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8

2016.10.12

경제

도심 난개발 주범 된 도시형생활주택

서민 주거 안정은 뒷전 소방도로 확보 안 돼 위험천만, 공급 과잉으로 수익률 하락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0-10 14: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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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새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오피스텔, 다가구주택 등 소규모 공동주택도 급격히 늘었다. 그중 도시형생활주택은 신축 규제가 까다롭지 않아 부동산 임대업을 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처음 도입된 도시형생활주택은 서민과 1~2인 가구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심 가까운 곳에 신속하고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건설 기준을 완화한 주택 형태를 말한다. 하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도시형생활주택의 폐단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기존 주택건설 기준과 부대시설 등의 설치 기준을 적용받지 않다 보니, 거주민의 편의는 외면한 채 수익성만 노린 건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로 ‘닭장주택’ 오명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도시형생활주택은 성인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 안쪽에 7층 높이로 지어졌다. 오래된 단독주택 사이에 삐죽 올라와 있는 이 건물은 얼핏 보면 오피스텔 같지만 주차장 시설이 없고, 건물 간 간격이 1m에 불과해 조경권 확보가 불가능하다. 내부로 들어가면 한 층에 총 4개의 원룸이 ㄷ자 형태로 배치돼 있다. 한 집에서 켜놓은 TV 소리가 엘리베이터 바로 앞까지 들릴 만큼 방음시설이 형편없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직장인 최씨는 “직장이 가까워 이곳으로 왔지만 햇볕이 들지 않고 지난여름 같은 무더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해 정말 불편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 주택가에도 10층 높이의 도시형생활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지역은 다가구주택이 많은 역세권 이면도로를 중심으로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도시형생활주택 6500여 채가 새로 생겼다. 가구 수가 크게 늘었지만 놀이터나 화단은 물론, 관리실과 소방도로도 확보하지 않아 기존 주민들이 계속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박모 씨는 “갑자기 도시형생활주택이 생기면서 낮에도 골목이 어두컴컴하고 밤이면 근처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도시형생활주택은 전국적으로 총 35만2000가구에 달한다. 시도별로 서울 12만1030가구, 경기 20만5871가구, 부산 3만95가구 순이다. 하지만 이 건물들이 확보한 주차장이 부족해 실거주자는 물론, 인근 주민까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9월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각 광역자치단체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전국 도시형생활주택의 주차장 수는 가구당 0.59면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아파트 등 일반 공동주택(가구당 1면)은 물론이고, 현행법상 주차장 설치 기준(0.6면, 전용면적 30~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형생활주택이 몰려 있는 서울의 경우 가구당 주차장 수가 0.54면에 불과하다. 그 밖에도 조경권, 방음, 동간 간격 등에서 거주자 편의와는 거리가 멀어 일명 ‘닭장주택’으로 불린다.



    서울 중구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그나마 이곳 도시형생활주택은 양호한 편이다. 옆집끼리 동시에 문을 열면 서로 부딪칠 만큼 한 층에 원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도 있다. 임대업자들이 방 개수를 늘리는 데만 치중할 뿐 거주자의 편의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시형생활주택이 도심 난개발 주범으로 몰리는 까닭은 양적 공급 확대에만 치중해온 정부의 주택정책 탓이 크다. 공급을 늘리려고 규제 완화에만 신경 쓴 나머지 부작용에는 소홀했던 것. 그리고 사고가 나자 땜질식으로 그때그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처음 도시형생활주택을 도입할 당시에는 주차장 설치뿐 아니라 진입도로 폭의 기준이 일반 주택의 3분의 2 수준으로 책정됐고, 관리실 설치 의무도 면제됐다. 그러다 지난해 1월 경기 의정부시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사건으로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부랴부랴 도로와 관리실 기준을 일반 공동주택 수준으로 높였다. 올해 6월에는 국토교통부가 도시형생활주택을 지을 때 소방차의 접근성을 고려해 진입도로 폭 규정을 과거 4m에서 6m로 변경했고, 공장이나 위험물 저장·처리시설 등과 50m 이상 떨어진 곳에 신축하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또한 50가구 이상인 도시형생활주택은 의무적으로 관리실을 두도록 했다.

    하지만 기존 건물은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서울시 공동주택과 관계자는 “규제를 강화하긴 했지만 기존 주택은 부대시설 확충 같은 새로운 의무 규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미 포화 상태, 오피스텔에 경쟁력 밀려

    한때 은퇴자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꼽히던 도시형생활주택 임대사업에 대한 기대도 한풀 꺾였다. 전국적으로 소형주택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미 지방에서는 세입자를 기다리는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

    도시형생활주택 거래는 오피스텔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온라인 주택거래 정보 사이트 부동산114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오피스텔 입주 물량은 연평균 3만9000실로 직전 4년 평균(1만894실)에 비해 4배 가까이 폭증했다. 올해 9월부터 연말까지 전국 오피스텔 입주 물량만 1만9694실로 올해 전체 입주 물량(4만1149실)의 48%에 달한다. 도시형생활주택도 포화 상태라는 게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소재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의 가장 큰 차이는 취득세 비율이다. 오피스텔은 4.5%이지만 도시형생활주택은 1.1%에 불과해 건축허가 신청 시 오피스텔이 아닌 도시형생활주택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영등포구도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공급이 늘어나면서 임대료도 떨어지고 있다. 지난 5년간 전국 오피스텔 임대 수익률을 비교하면 2012년 5.87%, 2013년 5.82%, 2014년 5.71%, 2015년 5.58%, 2016년(7월 기준) 5.5%로 점점 낮아지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주거 여건이 더 안 좋은 도시형생활주택 수요가 빠른 속도로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주택 종류별로 수요층이 나뉘긴 하지만 시장 원리에 맞춰 공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물건이 넘쳐나면 소비자는 싸고 좋은 물건을 찾기 마련이다. 도시형생활주택이 건축 비용이나 관리 면에서 용이한 점은 있지만 향후 공급이 밀려올 때에 대비해 상품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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