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8

2016.10.12

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돼지불백, 돈가스, 설렁탕…투박하지만 맛은 대박

수도권의 기사식당들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6-10-07 18: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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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곧 돈인 택시 기사들이지만 하루 세 끼 식사는 거르지 않는다. 특히 싸고, 맛있고, 속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는 고기와 밥에 열광한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은 설렁탕, 돈가스, 돼지불고기백반(돼지불백)이었다. 부산에서는 돼지국밥이 설렁탕 자리를 대신했다.

    1920년 일본인이 택시 2대로 서울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후 택시업은 꾸준히 발전했다. 특히 도시화가 택시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62년 7204대였던 전국 택시는 70년대   2만9083대, 2000년대에는 23만 대를 넘어설 정도로 중요한 교통수단이 됐다. 택시업의 발전과 함께 70년대 이미 기사식당이 등장했다.  

    ‘요즘 거리에서 자주 눈에 뜨이는 것이 기사님식당이란 간판. 기사라는 이름이 택시나 버스 운전사를 두고 하는 말이란 것은 세정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벌써 알고 있다.’(1977년 12월 30일자 ‘경향신문’) 1970년대 자리 잡기 시작한 기사식당은 81년 통행금지가 해제되자 더욱 유명해졌다. ‘침묵의 시간이나 다름없던 자정 넘어 심야대가 살아 움직이는 시간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심야풍속도가 생겨났다. 서대문구 신촌역 앞 신촌설렁탕 집에서는 밤새 밤참을 먹는 택시 기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야 운전기사들을 위한 기사식당은 서울 시내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쟁 또한 대단하다. 강동구 천호대교 입구에 몰려 있는 기사식당들은 새벽까지 종업원들이 밖에 나와 오색 깃발을 흔들며 손님을 끌고 있다.’(1984년 3월 9일자 ‘경향신문’)

    당시 기사식당은 심야는 물론 대낮에도 인기를 얻으며 호황을 맞는다. 특히 택시 기사들의 시간을 절약하려고 세차를 해주고 잔돈을 바꿔주고 카시트를 빨아주는 부대 서비스로 전성기에 들어선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불법 세차 단속 등 여러 원인이 맞물리면서 기사식당의 전성기도 막을 내린다. ‘택시 기사 월급제 및 1일 2교대제가 실시되자 운전기사들이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수입 감소를 염려해 운전시간을 줄이지 않기 위해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종전처럼 기사식당에서 하지 않고 빵, 우유 등 간이 식사로 때우고 교대 후 귀가해서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1985년 7월 23일자 ‘매일경제신문’)

    그럼에도 여전히 성업 중인 기사식당은 많다. 1981년 서울메트로 2호선 건대입구역 근처에 자리 잡은 ‘송림식당’은 테이블 5개로 시작해 지금은 3층 빌딩까지 올린 전설적인 기사식당이자 여전히 예전의 맛을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이곳의 돼지불백은 양념한 돼지고기를 철판에 굽는 방식이다. 고기가 익으면 밥을 올려 비벼 먹는 일종의 돼지불고기비빔밥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자리 잡은 ‘감나무집기사식당’도 돼지불백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달걀프라이 한 점과 달달하고 부드러운 돼지불백, 된장국, 수수한 반찬에 소면 한 그릇이 양은쟁반에 올려 나온다.



    서울 성북동도 기사식당이 밀집한 곳이다. 이곳에는 돈가스로 유명한 ‘금왕돈까스’가 있다. 푸짐하고 기름진 돈가스는 택시 기사들의 패스트푸드로 손색이 없다. 근처에는 돼지갈비로 유명한 기사식당인 ‘성북동돼지갈비’도 있다. 기사식당은 우리 외식사의 초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자 맛도 좋은 집들이다. 1960년대부터 서울 신촌에서는 택시 기사들을 위한 설렁탕집이 인기를 끌었는데, ‘신촌설렁탕’은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원당이 한창 개발되던 88년에 자리 잡은 ‘원당헌’은 감자탕으로 택시 기사들의 허기를 채워 유명해졌다. 기사식당은 우리 외식계의 투박하지만 소중한, 그리고 화석 같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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