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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이라크 파병, 실리와 명분 사이 ‘내전중’

한국군 규모와 성격 美와 본격 협의 … 전투병+비전투병 혼성 3000명~5000명 선 유력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라크 파병, 실리와 명분 사이 ‘내전중’

이라크 파병, 실리와 명분 사이 ‘내전중’

현실파의 대표인 김희상 국방보좌관과 소신파의 대표인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오른쪽).

라마단(금식월)이 시작된 10월26일을 고비로 이라크 사태가 복잡해지고 있다. 미군은 라마단에 참가하는 이라크인을 위해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내려지던 통행금지를 해제했는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10월26일 아침 6시10분쯤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머물던 바그다드의 알 라시드 호텔로 로켓포탄이 날아들었다. 다음날에는 바그다드에 있던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자살폭탄 공격을 받는 등 이날 하루 동안 이라크에서는 25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1월2일에는 미군의 치누크 헬기가 휴대용 대공미사일을 맞고 격추돼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터키 의회가 358대 183(기권 2)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라크에 대한 터키군 파병에 동의한 것은 10월7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미군의 지원을 받으며 이라크를 통치하고 있는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이하 과도위원회)가 터키군 파병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라크의 정(政)과 민(民)이 일치해서 반대 의사를 표시하자 10월29일, 네스데트 세제르 터키 대통령이 파병 철회를 시사했다. 이라크발 테러 기사가 많을 때였는데 그러자 우연의 일치인지 파병을 논의하던 방글라데시와 포르투갈 태국 등이 파병 불가 쪽으로 돌아섰다.

이러한 분위기는 추가 파병 의사를 밝힌 노무현 정부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위기를 수용하느냐, 아니면 미국과의 신의를 지킬 것이냐, 청와대는 현재 추가 파병을 둘러싸고 내전에 빠져 있다.

박주현 국민참여수석비서관은 노대통령의 함구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추가 파병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힌 ‘소신파’다. 소신파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은 파병을 하더라도 ‘최소한으로로’, 그리고 공병과 의무무대 등 ‘비전투병 위주로’를 주장하는데 이들은 대개 노대통령과 정치적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소신파의 정점에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이 있다. 국방보다는 북한전문가인 이차장은 노대통령과 소신파가 처한 여러 입장을 고려해 ‘3000여명 내외를 추가 파병한다’는 복안으로 미국과 협상할 계획이라며 국가안전보장회의 차원의 이라크 조사단을 파견했다.

이라크 잇단 테러 치안 불안 고조



3성 장군 출신의 김희상 국방보좌관은 이라크전쟁이 발발했을 때 “3주면 전쟁이 끝난다”며 조기 파병을 주장했었다. 그의 예측대로 이라크전은 한 달이 못 가 끝나고 한국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서희와 제마 부대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일말의 기득권을 쥐게 되었다. 10월18일 노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를 열고 이라크 추가 파병을 결정했을 때도 그의 보고가 상당히 기여했다. 김보좌관은 정치적인 코드는 맞지 않지만 전문가다운 분석으로 노대통령에게 국제정세를 성실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그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사람이 조영길 국방부 장관과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다.

국민정서와 내년 4월의 총선을 고려한다면 노대통령은 소신파의 결정을 수용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정서상의 선택과 객관적인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추가 파병이라는 ‘제2라운드’에서는 어느 쪽의 판단이 더 정확할 것인가. 노대통령도 사람인지라 2라운드에서는 ‘미안해서라도’ 코드가 맞는 소신파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소신파는 병력의 규모와 성격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만 파병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한 만큼, 노대통령의 마음은 소신파 쪽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감성이냐 이성이냐.’ 작금의 이라크 현황을 살펴보는 것은 노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군 추가 파병 지역으로 거론되는 이라크 북부지역의 면적은 남한의 40%에 해당하는 3만5000여km2이고 인구는 350만여명이다. 현재 이곳에는 보병대원을 헬기에 태워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미 101공중강습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이 부대는 헬기 침투를 주임무로 하는지라 다른 사단에는 한 개뿐인 헬기여단과 보급여단을 두 개씩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포병여단과 방공포대대·야전공병대대 등 중장비를 운영하는 부대도 거느리고 있다. 이러한 예하 부대는 전투에서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지금처럼 평정(平定)작전을 펼칠 때는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다.

101공중강습사단에서는 1·2·3여단에 속한 보병대원들이 과도위원회의 지시를 받는 이라크의 행정조직을 보호하며 치안유지 활동을 펼치는 평정작전에 투입되고 있는데, 이들의 규모가 대략 1만여명이다. 따라서 101공중강습사단과 임무를 교체할 부대의 규모는 최소 1만명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김희상 등 현실론자들은 1만명 정도 파병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소신파는 이라크 중남부지역을 관할하는 폴란드형 사단을 구성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폴란드형 사단은 3000여명의 폴란드군으로 사단사령부와 한 개 여단을 편성하고 나머지는 스페인 우크라이나 헝가리 등 20여개국에서 온 보병부대로 편성한 1만여명 규모의 다국적 사단이다.

이에 대해 성실파는 “중요 임무는 사단사령부를 맡은 나라의 군대가 수행할 수밖에 없다. 위험지역에서는 숫자가 중요하다. 많이 갈수록 한국군의 안전도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전후 복구사업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3만5000여km2라는 광활한 면적을 경비하려면 양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추가 파병을 안 하면 안 했지 3000여명을 보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1만명에 육박하는 병력을 보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소신파를 지원하는 장영달 국회국방위원장은 “보병이 아닌 공병과 의무부대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열린우리당은 비전투병 파병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한국에게 “공병은 필요치 않다”는 의사를 전해온 바 있다. 이라크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지금 이라크에는 공병부대가 해야 할 공사보다는 전문성을 가진 기업들이 가서 해야 할 공사거리가 많다. 모술 인근에는 5000만 달러 정도를 투자하면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시멘트 공장이 있다. 전후 복구사업을 하려면 시멘트가 있어야 하므로 이라크 과도위원회는 누군가가 이 공장을 재가동시켜줄 것을 원하고 있다. 북부지역에는 유전도 몇 개 있다. 시멘트 공장 재가동과 유전 개발은 공병이 아닌 기업이 맡아야 할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라크 과도위위원회측은 ‘우리도 의사는 충분히 있다. 부족한 것은 약품일 뿐이다’라며 의무병과 파병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 군은 서부 사하라와 아프간 등 여러 곳에 공병과 의무부대를 파병해왔다. 그로 인해 국내에서 오히려 두 병과가 부족해, ‘만만한 게 공병과 의무병이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우리는 너무 명분에 집착해 받는 쪽과 우리 쪽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파병하려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소신파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라크에서 추가 파병 요청이 없었다”며 파병 반대를 주장한다. 그러나 과도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추가 파병을 세 번이나 요청했다. 10월9일에는 알리 알라위 통상장관이 한국에 와 “추가 파병을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국내 언론은 알리 알라위 장관이 “비전투병이라도 추가 파병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터키와 이라크 사이에는 한국과 일본처럼 민족감정이 얽혀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이라크 사이에는 그러한 감정이 없어 한국에 대해 추가 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이라크도 국가 체면이 있는데 세 번이나 언급했으면 추가 파병이 절실하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라크에 추가 파병되는 한국군의 규모와 성격은 11월 중순 열리는 연례한미국방장관회담(SCM)에서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한 소식통은 “노대통령이 추가 파병을 선언함으로써 전에 없이 한미관계가 좋아졌다. 그로 인해 코너에 몰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만나 중국의 권유로 마지못해 참석하는 모양새를 갖추며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의 당면과제는 북핵위기인데 한미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 결정된다. 소신파와 성실파 중 어느 쪽의 판단이 옳으냐”라고 물었다.



주간동아 409호 (p32~33)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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