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8

2016.10.12

커버스토리 | 항생제 밥상 점령!

“스트레스 줄이면 항생제 필요 없어요”

‘달구네 농장’의 개방형 양계

  • 박세준 기자 hrm@swu.ac.kr

    입력2016-10-07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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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항생제, 무성장촉진제, 무인공수정 3無 산란계 달걀, 납품 원가 일반 달걀 2배 불과
    닭이 있는 곳을 제일 먼저 안 것은 귀였다. 샛길로 들어서자 우렁찬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좀 더 다가가자 넓은 계사가 나타났다. 우거진 나무로 둘러싸인 계사는 총 600개의 닭장으로 이뤄져 있었다. 닭장 하나의 크기는 27~33㎡(약 8~10평). 닭장 하나에 닭 15마리가 산다. 한 발짝 더 다가서자 동물원에 온 듯 옅은 가축 냄새가 코에 닿았다.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농장은 서울 근교에도 많은데, 왜 이리 멀리까지 오셨어요?”

    무항생제, 무성장촉진제, 무인공수정으로 닭을 기르는 충북 영동군 ‘달구네 농장’의 김무연(43) 대표는 심드렁한 말투로 기자를 맞았다. 김 대표의 말투와 달리 농장 닭들은 활기가 넘쳤다. 볏은 꼿꼿이 서 있고 깃털에서는 윤기가 흘렀다. 닭이 참 예쁘다는 칭찬에 김 대표의 말투가 달라졌다. 김 대표는 자랑스레 “대량사육 양계장의 닭들은 볏도 축 처지고 깃털도 많이 빠져 있는데, 우리 (농장의) 닭들은 넓은 공간에서 뛰놀며 자라 악취도 없고 건강하다”며 달걀을 하나 꺼내 권했다. 기자는 달걀을 받아 윗부분을 살짝 깬 뒤 내용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비릴 것이라 예상했던 흰자가 산뜻하게 혀에 닿았다. 곧이어 버터처럼 고소한 노른자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바람 맞으며 면역력 키워

    ‘달구네 농장’에서 기르는 닭은 총 9000마리. 1만 마리에 육박하는 닭을 관리하며 어떻게 항생제를 쓰지 않느냐고 묻자 김 대표는 “닭이 병드는 일이 거의 없어 약(항생제)을 쓸 일도 없다”고 답했다. 닭이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 비결은 사육환경에 있었다. 일반 대량사육 양계장에서는 24cm 폭의 닭장 안에 닭을 2마리씩 넣어둔다. 닭장 안으로 물과 사료가 자동 공급되며, 온도도 25도 내외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이 갖춰진 닭장 안에서 닭들은 걷지도, 햇빛을 보지도 못한 채 알만 낳는다. 생물이 기계로 취급되니 스트레스가 심해 일반 대량사육 양계장 닭들은 볏에 힘이 없고 깃털도 드문드문 빠져 있다.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사육되는 만큼 대량사육 양계장 닭들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쉽게 병에 걸린다. 좁은 공간에 닭들이 밀집돼 있어 전염도 빠르다. 이 때문에 대량사육 양계장에서는 항생제 사용을 멈출 수 없다. 이에 반해 ‘달구네 농장’의 닭들은 넓은 계사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생활한다. 따라서 좁은 닭장에서 사육되는 닭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야외에 설치된 계사는 얇은 철사 그물망으로만 안과 밖을 구분해놓았다. 닭들이 자라면서 자연환경 변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달구네 농장’의 닭들은 아침이슬과 찬 밤바람을 맞으면서 각종 질병에 견딜 수 있는 내성도 기른다.

    항생제가 필요 없을 만큼 닭을 건강하게 기르려면 사육환경 외에도 농장주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일반 대량사육 양계장에 비해 개방형(방사형) 계사는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김 대표는 “우리 농장 규모의 땅에 대량사육 양계장을 지으면 최소 20만 마리의 닭을 기를 수 있다. 방사형 환경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생산량이 20분의 1로 줄어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가격 차이는 있지만 들인 노력과 생산량 손해에 비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일반 대량사육 양계장에서 나온 달걀의 납품 원가는 110원. 무항생제 인증과 사육 스트레스 최소화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달구네 농장’의 달걀 납품 원가는 일반 양계장의 2배인 220원에 불과하다.

    방사형 사육은 대량사육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일반 대량사육 양계장은 자동화돼 있어 닭이 낳은 달걀이 공장처럼 자동 수확된다. 그러나 ‘달구네 농장’에서는 계사에 들어가 일일이 달걀을 꺼내야 한다. 김 대표는 “닭을 처음 기르기 시작할 때는 일반 사료도 쓰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닭이 좋아하는 풀을 뜯어 먹였다. 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납품 원가를 맞출 수 없어 결국 사료를 먹이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시간이 날 때나 풀을 준다. 닭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풀을 먹일까 하다가도 하루하루 달걀 출하를 마치면 역시 사료를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맛있다” “고맙다” 인사에 큰 보람

    건강한 달걀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이유는 허술한 인증제도 때문이다. 실제로 항생제를 일부 사용하는 무항생제 대량사육 양계장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의 축산품 무항생제 인증은 단지 항생제, 항균제가 첨가되지 않는 사료를 먹이는 것으로도 취득할 수 있다. 유정란도 마찬가지다. 유정란이 생산될 수 있는 사육환경을 가진 농장에서 나온 달걀과 인공수정으로 생산된 유정란이 시장에서 같은 가격에 판매되는 것. ‘달구네 농장’ 같은 방사형 계사는 농림부의 동물복지인증을 따로 받을 수 있지만, 김 대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축산품 소비자가 동물복지인증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편이라 아직 납품 원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손도 많이 가다 보니 주위에서는 김 대표의 방사형 사육법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는 “아들이 대학에 다니는데 어릴 적부터 방사형 계사를 보고 자랐다. 그런데 농업을 전공한 후부터는 방사형보다 대량사육에 관심을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방사형 사육을 포기할 수 없다.

    “굳이 방사형 사육법을 고집하지 않고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도 현재와 같은 가격에 납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대량사육 양계장에서는 지금처럼 신나게 뛰노는 닭을 볼 수 없겠죠. 가끔 달걀을 직접 사러 오는 고객들로부터 ‘달걀이 무척 맛있다. 건강한 사육법을 고집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받곤 하는데, 비록 순간일 뿐이지만 그 보람 때문에라도 지금의 방사형 사육법을 유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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