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3

2005.02.22

민정수석실 K국장 진급 개입 의혹

육군 진급 심사 후 국방부 장관과 면담 … 민감한 시기 석연찮은 행보 ‘논란 가열’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5-02-17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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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정수석실 K국장 진급 개입 의혹

    국방부 장관실이 있는 신청사.

    2004년 11월22일 밤 국방부 검찰단(이하 군검찰)이 ‘사상 초유’로 육군본부를 압수수색하면서 시작한 육군의 장성 진급 심사에 대한 수사는 준장 1명, 대령 1명, 중령 2명을 ‘위계(僞計)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군검찰은 이들에 대한 재판에서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을 증인으로 신청해 또 한번 파문을 일으켰으나, 남 총장을 피고인으로 군사법정에 세우는 데는 실패했다.

    군검찰과 육군이 정면으로 충돌했던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아직까지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대목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과 군검찰의 관계. 이와 관련해 ‘주간동아’는 육군의 대령→준장 진급 심사가 있은 후 대통령민정수석실 J 비서관이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직후 같은 수석실 K 국장이 윤 장관을 직접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K 국장이 윤 장관에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육군 진급 심사가 진행되는 민감한 시기에 대통령민정수석실 사람이 윤 장관과 전화통화와 직접 면담을 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물론 K 국장이 국방부 장관을 만나는 것 자체는 문제 될 게 없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업무 특성상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 직후 김승열 국방부 차관보가 헬기를 타고 대전 계룡대로 내려가 남 육군참모총장을 만났으며, 김 차관보가 계룡대에 체류하고 있을 때 육군은 심사선발위원회(이하 선발위)를 다시 열어 닷새 전에 선발위가 확정한 육군의 대령→준장 진급자 명단을 일부 수정했다는 점이다.

    사상 초유 군검찰-육군 정면 충돌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군 관계자들은 K 국장의 국방부 장관 면담이 육군의 장성 진급자 명단 일부 수정에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또 이들이 당시 직속상관인 박정규 민정수석에게서 미리 허가를 받고 이런 행동을 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윤 장관에게 전화를 건 J 비서관은 “윤 장관은 청와대에서 국방보좌관을 하다가 국방부 장관으로 가셨으므로 안면이 있어 과거부터 여러 일로 전화통화를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13일 육군 진급 문제를 놓고 윤 장관과 통화한 사실은 없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K 국장은 전화통화에서 “왜 그런 걸 묻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은 뒤, “청와대 행정관은 기자를 개별 접촉할 수도 없고, 개개 언론의 질문에 답변할 수도 없게 돼 있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민정수석실 K국장 진급 개입 의혹

    대통령민정수석실 K국장의 국방부 장관실 방문을 기록한 입퇴영 관리자료. 실무자는 민정수석실을 ‘민정수속실’로 잘못 기록해 놓았다.

    그렇다면 대통령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어떻게 해서 육군의 진급 문제에 ‘개입’하게 됐을까.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먼저 육군의 진급심사 시스템부터 이해해야 한다. 육군은 군인사법이 규정한 대로 선발위의 심의→육군참모총장의 추천→국방부 장관의 제청→대통령의 재가 순으로 진급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네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선발위의 심의다. 선발위가 심의를 통해 진급 예정자를 확정해줘야만 총장의 추천과 장관의 제청, 대통령의 재가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발위는 진급 심사를 앞두고 전후방 부대에서 뽑힌 중장(위원장과 부위원장, 위원) 3명과 소장 2명(위원)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기구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대령→준장 진급 심사를 위한 선발위가 처음 열린 것은 지난해 10월8일이었다. 선발위는 대개 하루 동안 열리는데, 단 하루 만에 1151명의 대령 중에서 52명의 진급 예정자를 뽑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육군은 별도로 추천심사위원회(이하 추천위)를 운영한다.

    민정수석실 K국장 진급 개입 의혹

    노무현 대통령, 윤광웅 국방부 장관,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송영근 당시 기무사령관 (왼쪽부터)

    추천위도 선발위처럼 진급 심사를 하루 이틀 앞두고 구성되는 비상설 기구다. 진급 심사일이 다가오면 육군은 전국의 육군 부대에서 15명의 장성(중장~준장)을 차출해, 갑·을·병 3개 위원회에 다섯 명씩 배치한다. 지난해 대령→준장 진급을 다룬 추천위는 10월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열렸는데, 이때 갑·을·병 위원회는 1151명의 대령 중에서 장군감이 될 만한 52명을 가려내 각각 선발위로 추천했다.

    진급 명단 교체 요구했나

    다음날 열린 선발위는 갑·을·병 3개 추천위에서 모두 추천된 41명에 대해서는 ‘요식적인’ 토의와 투표를 거쳐 준장 후보자로 확정했다(사실상의 자동 확정). 그리고 2개 위에서 추천된 대령과 1개 위에서 추천된 대령을 놓고 본격적인 토의를 하고 이어 투표를 해 11명을 선발함으로써 52명의 장성 진급 후보자를 확정했다. 그런데 52명 중에서 50명은 순수 육군 소속이고, 2명은 원 소속은 육군이나 기무사에서 일해온 기무사 대령이었다.

    K 국장이 윤 장관을 만난 지난해 10월13일 오후는 윤 장관이 장성 진급 후보자에 대해 제청을 하고 난 직후였다. K 국장의 방문을 알고 있는 군 관계자들은 “K 국장은 1998년 기무사령부가 밝혀내 그 후 힘을 잃은 육군의 나눔회 명부를 들고 와 육군의 진급 예정자 5명과 기무사의 진급 예정자 2명이 나눔회에 연루돼 있다며 이들의 명단을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K 국장이 돌아간 후 윤 장관의 지시로 김 차관보가 이날 오후 5시쯤 헬기를 타고 육군총장이 있는 계룡대로 날아갔다.

    김 차관보가 도착했을 때 이미 계룡대는 업무 시간이 끝난 다음이어서, 김 차관보는 육군총장 관사로 달려가 남 총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차관보는 육군의 진급 예정자 명부에 문제가 있다며 몇 사람의 교체를 요구했다. 이에 남 총장은 “육군의 진급 심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기무사 진급 예정자에 대해서는 육군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비켜갔다.

    송영근 당시 기무사령관은 기무사의 진급 예정자를 바꾸라는 김 차관보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날 밤 육본에서는 기무사의 진급 예정자를 교체하기 위해 ‘요식적인’ 선발위가 다시 열리고 김 차관보가 요구한 대로 기무사 진급 예정자 2명의 이름을 모두 바꾸었다. 그 후 김 차관보는 해군총장 및 공군총장 공관을 각각 방문하고 자정 무렵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그가 공군총장 공관에 들른 뒤 공군도 선발위를 열어 진급 예정자 한 명을 교체했다.

    다음날 기무사에서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났다. 새로 준장 진급 예정자로 집어넣은 사람 중 한 명에게서 중대한 결격사유가 발견된 것. 이에 따라 기무사는 이 사람을 빼내고 전날 밤 탈락시켰던 대령 중 한 명을 진급 예정자로 다시 추천했다. 이에 따라 이날(10월14일)로 예정된 노 대통령의 장성 인사 재가는 순연되었다. 기무사의 권 모 대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별이 떨어졌다가 다시 붙는 운명 같은 해프닝을 겪은 것이다.

    민정수석실 K국장 진급 개입 의혹

    군검찰에 기소돼 군사법정에 출두하는 육군본부 관계자들. 그러나 군검찰의 수사는 용두사미식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기무사가 방침을 바꾸자 육군은 또다시 선발위를 열어주어야 했다. 결국 육군은 15일 아침 세 번째로 선발위를 소집해 기무사가 다시 추천한 권 대령을 진급 예정자로 확정했다. 그리고 이날 윤 장관이 다시 제청하고 노 대통령이 재가함으로써 육군의 준장 진급자는 확정되었다. 윤 장관을 움직인 대통령민정실은 기무사 쪽 진급 예정자 중 한 명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으나 육군 쪽 진급 예정자는 교체하지 못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지난해 11월18일 군검찰이 육군본부 인사참모부를 상대로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대령→준장 진급 심사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주말을 지내고 다시 월요일이 된 11월22일 오전, 국방부 주변에서는 10월에 있었던 육군의 대령→준장 진급 심사와 11월에 있었던 대령 보직 심의를 비난하는 ‘2004년 가을/군대다운 군대 기풍 수호를 위한 육사 쭛쭛기 동기생 모임회원 일동’과 ‘국방부/육군본부 대령 연합회원 일동’ 명의로 된 두 종류의 괴문서 47장이 발견되었다.

    이 괴문서에는 ‘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노무현님! 말로만 개혁이니 쇄신이니 떠들지 말고 정말 정신 좀 차리고 군을 지켜주십시오’ ‘국방부 장관님! 제발 신뢰받는 진급 기풍을 좀 세워주세요’ ‘이 나라의 대통령이시여! 이 썩어빠진 육군 인사풍토를 말씀한 대로 바로잡아 주소서!’ 하는 식으로 노 대통령과 윤 장관에게 하소연하는 조의 문장이 많이 들어 있었다.

    민정수석실 K국장 진급 개입 의혹

    2004년 12월7일 육군 진급 심사 수사 중간보고를 하는 군 검찰단.

    괴문서가 발견된 바로 이날, 군검찰은 군사법원으로부터 육본에 대한 압수 수색영장을 발부받고 수사진을 바로 계룡대의 육군본부로 파견해 진급 관련 서류를 몽땅 갖고 나오게 했다. 이로써 괴문서에 쏠렸던 세간의 관심은 군검찰이 펼친 육군의 준장 진급 심사로 몰리게 되었다. 11월25일 이에 남 총장은 결백을 주장하려는 듯 전격적으로 전역지원서를 제출함으로써(청와대는 이 전역서를 곧 반려했다), 육군과 군검찰 간의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군검찰과 육군의 싸움이 치열해지던 12월 초순 윤 장관은 육군에 나눔회를 비롯한 사조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노 대통령에게 솔직히 보고했다. 그리고 12월14일 노 대통령은 군검찰을 겨낭한 듯 ‘여론몰이식 수사를 하지 말라’는 발언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윤 장관은 확연하게 군검찰의 수사에 제동을 걸자 이 사건을 수사해온 3명의 군검사가 보직사퇴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맞섰다(12월17일).

    괴문서 제작, 살포 수사 지지부진

    윤 장관은 이들에게 항명죄를 적용해 처벌하려다 반발이 일 것 같자 이들을 원대 복직(군검찰에 차출되기 전의 부대로 돌려보내는 것)시키고, 대신 다른 군검사를 투입해 수사를 마무리짓게 했다. 12월24일 새로 구성된 군검사는 준장 등 네 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정리했는데, 이는 ‘결코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없는 결과였다.

    민정수석실 K국장 진급 개입 의혹

    군검찰이 영장을 발부받아 육군본부를 압수 수색하는 날 발견된 괴문서.

    육군 진급 심사 문제는 군검찰의 수사가 종료됨으로써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발생한 또 하나의 사건인 괴문서 살포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괴문서 사건은 국방부의 헌병 조직인 합조단이 맡고 있는데, 이들은 한때 용의자를 15명으로 압축했으나 어쩐 일인지 수사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괴문서가 뿌려진 날 군검찰이 육군본부에 대한 압수 수색영장을 발부받았으므로 적잖은 사람들은 괴문서 살포와 군검찰의 압수 수색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이러한 의혹은 우리 군을 분열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으니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합조단은 괴문서 제작자와 살포자에 대한 수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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