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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

맛의 감동 伊 아이스크림 ‘띠 아모’

  •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맛의 감동 伊 아이스크림 ‘띠 아모’

맛의 감동  伊 아이스크림  ‘띠 아모’

‘빨라쪼 델 쁘레또’의 ‘티라미스’. 티라미스 케이크를 얼린 듯 촉촉하다.

‘띠아모(Ti Amo)’. 이탈리아어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주어를 자주 생략하는 이탈리아어의 특성상 나(Io)는 빠져 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취미인 나는 지난 겨울에 ‘띠 아모’라는 이름의 이탈리아어 전문학원에서 두 달간 이탈리아어를 배운 적이 있다. 자그마한 교실에서 열 명이 채 안 되는 수강생들이 공부했는데, 그동안 나는 KTF 광고에 나오는 나이 든 수강생 같은 기분이었다. 첫 수업 시간, 강사의 첫 질문은 ‘왜 이탈리아어를 배우냐’는 것이었다. 성악과 학생, 패션산업 종사자, 유학을 준비중인 디자이너, 그리고 이탈리아계 호주인 여자친구를 둔 사업가가 차례로 그 질문에 대답한 후 내가 답할 차례가 돌아왔다.

대답을 준비하느라 이 생각, 저 생각 해봤지만 사실 내게 이탈리아어를 배워야 할 어떤 절실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다. 강사는 이탈리아어를 가르친 지 10년이 되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배우겠다는 수강생은 처음이라며 웃었다. 사실 그렇게 우울하지도 않았지만 이 언어를 배운 지 두 달이 지나자 나는 남부 이탈리아 사람처럼 명랑해졌다. 1주일에 세 번, 예습·복습까지 철저히 해가며 열심히 수업을 들었지만 지금은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다. 그저 오페라 아리아를 들을 때 약간은 도움이 된다고 우울해지려는 나를 달랠 수 있을 뿐이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가끔씩은 우울해진다. 사람마다 기분전환을 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만큼 빠른 시간 내에 기분이 좋아지게 해주는 것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아이스크림은 이탈리아어로는 ‘gelato’라고 한다. 영어 이외의 언어가 나오면 발음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단어를 보면 ‘겔라토’라고 읽게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젤라또’라고 발음하는 것이 가장 원음에 가깝다. 그럼 ‘Spaghetti’는 왜 ‘스파게티’인가? ‘ghe’는 ‘게’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ga, go, gu’는 ‘가, 고, 구’로, ‘ge, gi’는 ‘제, 지’로 발음하지만 ‘ghe, ghi’는 ‘게, 기’로 발음한다.

요즘에는 어디에서나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배스킨라빈스 31’을 비롯해서 ‘나뚜르’ ‘하겐다즈’ ‘프렌치 키스’ ‘돌로미티’ 등 수많은 브랜드가 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전문점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이탈리아에 가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은 맛있다.

서울 홍대 앞의 ‘젤라또 아르떼 아이스크림(Gelato Arte Icecream)’은 맛있는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으로 기억에 남는 곳.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의 ‘빨라쪼 델 쁘레또(Palazzo del Freddo, 02-3445-2786)’에서는 다양한 이탈리아풍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 ‘얼음궁전’이라는 뜻인 이 가게는 이탈리아에서 1880년 처음 설립된 후, 현재까지 5대째 사랑받고 있는 ‘젤라떼리아(아이스크림 전문점)’다. 간판에 쓰인 ‘Italy 1880’이라는 글귀에서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이왕이면 ‘Italia 1880’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유럽에 가면 가게마다 이런 글귀들이 붙어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가끔 마주치는 간판에는 ‘since 1998’은 보통이고, 심지어 ‘since 2003’이라고 씌어 있는 곳도 있다. 우리 소비자들이 새로 생긴 가게를 선호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곳은 굳이 이런 간판을 내걸 필요가 없다. 차라리 ‘신장개업’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외국 간판을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이다.

‘빨라쪼 델 쁘레또’ 아이스크림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부드럽다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푸는 종업원의 팔뚝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설탕을 쓰지 않아서인지 뒷맛이 개운하다. 우유나 우유에 계란 노른자를 섞은 것을 베이스로 하는 아이스크림은 연유를 사용하고, 과일 아이스크림은 과당 시럽으로 단맛을 낸다고 한다. 또 그날 만든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넣어 하루 동안 냉동시킨 후 다음날 판매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쌀로 만든 ‘리조(Riso)’. 음식을 먹을 때는 맛뿐 아니라, 흔히 ‘씹는 맛이 좋다’라고 표현하는 감촉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아이스크림은 반쯤 익은 듯한 쌀알이 톡톡 터지는 것 같은 감촉이 아주 좋고,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으면서 혀 위에 남는 작은 알갱이를 살살 굴려가며 이로 눌러보는 재미도 그만이다.

파스타를 먹을 때 ‘알 덴떼(al dente)’라고 주문하면 약간 덜 익혀서 나오는데, 그와 비슷한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덴떼’는 ‘이’라는 뜻. 파스타가 너무 익으면 씹는 맛이 덜하기 때문에 기호에 따라 주문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두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수 있는데 항상 ‘리조’ 외에 무엇을 추가로 먹을까 고민하게 된다. 케이크를 먹는 듯한 ‘티라미스(Tiramisu)’도 좋고 하얀색 요구르트 맛도 특별하고…. 맛을 다 보려면 한참 더 가야 될 것 같다. 아이스크림의 단맛을 중화시키고 싶다면 에스프레소 한 잔을 곁들이면 좋다.

재미있는 아이스크림으로 기억에 남는 또 한 곳이 제주도 포도호텔 레스토랑(064-792-8000)이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독특한 외관의 호텔인데, 핀크스 골프장에 인접해 있어서인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골프장의 구릉 모양으로 퍼 담고 그 위에 노란 콩가루와 초콜릿 시럽을 뿌려서 낸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 같지만 시각적으로는 물론이고, 미각적으로도 아주 신선하다. 가루 상태로 흩날리는 따뜻하고 고소한 콩가루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시원한 단맛과 어우러져 좋은 대조를 만들어낸다. 먹는 사람이 입 안에서 두 가지 맛을 조절할 수 있다. 새로운 요리는 결국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간동아 2003.09.04 400호 (p90~91)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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