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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숨소리까지” 안테나 24시간 ‘ON’

기업정보팀 대선 비자금 수사 촉각 … 경쟁사 동향·경제 파장 분석 작업 골몰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검찰 숨소리까지” 안테나 24시간 ‘ON’

“검찰 숨소리까지” 안테나 24시간 ‘ON’

LG 현대자동차 SK 삼성그룹 본사 사옥(왼쪽부터).

5대 그룹 안에 드는 모 그룹 정보팀 소속 A씨는 10월31일 출근하자마자 ‘위’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보통 보고서 내용은 서울 여의도 정치권 주변에서 흘러 나오는 정가 뒷얘기나 정·관계 인사들의 동향 등을 열거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평소와 달리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바로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를 SK 외에 다른 그룹으로 확대할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

A씨가 작성한 보고서의 결론은 ‘현재로선 검찰 수사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불법 대선자금에 관한 단서가 나온다면 검찰로서도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돼 있었다. A씨가 전날 평소 친분이 있는 검찰 출입기자와 검찰 관계자를 상대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린 잠정 결론이었다. 이 주제는 A씨뿐 아니라 검찰 출입기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보고서 작성을 끝낸 A씨는 팀장 주재 회의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오랜만에 여의도로 출동했다. 역시 여의도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다른 그룹 정보팀 관계자들 및 평소 안면이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들, 그리고 무엇보다 검찰 정보팀 관계자를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검찰 정보팀이란 가끔 여의도에 나타나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소속 수사관을 말한다.

A씨의 여의도 출동은 말할 것도 없이 검찰의 의중에 관한 새로운 뉴스를 귀동냥하기 위해서다. 이 주제는 최근 검찰 수사 결과 SK 비자금이 한나라당과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대선 전과 후에 각각 100억원과 11억원이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그룹 고위층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사안이다. A씨가 속한 그룹은 물론 여야에 대선자금을 지원했지만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입장이다.

“불법 단서 나오면 칼 빼들것”



A씨뿐만 아니다. 요즘 5대 그룹 정보팀 관계자들은 모든 안테나를 대검 청사가 있는 서초동쪽으로 세우고 있다. 이들 그룹 역시 고위 관계자들이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SK의 경우 먼저 매를 맞은 탓인지 오히려 다소 느긋한 입장이다. SK 관계자는 “올 2월 서울지검의 분식회계 수사에서부터 최근의 비자금 수사에 이르기까지 절망감을 느끼다 최근에는 구경하는 입장이 됐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재벌 그룹 정보팀과 함께 덩달아 바빠진 곳은 유료 정보지를 발간하는 업체들. 2000년 9월 내일신문 창간과 함께 주간 유료 정보지 ‘CEO 리포트’를 발간, 유료 정보지 시장을 개척하다시피한 내일신문 관계자는 “최근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방향에 대한 고객들의 개별적인 문의가 늘고 있다”면서 “워낙 민감한 주제이다 보니 ‘CEO 리포트’에 활자화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알려주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유료 정보지를 생산하는 곳은 내일신문 외에도 주간 ‘한경 리서치’를 내는 한국경제신문, ‘CIB 데일리’를 만들어내는 한 사설 정보업체 등이다. 이 가운데 ‘CIB 데일리’는 다른 유료 정보지와 달리 매일 발행되고 있어 유료 정보지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CIB 데일리’는 과거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과 대기업 정보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정보업체를 설립해 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 재벌 그룹은 오래 전부터 정보팀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권력 내부 핵심인사들이나 정·관계 주요 인사들의 동향, 그리고 경쟁사들의 비밀 등을 ‘취재’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들이 수집하는 정보 가운데는 그룹 최고위층에게도 직접 보고되는 ‘알짜 정보’도 있지만 때론 근거 없는 음해성 내용도 있어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검찰 숨소리까지” 안테나 24시간 ‘ON’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10월17일 국회 답변에서 “무등록 정보지를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정보팀 관계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바로 LG그룹 정보팀이 2000년 말 검찰에게 호되게 당한 경우다. 당시 대검 범죄정보기획담당관실 관계자의 회고.

“어느 날 한 직원이 가져온, 이른바 무등록 정보지 ‘지라시’를 보고 기겁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권 사정을 주문했지만 박순용 검찰총장이 일부 기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번 사정은 별것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검찰총장은 ‘불경죄’로 권력 핵심의 눈 밖에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박총장에게서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점을 확인받은 후 직원들에게 그 정보의 출처를 색출하도록 했다. 결국 ‘LG 쪽이 의심스럽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때마침 LG 쪽에서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사과를 표명해 없었던 일로 하고 지나갔다.”

탁월한 실력 삼성 정보팀 주목

이런 이유 때문에 정보팀은 각종 유언비어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검찰이 최근 ‘지라시’ 단속 방침을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한 재벌 그룹 정보팀 관계자 B씨는 “검찰이 때만 되면 그런 의지를 보이지만 대부분 유야무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다른 그룹 정보팀 관계자 C씨는 “이번에는 검찰의 단속 의지가 과거와는 다른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재벌 그룹 정보팀 관계자들은 ‘지라시’ 등 무등록 정보지가 필요악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검찰 등 사정기관에서도 참고할 정도라는 것. B씨는 “별다른 성과도 없으면서 검찰이 ‘지라시’를 계속 단속하다 보면 오히려 정보 시장이 음성화돼 유언비어가 양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씨는 이어 “검찰 동향이 최우선 관심사인데, 최근 검찰이 엄포를 놓는 바람에 활동반경이 위축되고 있다”고 푸념했다.

요즘 재벌 그룹 정보팀 사이에서 단연 주목받고 있는 그룹은 삼성. 업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한다는 그룹 구조조정본부 산하 정보팀은 국정원 출신 변모 전무가 이끌고 있다. 중요 사항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에게 직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정보팀 역시 검찰 수사 방향에 대해 ‘예측 불허’라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 삼성 정보팀을 주목하는 것은 삼성이 검찰 수사망을 용케 피해온 것으로 비치기 때문. 특히 올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이건희 회장 아들 재용씨에 대한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논란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음에도 현재까지 이를 잘 방어하고 있는 것은 삼성 정보력과 로비력의 ‘승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울지검 특수2부는 최근까지도 이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삼성 정보팀의 역량이 과대평가됐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서울지검이 경영권 편법 승계에 대한 수사를 미룬 것은 삼성의 ‘로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검찰 자체의 ‘법률적’ 판단의 결과로 보이기 때문. 2000년 6월 전국 법학자들이 이 문제를 고발했을 당시 주임검사였던 S변호사는 “시간이 오래 지나 수사에 어려움이 따르고 법률적으로 애매한 데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SK가 검찰의 타깃이 된 것은 SK 쪽의 정보력이나 로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사실과 다르다. 올 2월 검찰이 SK글로벌 분식회계 관련 수사에 착수할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김각영 변호사는 총장 퇴임 후 한 사석에서 SK글로벌 수사와 관련,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재가하지 않은 상황에 SK글로벌 수사마저 막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수사 착수를 허락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그룹 정보팀 관계자들이 우려한 대로 검찰은 11월3일 대선자금 전면 수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전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선자금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지금부터야말로 각 그룹 정보팀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기”라며 전의를 다졌다.



주간동아 409호 (p38~39)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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