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7

2016.10.05

사회

되살아난 30분 배달의 악몽

대행업체에 장비 대여료와 유류비 떼주고 나면 월 500건 배달해도 남는 건 150만 원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9-30 17: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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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 후 30분 내 따뜻한 피자를 집으로 배달.’

    6년 전까지 한 프랜차이즈 피자업체가 내걸었던 마케팅 문구다. 주문 후 요리 과정을 거쳐야 하니 실제 피자 배달에 주어진 시간은 15~20분. 배달 오토바이의 속도는 빨라졌고 교통법규를 어기는 경우도 많았다. 자연히 사고가 빈발했다. 식지 않은 피자를 배달하려고 배달원들은 목숨을 걸었다.

    이 문구는 2011년 한 아르바이트생이 사망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모(당시 18세) 군이 배달 중 시내버스에 부딪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은 2011년 2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김군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등록금이라도 마련하고자 배달 오토바이에 올랐다 변을 당했다. 이 사고 이후 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의 ‘30분 배달제 철폐 운동’으로 같은 해 2월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피자 업체 두 곳(피자헛, 도미노피자)이 30분 배달제를 철폐했다. 이로써 배달원에게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듯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도 속도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각 음식점이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대행업체(인력 용역회사)를 이용하면서 배달원의 건당 배달 수입이 예전(법정 최저시급)보다 절반가량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줄어든 수입을 충당하려 또다시 30분 배달에 목숨을 걸고 있다.





    1시간에 2건 배달해야 최저시급 채워

    최근 음식점 대부분이 대행업체를 통해 배달원을 모집한다. 비용이 저렴하고 배달원과 관련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어 업주의 선호도가 높다. 이와 같은 ‘배달업 외주화’의 직격탄을 맞은 건 배달원들이었다. 하는 일은 과거 직접고용 시절과 같지만 받는 돈의 액수와 구조가 변했다. 직접고용 시절에는 월급으로 시간당 6000~7000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배달 건당 3500~4000원 남짓의 수수료를 받는다. 현행 최저시급 6030원 이상을 벌려면 1시간에 2건 이상 배달해야 하니 결과적으로 30분 배달제와 달라진 게 없다. 게다가 배달원은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어 일하기 때문에 배달 중 사고로 다쳐도 음식점 점주나 대행업체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인천에 사는 정모(21) 씨는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6개월간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교 졸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월평균 250만 원 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보고 대행업체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일했지만 광고에 명시된 만큼 벌 수가 없었다. 배달 건당 정씨가 받는 수수료는 3500원. 기본급은 없다. 1시간에 2건을 배달해야 7000원을 버는 셈이다. 정씨는 “음식점에서 1만7000원짜리 음식을 사서 소비자에게 2만500원에 파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음식을 배달하던 중 소비자의 마음이 바뀌어 배달이 취소되면 수수료 3500원이 아니라 2만500원을 손해 보는 구조”라고 밝혔다.

    대행업체 배달원은 배달에 필요한 오토바이와 무전기 등의 장비도 자비로 대여해야 한다. 정씨는 “대행업체가 오토바이와 무전기 대여료로 월 20만 원을 가져간다. 유류비도 직접 부담해야 한다. 100cc 오토바이지만 쉴 새 없이 움직이니 기름값이 월 10만 원 넘게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대행업체도 상황은 비슷했다. 기자가 직접 서울, 인천 등지 3개 대행업체에 문의한 결과 배달 수수료는 건당 3000~4500원 선이었다. 정작 배달원이 손에 쥐는 돈은 2500~3500원에 불과했다. 업체에서 중개료 명목으로 수수료를 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와 무전기 등의 대여료는 월 15만~20만 원 선. 유류비 등 오토바이의 기본 유지비나 오토바이가 사고로 파손됐을 때 수리비 역시 배달원이 부담해야 했다.

    배달 건당 3500원을 받은 정씨는 “한 달에 500건 가까이 배달하지만 주문이 취소되거나 오토바이 유지비 등 비용을 제하고 나면 정작 손에 쥐는 건 150만 원 남짓”이라고 밝혔다.  

    대행업체가 요식업계에서 각광받게 된 이유는 저렴한 비용 덕이다. 대행업체의 인터넷 광고를 보면 각 식당이 대행업체에 배달 명목으로 지급하는 비용은 월 15만~20만 원 선에 불과하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요식업을 하는 이모(44) 씨는 “인건비가 절약되는 측면도 있고 배달 중 교통사고가 났을 때 책임 소재나 비용을 생각하면 직접 고용하는 것보다 대행업체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했다.



    법의 보호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교통사고를 내면 그 책임이 전적으로 배달원에게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2013년 11월 고교 3학년이던 공모 씨가 한 대행업체의 배달원으로 일하다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공씨는 척수 손상을 입어 2년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험(산재보험) 처리를 신청해 5000만 원을 지급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공씨가 일했던 대행업체에 “근로자를 고용하면서도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며 공씨에게 지급한 5000만 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2500만 원을 징수하겠다고 통지했다. 그러나 대행업체 업주는 “공씨는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는데도 요양급여를 징수하겠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는 대행업체 업주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재보험료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현행법상 수수료를 받으며 일하는 배달원은 대리운전기사나 개인화물차 운전기사처럼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행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일하는 배달원은 산재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없고, 사고 위험이나 반품 책임 모두 배달원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 재판부는 “공씨는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한 개인사업자로 볼 수 있으므로 근로자임을 전제로 한 근로복지공단 측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여전히 배달원을 직접 채용하는 업체도 많다.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업체는 대부분 서비스 질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배달원을 직접 채용한다. 문제는 이들 업체에 아직도 ‘시간제 배달’ 서비스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6월 1일 새벽 4시 무렵 모 햄버거 패스트푸드업체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박모(24) 씨가 택시와 충돌해 숨졌다.

    시민단체가 추후 확인한 결과, 이 업체는 배달원에게 ‘20분 안에 음식을 고객에게 배달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주문한 음식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8~10분임을 감안하면 배달은 10분 안에 마쳐야 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주문량과 거리에 따라 탄력적으로 시간제 배달 서비스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지만 배달원이 시간 압박에 시달린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5년 전 한 배달원의 죽음과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사라진 시간제 배달 서비스가 어느새 부활한 것이다.

    배달원의 이런 현실과 관련해 4월 21일 정부는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제2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2016~2018)을 확정했다. 이 대책안에는 ‘배달대행 청소년 실태조사 및 안전 등 보호방안’을 2018년까지 마련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배달원의 처우 및 사고와 관련된 대책이 ‘청소년 보호’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유는 배달업종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하는 이 가운데 유독 청소년이 많기 때문이다. 안전보건공단 집계에 따르면 2010~2015년 이륜차 사고로 사망한 사람(산재 인정)의 36%가 19세 이하 청소년이었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청소년 배달대행 노동자 3750명 중 1.4%(53명)만 산재보험에 가입됐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통계를 감안하면 현재 파악된 내용보다 훨씬 많은 청소년이 배달하다 다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대책안에서 “배달대행 청소년의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음에도 여전히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대행업체에서 배달일을 하는지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일단 실태조사부터 실시한 뒤 산재보험 가입 등 보호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태 파악조차 못 한 정부

    실태 파악 후 만들 것이라는 보호방안이 언제쯤 나올지도 불확실하다. 대행업체 배달원의 경우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데, 특수고용직이란 대리운전기사나 개인화물차 운전기사처럼 건당 수수료로 임금을 받는 등 개인사업자 형태의 근로지만, 실제로는 일반고용자의 업태와 유사한 직종을 말한다. 문제는 이들이 아직 근로자로서 법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의 대표 발의로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제출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부 의원이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 노동자가 민간보험에 가입할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해 아직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법적권리가 먼저 인정돼야 청소년 배달원에 대한 보호방안을 확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고용노동부는 9월 6일 오토바이 배달원이 헬멧을 쓰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배달원을 고용한 업주에게 묻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과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10월 31일까지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현재 서울 마포구 한 패스트푸드업체에서 일하는 배달원 유모(22) 씨는 “배달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시간 압박이다. 이번 대책으로 헬멧 착용률이 올라가면 사고가 나도 덜 다칠 수 있겠지만 사고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행업체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는 진모(20) 씨는 “개인사업자인 우리가 헬멧을 착용하지 않으면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되물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의 대책은 배달원을 직접 고용한 고용주의 안전부담을 가중해 배달 서비스의 외주화를 부추길 위험도 있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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