람”이라고 평했던 것이 결코 과장의 덕담만은 아닌 듯하다.



한편 학포는 문장과 서화로도 크게 명성을 얻은 선비다. 안견의 산수화풍을 이었다고 평가받는 학포는 후기의 윤두서, 말기 허련과 함께 호남의 3대 문인화가로 불리며 호남 화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산수도’를 비롯해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사군자’ 같은 그림에도 능했는데, 나그네가 주목하는 그림은 현재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연지도(蓮芝圖)’다. 학포의 후손이 1916년 추사의 본가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며, 다기(多器)와 함께 연꽃, 영지가 그려진 두 폭으로 그가 차 살림을 했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선비의 사랑방이나 독서당에 걸어놓는 책가도(冊架圖·18~19세기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정물화로 책, 벼루, 먹 따위의 문방구류를 기본으로 꽃병, 주전자 등을 배합해 그렸다) 계열의 그림에는 다기가 그려진 작품이 흔치 않아 학포당에서 여생을 보낸 그가 차를 마시는 쌍봉사 선객들과 자연스럽게 교유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조광조의 시신을 가매장한 터가 능주에서 수십 리 떨어진 쌍봉사와 가깝다는 점도 당시 수행자들하고의 교분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차의 성품(茶性)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맑고 향기로운 것이다. 조광조가 학포를 가리켜 “맑고 향기로운 사람”이라고 평한 것을 보면 학포야말로 차 향기를 닮은 선비였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진정한 다인이란 차를 잘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차의 성품을 닮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 가는 길

전남 화순에서 장흥과 보성 가는 길로 바로 가다 보면 이양면소재지가 나오고 다시 보성 방향으로 5분 정도 가면 쌍봉마을 어귀에 학포당 표지판이 나온다.




주간동아 2005.03.15 476호 (p54~54)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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