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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권력 증명 욕구 “건축물 꿇어!”

현판·기념비·건축물 통해 대통령 권위 확인 … ‘문화’ 이미지 집착으로 공공건물 논쟁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권력 증명 욕구 “건축물 꿇어!”

권력 증명 욕구 “건축물 꿇어!”

청와대를 축으로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의 열주형 정면들이 ‘사열형’ 거리를 이룬다.

점잖게 말하면 권력의 흔적이지만 밑바닥 심리는 남자들이 여기저기 처첩을 두고 자식 많이 보려는 것과 똑같은 거지요.”

한 건축가는 왕이나 대통령 등 권력자가 세운 건축물을 이렇게 평한다. 현판에 자신의 ‘휘호’를 달아 붙이거나, 바위에 이름을 새겨넣으려는 심리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냉소가 과하다 싶지만 우리나라 공공 건축물과 이를 예외 없이 장식한 현판과 기념석에 대한 비평의 일단임은 틀림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경복궁 ‘광화문’ 현판 교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한글전용론자들과 한자병행론자들의 대립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이어 ‘정조’ 논쟁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현충사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발언으로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커졌다.

이미 유 청장의 ‘중앙박물관장 파동’ 때 팬들과 ‘안티’ 팬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런 탓인지 그와 오랜 친분이 있는 작가 임옥상 같은 이는 “현판 교체를 정치적으로 보는 이들이야말로 음모꾼”이라고 말한다. 반면 반대편에서 유 청장을 오래 지켜본 이들은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기에 정치적 행동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반응으로 갈라섰다.



비록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유 청장의 현충사 발언은 공공 건축물이 역사적 상징물로서 다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근슬쩍 공공 건축물에 붙어 있거나 새겨져 있던 대통령 휘호들이 일제히 ‘신고’되어 드러난 이유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권력 증명 욕구 “건축물 꿇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형 건축물을 통해 문화적인 이미지를 쌓고 싶어했다. 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기획한 예술의 전당과 중간 ‘준공식’의 기념석, 최종 준공식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남긴 기념석(왼쪽부터).

권력쟁탈 이후 공사 추진 열 올려

결국 광화문 현판 교체 시비는 공공의 유산인 문화재에 대통령이 서예 취미로 마구 현판을 써 붙여도 되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우리 역사에서 복원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권력자의 취향으로 지어진 공공건물은 어떻게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거대한 건축물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생생하게 확인하고 싶어했다. 중세의 권력이었던 로마 교회가 지은 세계 최대의 성 베드로 성당이 그렇고, 나폴레옹의 파리가 그렇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독재가 만들어낸 건축물들은 근대 건축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경복궁을 창건한 태조와 재건한 흥선대원군도 쟁취한 권력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에 막대한 노동력과 건축비를 쏟아부어 공사를 감행했을 것이다.

군주제에서 무리한 건축이 민란과 혁명을 일으켰듯이, 국민주권 시대에 세금으로 공공건물을 지으면서 권력자 개인의 야망을 실현하려 하면 저항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 제3공화국 이후 대통령들은 권력쟁탈전의 전리품으로 열심히 공공건물을 지었다. 역설적으로 군인 대통령들은 거대한 문화 공간을 짓는 데 열심이었다. 그것이 공공성과 미학적 고민 없이 지어진 ‘프로파간다’로서의 건축물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건물을 무시하고 세운 거대한 기념석과 그 위에 변형 명조체로 새겨진 ‘휘호’들이다.

국민대 건축대학 박길룡 교수는 “모든 대통령들은 문화적 이미지를 갖고 싶어한다. 그 욕구가 현판이나 기념비, 건축물로 나타난다. 돌이나 청동에 ‘새김’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만고불멸하기를 원하는 제스처”라고 말한다.

가장 전형적인 대통령의 건축물은 여의도 국회의사당(1969~75)일 것이다. 국회의사당은 권위주의 시대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압도적인 공간감과 접근의 어려움, 열주(기둥) 배열, 대칭성 등으로 장중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신전이나 왕궁에서 빌려온 고전적 건축양식은 신성을 통해 그 앞에 선 개인을 왜소하게 만든다. 어릴 때 “나라가 어려워지면 국회의사당 뚜껑이 갈라지고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 이유도 이런 건축양식 덕분이다.

국회의사당은 전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건물이다. 당대의 이름난 건축가들이 모였지만, 그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위한 평등한 공간을 만드는 대신 서슬 퍼런 ‘클라이언트’의 뜻을 받들기에 바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 시대착오적인 건축물이 내 작품이라고 분명히 나서는 이가 없다.

권력 증명 욕구 “건축물 꿇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판을 쓴 광화문(위)과 이순신 동상.

태권브이 나오는 국회의사당?

박 대통령은 청와대 앞 세종로에서 ‘개발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보고 싶어했다. 1968년에 근대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복원’했고, 정부종합청사 건물과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이순신 동상을 세웠다.

정부종합청사는 조선총독부 건물(당시 중앙청)을 압도할 만한 거대한 규모에 수직 열주를 드러냈고, 세종문화회관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회의 장소였으므로 5000여 의원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뽑는’ 게 설계자가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였다. 관객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공연장과 대로까지는 감정적 여운과 심리적 보완을 위한 동선을 만드는 것이 상식이어서 당시 현상 설계에 이런 안들이 여럿 들어왔지만,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건물에서 사람들이 곧바로 거리를 향해 쏟아져나오는 모습을 원했다.

“통치자는 이순신 동상에서 광화문, 청와대까지 좌우에 건축적 파사드(정면)들을 놓아 마주보는 형태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박길룡 교수)

말하자면 군대의 ‘사열’식 조형을 원한 것이었다. 당시 민족 영웅들의 석고상을 광화문 양쪽에 세워두었다고 하므로 진짜 사열식인 셈이었다. 그러나 석고상은 곧 망가졌고 대신 철이나 동으로 위인 동상들을 많이 만들어 시내 곳곳에 세우게 된다.

남산 백범 광장의 김구 동상도 이때(69년) 세워진 것으로 ‘박정희’란 이름은 누군가에 의해 여전히 훼손된 채로 있다.

민족주의를 고취하느라 문화재 복원사업을 벌인 박 대통령은 콘크리트로 사당이나 정자를 많이 짓고 자신의 글씨로 현판을 걸었다. 현충사 현판, 화석정 현판(경기 파주시), 정조의 사당인 운한각 현판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최근 운한각 현판은 서예가 정도준의 것으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문화 대통령의 이미지를 원했고, 예술의 전당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지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이 ‘전당’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건 집권 중후반기로, 서둘러 설계에 들어갔는데도 퇴임 때까지 음악당과 서예관밖에 완공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중간’ 준공식을 갖고 전 전대통령은 ‘문화 예술의 창달’이라는 기념석을 새겼다. 전 전 대통령은 돌에 휘호 새기기를 무척 좋아했는지 국립중앙도서관도 완공 전에 먼저 기념비부터 새겨두고 퇴임한다.

권력 증명 욕구 “건축물 꿇어!”

6·25전쟁으로 폭격을 맞기 전 광화문의 모습.

전 전 대통령 퇴임 후 미술관과 오페라 하우스의 완공(93년)을 본 노태우 대통령도 돌에 이름 새기기가 워낙 중요했는지 전 전 대통령의 돌과 좀 거리를 두고 ‘예술창조의 샘터, 문화국가의 터전’이란 휘호를 돌에 새겨둔다.

전 전 대통령이 동물원과 함께 과천에 지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89년 정부소장미술품 특별전이 열려 역대 대통령들의 휘호들이 전시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여전히 접근이 쉽지 않다는 비판을 받으며 다시 국군기무사령부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라는 이름과 달리 문화 공간을 많이 짓지 않은 편이다. 이 점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김 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화려하게’ 가루로 만들어 문민정부의 체면을 살리기로 한다. 그래서 경복궁도 복원하고 새 국립중앙박물관도 짓기로 한 것이다. 상식적이라면 새 박물관을 짓고, 소장품을 옮기고, 건물을 철거하는 순서였겠지만, 임기 내 건물을 부수기 위해 손상되기 쉬운 소장품들은 몇 차례나 이사를 다녀야 했다. 이런 이유로 새로건축을 하면서도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경복궁의 ‘복원’ 프로젝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이에 비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프로파간다로서 건축물을 거의 남기지 않은 셈이다. 당시 문화부처 장관들도 정치에 신경 쓰느라 건축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하는데, 김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아쉬워한 것 중의 하나도 바로 이 점이었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건축 프로젝트는 아마도 행정수도 이전이었겠지만, 법적으로 무산된 이상 가장 큰 건축물은 ‘아시아문화도시’인 광주에 들어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청 부지에 수천억원을 들여 518m짜리 타워를 짓는다든가, 민주주의 대신 ‘전당’ 컨셉트를 실현하려는 계획이 ‘5·18상업주의’로 비판을 받고 있다.

“역사 복원 논의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최근 외국을 많이 방문하면서 도시 모습에 큰 인상을 받은 노 대통령이 우리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통령 주변에 건축적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추진할 만한 인적 자원이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결국 권력이 만든 공공 건축물이나 그 위에 붙은 권력자의 휘호는 콘크리트 덩어리나 나무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분명한 프로파간다이다. 따라서 공공 건축물이나 휘호를 평가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을 요구한다. 박 전 대통령보다 더 가까운 과거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관련한 건축물이나 휘호에 대해 비교적 일관된 비평이 가능한 반면, 박 전 대통령의 현판 한 개가 이처럼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까닭은 그의 이데올로기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한 전 대통령이 집권기에 ‘하사’한 기념석을 가진 한 공기업은 사옥을 옮기면서 이를 구석에 몰아넣었다. 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소를 보내고 건물 관계자조차 “무겁기만 해서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을 보며 어떤 이들은 추모의 염을 품고, 어떤 이들은 공공의 거리에 자기 글씨를 내건 독재자의 집요함에 몸을 떤다. 이때 현판은 이중적 의미를 갖게 된다.

공공 건축물은 프로파간다지만, 공공건물의 특성상 이를 사용하는 이들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다. 건축평론가 전진삼씨는 “전쟁의 산물인 여의도광장이 젊은이들의 공간, 시민의 휴식처로 의미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보면 부정적인 공간도 긍정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공공 건축물이 개인의 휘호를 남기기 위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임을 인식한다면, 후대를 내다보는 공공 건축물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여기저기에 자신의 휘호를 돌덩어리에 박아넣는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프랑스의 미테랑 도서관이나 퐁피두 센터처럼 건물에 권력자의 이름을 붙인다고 사방에서 공격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건축가 황두진씨는 “개인적으론 불타기 전의 광화문 사진을 거국적으로 찾아보고 이를 재현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조바심 내지 말고 이 문제로 5년 동안 논쟁할 각오를 해보자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조선 역사의 복원이 왜 필요한가, 근대사는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으로 보이는가? 그러나 우리 건축사의 비극은 권력자들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믿는 방식으로 반(反)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건축물들을 마구 지어놓은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주간동아 2005.02.22 473호 (p68~70)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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