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3

2005.02.22

저출산·고령화 … 일본도 ‘발등의 불’

2006년 이후엔 인구 절대 감소 ‘예측’ … 노동력 부족·연금 파탄 등 파생 문제 산더미

  •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입력2005-02-17 14: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저씨도 혼자 살아요?”

    며칠 전 퇴근길의 일이다. 엘리베이터에 타 6층을 누르는데 먼저 타고 있던 여섯 살쯤 돼 보이는 일본 남자 어린이가 필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뉴욕 양키스팀 모자를 눌러쓴 녀석은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힌 채 당돌한 모습이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의 어머니는 제지할 틈도 없이 던진 아이의 질문에 당황해하며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했다.

    “아니야, 아저씨는 식구가 네 명이야. 모두 같이 지내지.”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면서 아이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꼬마는 손을 들어 답을 하고 있었으나 예상이 빗나가서인지 그의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젊은층 결혼·출산 기피 현상 ‘뚜렷’

    도쿄 신주쿠 도심의 13층 아파트. 50여 가구가 입주한 이곳에 사는 외국인이라고는 필자 가족뿐이다. 일본 여자와 결혼한 브라질 사람이 한 명 살았는데 작년에 이사를 가버린 뒤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피부색이 같은지라 이 꼬마는 필자를 일본인으로 여긴 것 같다. 왜 느닷없이 혼자 사는지 물었을까.



    옷차림이나 머리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 데다 요새는 수염까지 기르다 보니 아이가 보기에도 한심한 모습이어서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말 속에 ‘아저씨도’라는 대목을 보면 일본의 독신자 증가 풍조가 꼬마의 머리에 깊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식을 두지 않고 개 한 마리만 애지중지 키우며 사는 옆집 50대 부부를 보아도 그렇다. 개를 데리고 산책할 때도 이 부부는 행인을 보지 않고 오직 개만 보고 걷는다. 바로 옆집이라 이따금 마주치는데 인사도 시늉으로만 한다. 만나면 인사 잘하는 일본인. 하지만 도심의 아파트 풍경은 사뭇 다르다. 7년 전 도쿄 도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마 구에서 살 때하고도 확 달라진 느낌이다.

    베란다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며 내려다보는 사거리. 새벽 한 시를 넘긴 시각에도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99엔 숍’은 삼각김밥 등 먹을 것을 찾는 이들로 붐빈다. 길 건너 24시간 스낵집 ‘치리멘테이’도 각기 따로 앉아 우동이나 라면을 먹는 20, 30대 덕분에 새벽 4시까지 영업하고 있다.

    35년째 작은 카페를 경영하는 나고야 출신 60대 남자 주인은 “요즘 사람들은 결혼 안 하고, 결혼해도 귀찮다고 애 안 낳고, 그저 돈 모아 해외여행이나 다니는데, 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하며 일본 사회의 장래를 걱정한다. 결혼은 하기 싫은데 아이는 키우고 싶어 남자를 사귄 다음 ‘엑기스’만 뽑아 성공리에 아이를 낳아 혼자 사는 여성은 ‘차라리 애국자’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초고령화 사회, 저출산과 미혼에 따른 인구 감소 시대를 맞이한 일본의 고민은 이처럼 생활 주변에서조차 느껴진다.

    일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4년에 태어난 아이는 110만7000명. 전년도보다 1만7000명이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2001년부터 4년 연속 최저 출산 기록이 깨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이은 ‘제2차 베이비 붐’ 시기인 1973년 한 해에 약 209만명이 출생했던 것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준 셈이다.

    지난 한 해 사망자 수는 102만4000명. 출생자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자연증가자 수는 역대 최소인 8만3000명이었다. 한 해에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많은, 절대 인구감소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런 인구 동향은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2002년 내놓은 예상보다 더 빨리 저출산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전문가들은 외국인(재일 한국인 등)을 포함한 일본 전체 인구가 2006년 1억2274만명으로 정점에 오른 다음 절대 감소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03년 1.29명이던 출산율이 2004년에는 더 떨어진 것으로 추산됐다. 이런 저출산 경향이 이어질 경우 2050년에는 8800만명으로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리고 2100년에는 현재 인구의 3분의 1 수준인 4645만명으로 줄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온다.

    절대 인구 감소는 노동력 감소로 이어진다. 현재 8500만명인 일본의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50년 5500만명으로 줄어 일본은 세계 중위권 국가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현재도 젊은이들의 취업 기피(기생족, 니트족)로 노동력 부족이 심한 실정이다.

    각종 출산 지원제 … 인구 늘리기 ‘안간힘’

    저출산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도 큰 문제다. 현재 생산연령인구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셈인데 2050년에는 3명이 2명을 부양하게 된다. 생산연령인구의 부담이 현재보다 2.6배로 커지는데 이렇게 되면 사회보장제도, 연금제도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

    1974년에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의한 식량과 에너지 자원 부족, 이에 따른 지구의 멸망을 경고했던 로마클럽 보고서가 나왔다. 그 후 30년이 지난 일본 사회를 보면 그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인구 폭발에 의한 사회 파탄이 아니라 인구 감소에 의한 위기론이 등장한 것이다.

    요즘 일본 정부는 직장 여성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보육소를 증설하고, 남편에게도 출산휴가를 주며, 출산 장려금도 지급하는 등 각종 출산 지원제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심지어 결혼을 촉진하기 위해 중매 사업에까지 행정이 개입하는 곳도 있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

    생각해보면 인구 감소 사회에 대한 우려에는 큰 함정이 있다. 세계 전체 인구는 여전히 폭발적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을 논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60억명으로 추산되는 세계 인구는 인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국가 등지의 높은 출산율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 2050년에는 89억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자기 나라, 자기 민족,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만 자기 식구로 여기고 국경의 울타리를 높이 세운 채 선진 각국이 출산장려책을 시행하는 것은 참으로 우둔한 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 차원의 인구 문제는 아직도 증가 억제가 우선 과제다. 선진국은 절대 인구 감소의 위기만 강조할 게 아니라 인구의 세계적 불균형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허울 좋은 출산장려책에만 돈을 쏟아붓지 말고 국가 유지의 핵심요소인 외국인 노동자를 제대로 대우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다자간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와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인적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 관점의 인구대책이란 측면에서도 기대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