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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도쿄를 발 아래에 두다

최정화씨, 지상 52층에 있는 日 ‘모리미술관’ 개관전 참여 … ‘하늘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한국미술’ 도쿄를 발 아래에 두다

‘한국미술’ 도쿄를 발 아래에 두다

한국 근대화의 황량한 현재를 보여주는 ‘낙원쁼딩’에 최정화의 작업실이 있다.

최정화(43)라는 미술작가가 있다. 만약 작가에게 ‘오리지널’이란 간판을 붙일 수 있다면, 그만큼 적절한 사람도 없다. 무릇 예술작품이란 다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하므로, 여기서 오리지널이란 작품의 ‘유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구찜이나 소머리국밥 가게들이 늘어선 곳에서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여기가 진짜 원조’ 할 때 명조체로 쓰인 그 ‘오리지널’을 의미한다.

일상적으로 먹던 생선찜이나 국밥에 ‘오리지널’이란 간판을 붙여 ‘전통 한국요리’로 승격시킨 것처럼, 그는 십수 년 전 주변에서 굴러다니던 소쿠리, 전구, 마네킹을 미술관에 옮겨놓고 태연한 표정으로 ‘이것이 오리지널 미술’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렇게 간단히 한국의 현대를 요약해버린 그의 미술이 준 충격은 대단했다.

최근 10년 동안 우연히 들어간 미술관에서 ‘반짝반짝’하고 ‘알록달록’한 촌스런 그림을 보거나 재활용품에 가까운 설치작품을 보고 당황한 경험이 있었다면 십중팔구 그 여진이라 할 수 있다. 최정화 이후 ‘일상’에 경도된 한국 현대미술은 종로와 영등포의 뒷골목에서 찾아낸 싸구려들과 장롱 구석에 있던 온갖 잡동사니들을 경쟁하듯 전시장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전망대 겸해 벌써 ‘도쿄 명소’ 부상

‘한국미술’ 도쿄를 발 아래에 두다

모리미술관 입구에 설치된 최정화의 작품 ‘플라워’(위).도쿄도의 롯폰기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어린이 놀이터.

수많은 ‘최정화표 미술’이 ‘오리지널’과 ‘원조’를 주장하며 미술계를 휩쓸고 있을 때 최정화는 그래픽 디자인, 인테리어와 건축설계, 한옥의 리노베이션 ‘비즈니스’로 넘어가 이름을 날리더니, 지금은 공공환경 미술가로 세계 미술계에 서 있다.



10월16일 전 세계 미술 관계자들의 관심 속에 문을 연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 프로젝트에서도 그의 작업은 단연 돋보였다.

모리미술관은 일본의 부동산 재벌 모리 미노루가 설립한 현대미술관. 그가 소비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도쿄 롯폰기를 17년 동안 2700억엔을 들여 재개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그 중심에 건설한 지상 54층짜리 모리타워의 52층과 53층에 들어선 ‘하늘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최정화는 개관전 ‘해피니스(행복)’에 참여하고 새로 정비된 지역과 전통지역(아자부주반) 경계에 어린이공원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이 공원은 모리부동산이 지어 도쿄도에 기증한 것이다.

“언제나 제 작품의 주제는 행복, ‘해피’하자는 것이지요. 어린이공원도 마찬가지 컨셉트죠.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자는 것, 이것이 예술가의 작품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게 유일하게 조심한 부분이었어요.”

‘한국미술’ 도쿄를 발 아래에 두다

‘퍼니게임’. 과속을 단속하는 경찰 모형으로 권위에 대한 조롱, 가짜와진짜의 구분에 대한 의심 등을 담아 자주 문화적 담론의 중심이 됐다(왼쪽). 모리타워 꼭대기에 자리한 미술관 전용 입구.

그러나 그는 지난해부터 롯폰기 근처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공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고 한다. 모리미술관 놀이터를 찾을 아이들에게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놀이터를 만드는 작가는 누구인지 강의한 것이다.

“모리미술관은 그저 건물 짓고, 전시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어요. 그네들의 사전기획과 치밀한 준비가 징그러울 정도였으니까요. 모리미술관 근처에 일본의 권위 있는 미술관 지점들을 좋은 조건으로 유치하고 패션, 미디어, 영화공간들을 끌어들여 계속 문화적 무브먼트가 일어나도록 몇 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해왔지요. 마지막 단계가 미술관 개관이었고 어린이 프로그램도 그 준비의 일환이었어요.”

모리미술관은 하늘과 가까운 만큼 땅과 먼 곳이다. 관람객들이 52층까지 가려면 ‘유인책’이 필요하다.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려는 듯, 미술관 전용 출입구에 설치한 것이 최정화의 작품 ‘플라워’다. 관람객들은 그의 거대한 꽃을 밟고, 그의 플라스틱 꽃을 따라 미술관에 이른다.

“전망대와 미술관이 같이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또 평일에 밤 10시, 주말에는 자정까지 문을 여니 사람들이 오지 않을 수 없어요. 세계의 어떤 미술관과도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래서 뉴욕근대미술관과 퐁피두센터 관장 등 세계미술계 사람들이 몰려왔겠죠.”

한국미술계 인사들도 모리미술관의 개관 리셉션에 대거 참석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삼성미술관장을 비롯해 이재용 상무 부부,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등 100여명의 미술계 인사들이 참석해 최근 부쩍 교류가 활발해진 한국과 일본 미술계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특히 삼성미술관과 모리미술관의 밀접한 관계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세계미술계에서 우리보다 인정받고 있는 일본의 지명도와 막강한 경제력과 노하우를 가진 삼성미술관의 공조가 이뤄진다면 한국미술이 세계에 진출하는 데 획기적 계기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모리미술관 개관 리셉션에 한국미술계 거물들이 몰려온 데 대해 최정화는 무심한 얼굴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지만, 지금까지 제 기획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없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예술은 여전히 고상하고 만져지는 ‘물건’이지요. 제 작품은 재료 자체는 돈 한푼 안 들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기획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기획 자체를 예술로 받아들여주지 않으니까 전시를 하지 못했어요. 이렇게 딱딱한 사회에서는 밖에서 인정받아 들어오는 전략이 통하죠.”

그의 작품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쉽게 볼 수 있는데 현재 모리미술관 외에 리옹비엔날레와 상하이의 한국현대미술제 ‘양광찬란’에서도 최정화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드디어 전략이 성공한 것인지 그는 서울에서 대규모 개인전을추진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서울 한복판 낙원동 악기상가 위에 세워진 ‘낙원 딩’(낙원아파트의 공식 이름) 꼭대기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창문을 통해 보면 그의 작품이 서울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그의 작업은 우리가 사는 곳을 채집하는 것이며, 그의 작품은 동시대를 거울처럼 반전해 보여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우리의 ‘오리지널’한 삶이라고 인정하는 데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린 것뿐이다.



주간동아 409호 (p66~6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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